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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샌 처갓집을 더 챙겨요

(2) 귀골스러운 됨됨이

by 블라썸도윤

남성분들이나 시댁의 입장을 가진 분들은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아, 그럴 일이 없어.” 하시겠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딸을 낳으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을 자주 실감한다. 사돈댁은 아들을 낳아서 내게 밀어주셨다. 사돈댁 앞에서는 태연한 척하는 사위가 처제랑 장모 앞에 오면 아들이 된다.


그제 양평을 사위와 다녀왔건만 전을 부치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고 있는데 사위가 또 들렀다. 모레 제주 가기 전에 강화에 바람 쐬러 가자며 외출준비를 바로 하란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몇 번을 본 것으로 질리지 않아 재방을 보고 있었다. 1930년대 작으로 노래가 하고 싶어서 말괄량이 견습 수녀가 된 마리아의 스토리다. 개방적인 성격을 수녀들의 반대가 심하자 원장수녀의 귄유로 7남매가 있는 교육 보조교사로 들어가서 뮤지컬화 하여 노래와 신세대 교육을 주입했다.


해군 대령은 규율을 지키는 주입식 교육을 원하지만 마리아 교수는 노래와 말로 대화와 열린 교육을 지금의 대안학교 방식처럼 놀이로 어울렸다. 천둥이 치니까 아이가 그런다. “천둥은 왜 쳐요? 무서워요. 엇, 번개도 쳐요. “무서워할 것 없다. 천둥이 번개에게 말을 시키니까 번개가 대답했을 뿐이지. 기억에 남는 대화였다. 그들은 마리아를 따르기로 한다. 도레미송을 부르며... 이들의 아버지인 대령 폰 트랩가의 인정을 받게 되며 사랑을 느끼게 되자 마리아는 사랑을 가슴에 감추고 떠나는 이야기다. 맞벌이 부부였던 집에 와서 규율이 엄격했던 아이들이 말이 없었으나 마리아와 결국 교감하게 되지만 이들 곁을 떠나는 것이다.

정리를 서둘러 하고서 눈도 쓰라려웠는데 바람을 쐬면 얼굴이 펴지겠지. 머리 묶음을 푸르지 않고 바로 나섰다.


강화는 바닷가 바람이 유난히 셌다. 43킬로의 나는 발이 저만치 밀려 나가게 된다. largo 카페에 들어가서 바람과 사투하면서 갯벌 삼킴을 토해내는 빛깔, 흙탕물빛 겨울바다 춤을 실컷 바라보았다.



2차로 참기름카페에서 운영하는 미디어아트 안에 들어갔다. 강릉에서 본 아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 화면바닥을 디딜 때는 역시 어지럼을 탔다. 뜻밖에 여직원이 2관 이동을 연결해 준 곳에서 고갱과 고흐의 관계를 미디어 영상으로 감상했다. 둘 다 인상파였으며 바람꾼 역시 성향이 같다. 에도시대의 우끼요에 판화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화풍을 열었다.(이것이 인상주의라고 한다.)


고흐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된 동생 테오 편으로 편지를 보내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고흐는 미술작품을 하는데 돈이 달렸으며 역시 미술가인 고갱을 만나 그의 집인 노랑집에 가서 묵게 된다. 점점 고흐는 여색에도 빠지고 돈이 없는 관계로 고갱과 맞지 않게 되자 잔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가 듣기 싫어 결국 귓불을 조금 자르고 자화상까지 그리게 됐다. 우리가 학교 교과에서 배울 때는 귀 하나를 직접 자르고 붕대를 감았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나중엔 정신병원까지 입원하게 된 고흐는 여기서 수련화를 연작한 미술화가 모네를 만나 의지하게 된다.

고흐가 사망 후 유작이 비싼 가격에 남겨졌으며 전시관을 둘러보게 한 장소는 원래 참기름 공장이었던 곳을 카페로 가수 이승철의 부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요금과 반 고흐의 전시는 시간대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참기름라떼 한 잔을 시켜 봤는데 참깨를 갈아 넣은 고소한 라떼이기에 기분이 좋아지게 하며 즐거움과 기쁨이 가득 찬 창고임을 의미한다. 멋지게 업사이클링이 되어 공간 전시가 잘되어 있으며 바깥쪽 앞에는 물을 얼려 스케이트장을 만들어놨다. 얼마 전 누려봤던 화도진 스케이트장보다 작은 규모로 꾸몄지만, 한 곳에 도착해서 여러 볼거리와 놀거리가 있는 것에 발길이 따라가게 돼있기에 시시하지 않다.


미디어아트를 나오면 음료값이 3천원 할인되는데 참기름라떼 적극 권장한다.


어디를 가나 아파트가 들어섬은 기본이고 볼거리를 해놓았기에 도회지를 떠날 수 있도록 유혹한다. 미디어 아트는 이제 곳곳 어디서나 만나기 쉽게 됐다니 디지털 기술은 매우 빠르게 진출한다.

낼은 명절인데 나는 동네를 벗어난 바람산책을 하고 버킷리스트에 자꾸만 페이지를 찍는다. 여권에 도장 받는 것처럼.


젊어서 누리지 못한 행복을 지금 느지막이라도 취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난 이 감사함이 차고 넘치는 분수 이기에 글에 자랑처럼 꼭 남기고자 한다. 몸에 데미지가 딱지처럼 붙어 고장이 나면 좋았던 추억이 지워질까봐.


* 난 저 달에 왜 못 가는 건가 *



집에 도착하니 막내동생한테서 연락이 왔다. 조카사위가 업무 끝나자마자 들러서 가든에 가자고 하여 고기를 먹었다고 했다. 이 조카사위도 본집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2년 차 안 가고 있으며 처할머니가 안 계셔도 명절 때는 꼭 인사를 하러 온다.

요즘 아들들 많이 이렇지 아니한가. 본집에 가서 인사드리라 해도 안가겠다는 조카사위한테 미안함과 고마움을 같이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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