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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10.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애착과 물들기

 중학교 때 큰 장맛비가 쏟아져 나는 죽을뻔했다.

책임감이 강해 교실 청소 마무리까지 마치고 오후 4시경 파했는데 몰아치는 억수비가 교복을 다 적셔놓고 그 당시 종이로 된 버스 표는 죽처럼 뭉개져서 껄어붙었다. 홍수가 터졌다.

하늘이 깜깜해.


 버스 안내 양이 이런 표는 차비로 받지도 않거니와 3시간째 버스는 만 원이어서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이느무 비가 웬수지.

8시가 되니 마지막 차라며 드디어 제대로 버스가 세워졌다. 타이어가 반은 잠긴 채 역시 빈 공간이 보이지 않던 문 안쪽에 억지로 낑겨서 타게 됐다.

그것도 만수동 종점이 아닌 세 정류장은 더 못 가서 나머지 인원을 다 내리게 했다. 내 집 가는 길에 하천 다리가 하나 있는데 여기가 끊겼다네.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내가 내린 곳에 서 계셨다.

(이때 아버지가 안 나오셨더라면;; 나는...)

내가 하도 안 오고 버스도 안 오더란다.

둑이 물로 찬 것이 내 목까지 차올라서 아버지 손을 꽉 잡고 앞쪽으로 발은 건너는데 몸은 다른 동네 유신 마을까지 밀려서 아버지랑 나랑 죽을뻔했다. 반대로 돌아서 집에 왔는데 담날 뉴스에 농작물 망가진 것만 나오지, 우리의 생사고비였던 위험천만한 이야긴 실리지 않았다.


 장마가 몰아오니 날이 수시로 꾸물꾸물하고 습도가 많아서 사람들은 여기저기 쑤시다 하고 삭신이 노글노글하니 치아도 더 욱신거리고 내 몸이 기상청이라고 한다.


 이빨은 정말 많이 아파야 가지 어지간하면 참게 된다. 나도 참다가 치과에 갔는데 신경치료를 다했어도 역시 아프다. 이런! 사랑니가 비스듬히 옆으로 삐죽하게 끝을 보이고 있네. 살을 누르니 신경 건드림으로 머리까지 피곤하게 했다. 큰 병원으로 가라 하길래 예약되지 못한 길병원 치과에서 종일을 기다려 담당의도 나도 악으로, 골치였던 치아를 깨부수어 끄집어냈다.


 집으로 올 때 마취가 덜 깼을 때 죽이라도 사 올걸, 청소기부터 미는데 발 한 짝 옮길 적마다 이와 머리에 신경전달이 되어 청소를 하다 말았다.

조카 수진이게 닭죽 좀 사다 달라고 심부름을 시키니 때마침 지나가는 길이라며 죽을 사 왔다. 이 따스한 온기는 슬슬 넘어갔다.


 엄마한테 사랑니 뽑는 게 이렇게 아픈 거냐고 전화를 거는데 수화기 안에서 엄마가 귀찮은 듯 “너 있는데 지금 가랴, 몇 호실에 있냐. 병실로 가 입원했어?” 쩌렁쩌렁 두 번을 내리 그러셨는데 나는 빈정이 샀다.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셨다.

“아냐 엄마, 집에 왔어.” 여느 때 같지 않고 나도 많이 덤덤해졌다. 익숙해졌지.

사람들은 부정 속에 갇혀 있게 되면 그것이 부정인지 모르고 그 안의 것이 옳다로 여겨진다잖아. 익숙해진다잖아. 익숙해지면... 물들어.


 반개월이 지나니 엄마가 그러셨다. “얘 있잖네, 재현이엄마 이빨 틈새 벌어져서 복 나간다고 하도 그래서. 이빨 몇 개를 메꿔 줬어.” 레진 치료를 해주셨단다. (어려서부터 이리 낳아놓았다고 칭얼대니 또 애착이 가셨어.)

잘했네! 인생에 보탬이 되는 복을 차고 살아야지. 내몰면 안 되지. 잘했어. 치아 여러 개가 많이 벌어졌었는데.

근데, 그걸 엄마한테 밀어붙여?!

난 또 익숙해졌다.


모두 모두 잘 살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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