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귀골스러운 됨됨이
상당히 춥다. 그래도 지인 관계는 아침부터 전화가 오고 언제 사무실 나오냐고 재촉한다. 내가 한 마디 끝나면 그녀들이 웃고 그녀들이 웃으면 나도 웃음이 폭발하고 주말을 따지지 않고 통화를 받아준다. 이런 방법도 살아가는데 기운이 나게 하는 한 예가 될 수도 있겠다. 낼 성가대에서 솔로이스트 하는데 목소리가 나온다며 콩강정 손수 만들어서 좋아라 하고 온다는 걸 격려를 실컷 해주고는 이틀 후에 보자고 했다. 오늘은 현관문도 나서기 싫은 게 요즘 피곤이 추위에 덮쳐서 일게다.
병원 예약차 딸내미가 먼저 나갔다 오더니 “길가에 사람이 없어, 시장도 썰렁해. 엄마 나가지 마. 어제보다도 춥다.” 한다.
아침 태양이 산책도 20분만 해줬다. 새벽 너무 일찍 잠이 깨면 놀자고해서 콧바람을 하루 두 번은 쐬주어야 하니 추울 땐 이것도 성가실 때가 있다. 낼은 아침부터 예약 건도 있어서 부지런 떨어야 하니 거실에서 천연 비타민D를 흡수하며 쉼을 가지려 했는데 역시 사위가 연락이 왔다.
“어머니 지금 실내 동물원에 가실래요?” 저번 주에 둘이서만 제주 한 바퀴를 돌았다며 처제랑 내가 집에만 있을까 봐 그런다. 좀 있으면 해가 질 텐데 오늘은 푹 쉬자고 했다. 아마도 점심을 아웃백에서 같이 먹었으면 한랭바람과 결투하고 나다녔을 건데 식사 타임이 두 집이서 맞지 않았다. 결코 7시 해가 이미 졌는데 신기시장으로 오뎅과 튀김을 먹으러 가자며 또 전화가 왔다. 여럿이 먹어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이점이 있다며 양말을 주섬주섬 신게 했다. 다행히도 낮에 보단 따셨다.
백서방이 그런다. “저희 어머닌 산에 주말마다 가시잖아요. 이번엔 교회 소개로 재혼하시게 돼서 외가 할머니까지 낼 식당에서 인사하기로 했어요. 어머니도 가시겠어요.”
“나는 나중에 시간이 허락하면 그때 뵙지. 자네는 나해랑 꼭 가게나.”
“봐서요. 저희는 제주 가기 전에 뵈었어요. 낼 봐서 갈 거예요.”
나를 잘 챙김해주는 실금한 사위는 우리를 내려주고 딸내미가 코치를 다시 해준다.
“엄마는 안 가는 거 알지. 찬미도 엄마는 가지 말랬어.” 딸내미 친구 찬미는 결혼 때도 내 옆에 있어 주고 나는 복이 많다.
인연이란 어느 순간에 와서 버들강아지 솜털처럼 앉는다. 사돈댁은 나보다 세 살이 위 이신데 짧은 커트 머리가 잘 어울리시며 복사꽃 같은 살인미소가 환하시다. 목소리도 나보다 더 고우시다. 사돈어른은 처갓집의 돈으로 법인사업체를 꾸리다 부도를 맞아서 술로 달래셨는데 파출소 앞에서 쓰러지셨다. 지금 맞는 인연은 남동공단에 사업체가 있으며 사돈댁한테 적잖은 생활비를 댈 거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보고 돌침대를 갖다 쓰라는 데 굳이 필요함을 못 느끼고 사다리차 부르는데 삼십 만원을 요구해서 새 사돈댁에 옮길지는 모르겠다.
현재 거주하던 아파트는 전세를 놓고 가신다니 돈 관리를 잘하실 것 같다. 그곳으로 새달 초에 들어가시는데 그쪽의 큰딸은 이번에 혼례식을 했으며 나머지 한 딸은 해외 유학 중이라고 했다. 내 아인 시누이가 생기는 거냐며 불편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갖다가는 “요즘은 다 냉정하게 살아가. 나혼산 방송을 봐봐. 다들 캥거루 안 해.” 신경 안 쓰기로 했단다.
내 밑의 동생 시어머니도 새 출가를 원했는데 제부와 그의 남동생이 펄펄 뛰며 요란법석을 쳐서 재가를 못하고 매니큐어만 화려하게 찍어 바르셨다. 제부가 내게 강한 주장을 내며 극구 황혼 연애를 반대했다. 본인 어머니인데 사양하더라.
가족 간의 이해가 성립돼야 노년의 이성 관계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되고 목소리도 고와진다.
노년에 새 사람을 맞는 인연은 이팔청춘과 다른 감성이겠지만 돈 관리는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갖는다. 자녀한테 아쉽게 손 벌리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나는 이 생각을 가졌으며 나이 들어서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많이 탄다면 사람 人의 한쪽 받침이 쓰러지지 않게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면 좋겠다. 요즘의 어머니들은 내 부모님 세대와 다르다. 동안이며 색소폰 불러 다니고 나를 위해서 열심히 가꾼다.
이별이거나 사별하고서 새 인연을 맞는 것에 나는 적극적으로 찬성을 해준다. 나이에 상관없이 하고자 하는 원함이 있다면 책임이 있는 자유를 누리라고 권유한다. 나는 멋쟁이다. 뭐가 그러냐고. 노년끼리도 팔짱 끼고 다니면 보기죻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속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도를 벗어나 신뢰를 깨지 말아야 한다. 오늘 냉바람에 뜨끈한 오뎅 맛나게 물어뜯듯 진솔한 맛이 나는 자유연애로 알콩달콩으로 살아주시길 바람한다. 연애가 무조건 나쁘다고 받아들여지지 않음은 그들의 행복이 삶의 충족에 보태지기 때문이다.
하이타니 겐지로 소설
<외톨이 동물원 - 서문>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외톨이 동물원>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3년,7쪽
난 내일도 웃을 것이다. 무탈하게 사는 삶에서 웃음이란 내게로의 행복이며 인연과의 웃음 나눔이 새로 깐 이불과도 같음이다.
건강만 하자. 고뿔도 안 걸리게 피해 가면서 웃자.
사랑의 온도계 날씨와 상관없다. 버들강아지 솜방울 맺지 않았을까. 이 온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