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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17.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틱이 생기다

 조카사위가 오는 것도 모르고 들렸네. 꽃 화분도 갖다주고 잔 돈도 주고 집 가는 길에 문을 열어 봤건만 눈 짓을 준 걸 못 알아봤다. “오빠랑 밥 먹기로 했어.” 얼른 나왔다. 달포가 지나서 또 들렸네. 둘째 동생이 현관문 열면서 “너네 큰 이모는 왜 와서 떠드냐. 시끄럽게.” 유진이의 친구도 같이 있었던 날이다. 잽싸게 나왔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그 집에 왜 갔네? 왜 가서 떠들고 그랬네? 그 집 사위 와서 밥 먹으러 나갈 건데.” “몰랐어.” 뒤통수에 큰 돌멩이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밥자리에 내가 끼면  안 되는 상황이었나 보다. 그걸 또 엄마한테 일러바친 거다. 둘째의 고자질은 언제든지 먹혔으니까. 이래서 우리는 형제의 우애가 없고 맨 위도 없는 것 같다. 황제펭귄이 영하 50도를 이겨내는 것은 서로 붙고 붙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거늘. 교대로 바깥쪽은 안쪽으로 밀어주고 의지하며 살아가잖아. 우리 형제는 우애가 없다.

 우리 회사에서 알바를 하게 된 재현이는 자기 엄마한테서 차비를 타 왔을 텐데 점심때가 되면 택시를  타고  왔다지. 일이 끝나면 홍대에 놀러 간다며 나보고 차비를 달랜다.

 달여를 그러다가  전철역 입구에서 이 아이와 마주쳤다. “이모, 나 친구들 있어서 창피하니까 다른 칸에서 갈 거야. 이해해줘." 그러냐. 내가 네게 창피한 거냐. 미치갔네. 그래도 나는 말을 해주면 안 되는 거야.     으흠 ;;;

꼰대같은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았다. 거침없이 내뱉는 조카 재현이 눈이 번뜩거렸다.


 그러고서 1년은 지난 언제쯤 새벽 세 반에 나는 문 앞의 인기척을 느꼈다. 거실 불을 켜니 “이모, 나여. 문 좀 열어줘.” 미안한지 작게 말하더라. “얼른 들어와. 많이 마셨구나.” 술내가 독한 재현이를 우리 식구들이 다 잠이 들어서 큰 딸 침대 아래에 잠자리를 펴줬다. 술 냄새가 찐해서 지갑을 열어보니 하얀 가죽 지갑은 손 때가 시커멓게 묻었고  현금 영수증만 꼬깃꼬깃해서 나오더라. 딱해서  원을 넣어 놓고 회사에 왔다.

물론 속풀이 계란장국도 파 송송 시원하게 끓여놓고서 조카 대접을 식탁 위에 해놓았지.


며칠 후 사무실에서 “큰 이모도 이쁘게 하고 다녀. 우리는 보일러 안 때도 옷이 최고야. 이쁜 옷 입고 다녀라.” 철없는 요즘  너희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노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는 이 순간도 몸에 벤대로 멍청했다,


 이 아이 일곱 살 때 아빠를 일찍 사별해서 엄마는 얘들을 더욱 끔찍이 여기셨다. 둘째딸도 엄마한테는 더 아픈 손가락이어서 더 맘이 많이 찡하게 당기셨던 거다. 특히나 둘째한테는 항상 가림막이 되어주는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 꽹과리 소리처럼 시끄럽고 형제들 앞에서 기세가 등등했다.

무서워서 피하는 아니고 시끄러우니 피하게 되는 것.

 수진이가 무심코 뱉었다. “우리 엄마는 낙이 연속극 보는 거야. 만 팔천 원을 내면 연속극 녹화 해서 봐.” “그러니. 돈을  아껴 써야지. 피곤한데 뉴스라도 보고 한국기행, 아니면 세계테마여행, 인간극장 이런 프로라도 보면 되지.” 이 집 문을 열고 나오면서 엄마한테 말을 한다는 것이 나도 일러바침처럼  돼버렸다. 나는 역습으로 된통 당했다. "네가 왜 오 원이냐? 오오백 이지!" 소리를 댑다 지르셨다. 그 자리에서 얼음이 돼버림. 그랬군. 부가세 우스리를 빼고 말한 것이야. 

 만 팔천백오십 원, 난 오오백 원.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던 거다. 이런 것도 나는 혼이 나고, 참 이상한 눈물을 가슴에 적신다. 나도 예순을 바라보는 다 큰 어른인데. 길바닥에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울면 시원해지거든.


엄마의 애잔한 마음을 나도 한편으론 헤아림이 되면서 지청구를 녹이고 눅여주고 하다가 툭 튕겨져 나온 말!

"엄마 집에 고기, 엄마 집에 고기!"

어쩌다가 갑자기 이 말이 순간에 틔어 나왔다.

고길 꼭 사다 드려야겠다는 강박감 같은게 어느 찰나에 생겼다. 나 자신도 분별 못하게. 

엄마한테 고길 사다드리고 싶은 맘은 늘 갖고 다녀서일까?

 기안84의 눈 깜빡임처럼, 머리카락 꼬무락 만져 댐처럼, 손톱 물어뜯는 아이처럼, 나는 엄마 집에 고길 사드리면 하늘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들떠져서인가. 별 희한한 틱이 아닌가.

“엄마 집에 고기.” 요즘도 혼잣말로 불쑥불쑥 저절로 되내이는게 안고쳐져.


             고기 안색이 좋은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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