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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29.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영역 표시

 “언니, 엄마 또 영종도 갔어. 재현이 엄마랑 종일 전화하더니 나보고 또 돈을 주라네. 내가 이젠 안돼. 줄 돈 없어. 유진이 학비 대준 걸로 끝이야. 아니 돈이 있어도 못 줘. 앙칼지게 박았더니 엄마가 보따리를 쌌어.” 막냇동생이 우는소리를 내며 내게 한숨을 뱉었다. 골치다. 왜 노상 둘째네를 우리가 떠받쳐야 하는데.


 “얘 있잖네. 여기 오니까 공기도 좋고 애가 바지런해서 된장찌개도 맛이 좋았어. 근데 나 낼 집으로 간다. 강아지 두 마리가 설치고 변을 못 가려서 닦아내냐고 힘들어. 내일 갈겨. 가서 막내 밥도 해줘야지.” 그새 막내가 몇 천만 원을 해줬나 보군. 엄마가 본집에 오시는 거 보니. 뿔난 사람이 가서는 냉큼 오시는 게 돈 해결이 잘 된 거다.


 시어머니한테 맏며느리 설움을 받았던 엄마는 우리에게도 보따리를 싸매는 식으로 같은 언저리를 하신다. 동물들처럼 영역 표시를 하시는 건지, 이런 식으로 둘째네한테 돈이 턱없이 나가게 하셨다.

 


 둘째네는 결혼 전부터 신발가게 할 때나 지금 물류 회사 대표일 때나 항상 돈타령을 하며 산다. 핏줄이 뭔지 왜 우리는 얘네한테 끌려다녀야 하는 건지. 이 집 자식들까지 왜 우리가 짐을 지는 건데.


 둘째는 더운 여름엔 반부츠를 신고 한겨울엔 쫄 스타킹으로 멋을 내고 다닌다. 본인 패션이지만 이 집 애들은 지어미의 성향을 닮아서 더 폼 나게 차려입고 다닌다. 툭하면 차비가 없다는 등 학비 좀 대줘. 시집가게 돈 좀 보태줘. 머리를 흔들어 버리게 했으면서 여느 때 전화하면 “나 없다고 해, 화장실 갔다고 해.” 전화기로 다 들려오게 피하고는 염치도 없고 뻔뻔하게 손을 벌렸다.


 내 엄마의 안절부절 둘째동생네 걱정으로 인해 우린 마음 상처까지 깊다.


 화가 치민 큰소리로 짧게, 아니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길게, 쏟아버리듯 말해 버리고 싶다. 너네에게. 터트리고 싶어! 그래서 내게 쏠림이 안되게.

한 살 밑이어서 더 얄미운 팥쥐인 둘째야! 또한 너에게 딸린 가족들아! 다른 이모 얘기 좀 들어 볼래. 이모의 의미가 어떤 것인가? 우리 아래층과 한 끼 밥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아저씨가 알조림을 하나 집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 “총각 때 지방에서 올라와 이모네서 일을 다니는데 이모는 나를 빼고서 동갑내기 사촌한테만 매일 계란 프라이를 해줬어요. 참 대개 서럽더라고요. 한 달 월급을 받자마자 계란 한 판부터 후딱 샀어요. 30개를 몽땅 삶아서 물 한 바가지를 옆에 놓고 다 까먹었지요. 그리고서 어떻게 됐게요? 배가 너무 빵빵해서 못 일어나 결국 바지에 오줌을 싸버렸어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난감했다.



 둘째야! 너와 네 아이들은 형제나 외가 덕으로 살면서 기본 도의는 모르는 것이냐.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기본 인사를 버린 채, 이런 인사는 돈도 안 드는 건데 나 잘난 맛으로 사는 거지. 끝내는 소신 없이 병신 짓한 나를 축구공 날리듯 잘도 차낸 둘째네야! 난 드리블도 안 하고 제대로 골을 넣게 해 줬다.


 생채기 낸 팔의 안쪽을 드라이아이스로 더 대인 것 같기에 한마디를 내가 더 하겠다. 참 못된 것들아!

때마침 빗가락이 날린다. 이 비로 한 번 맞아볼래. 감각이나 있갔어.

헛웃음을 치며 제쳐 가겠지.

양심에 털이 났으니 이 비도 그 털 사이를 그냥 비껴갈 거야.


 이때다. 노래 한 곡을 튼다.

정수라 버전으로 ‘어느 날 문득’ (홍진영 작사·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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