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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23.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엄마의 은하작교

 엄마가 머리를 빠글빠글 볶으시면 그 주에 나들이를 가신다. 들 내, 풀 내, 좋은 공기만 쐬고 가뿐하게 오시면 좋은데 엄마는 꼭 무거운 한 놈을 싸 들고 오신다. 지방 특색의 막걸리나 복분자 같은 전통주를 보물찾기 해온 것처럼 짐 꾸러미 해서 무겁게 들고 오신다. 그러고선 이걸 내게만 밀어주신다. “옜다. 네 마셔라. 너 주려고 샀어.” 아니, 엄마는 콜라만 드셔도 취기가 올라온다며 술을 피하는 분이신데. 거기에다 나는 반주 들듯이 끌어당기는 술꾼도 아닌데. 내게 술을 권하시는 거다. 이것이 맏이의 부담을 이미 알고 계신 화해와도 같은 사랑 표현 이시련가……엄마가 은하작교를 놓으셨다.


 꼬박꼬박 종일 걸려 담그신 시원한 김치를 한 통씩 우리 집에 대주신 내 어머니! 곳곳을 표시 나게 눈감아주고 얼싸안아주신 내 어머니! 그것이 옳지 않음을 인지하셨음에도 연어가 알을 낳기 위해 거꾸로 올라가려고 안간힘 쓰며 용천하려고 애쓴 것처럼, 속에서는 편애 같은 핀잔이 맞지 않은 걸 알고 계셨던 거다. 엄지손가락도 깨물면 아프다는 것을 아시면서. 내게는 위엄을 보이시려고 역정을 거꾸로 내셨을 거다. 이것이 체한 것처럼 거북하고 짐 얹힘같이 꽤 무거우셨을 건데 맘속에선 거친 숨결이 일으셨을 것임에……


 “작은 참외 좀 사다 드릴까?” “아니.” “그래. 갑자기 네가 전화하니 먹고 싶구나.” 주먹 크기만 한 건 연해서 좋아하신 것 같다. 그런데 깎지 말라고 하시네. 있다가 아들 오면 같이 먹겠다고 하셨다. 날 밝아서 엄마가 먼저 안부를 주셨다. “눈 빠지게 기다린 아들은 안 오고 막내가 밤 11시나 돼서 왔어. 근데 참외를 제 혼자 깎아먹더라. 나 되게 먹고 싶었어.” “엄마, 그러게 내가 깎아주고 온다니까. 아휴.” 아기처럼 보채듯이 이리 말씀하시고선 그 뒤로 참외는커녕 밥 수저도 못 드셨다. 평소에 속이 타신 엄마는 참외를 참 좋아하셨는데……

(엄마의 아들은 서쪽의 금성인 개밥바라기별에서 동쪽으로 넘어간 샛별로 하루가 넌지시 넘어갔지만 아직까지도 오겠다는 약속을 신의하면 절대로 안 돼. 날이 새 버리니 두통만 와.)



 평소 때 과일을 놓아드리면 막냇동생 점심으로 도시락 통에 담아주시냐고 끄트머리 물고 계셨는데 난 안타까웠다. 과일을 사계절 대 드렸는데 엄만 아버지와 반 개씩 나눠드시던가, 막내 찬 그릇에 들어가고 꼬다리만 쪽쪽 빨아 드신 것이다. 박스째 들어온 과일이 꽤 푸짐하고 쳐다만 봐도 든든하셨을 건데 자식 생각으로 제대로 온전히 못 드신 것이 끝내 아쉽다.


 밝은 해가 담벼락에 기대어서 쨍하고 양지로 한자리 잡고 있을 때 뿔테안경을 끼신 한 아주머니가 “우리 큰 딸이 온다고 했어.” 손수건을 손에 쥐고서 미소를 뽀얗게 뿜뿜이 하고 계셨다. 울산에서 장시간 차를 타고 올라오는 자주 못 본 딸을 먼저 마중 나와 계신 이 어머니는 딸의 모습을 계속 손수건에 묻히셨다.


 며칠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땅거미가 지고 있는데 “다 큰 아들이 반팔을 입고 나가서 지금은 한기를 느낄 건데. 걱정이 되네요.” 차가워진 바람에 자식 잠바를 팔에 걸치고서 눈이 빠지라 서성이는 노모. 자주 뵙는 내 어머니도 이렇게 나를 계속 기다리셨을 거다. 친구 같은 부담 없는 자식이니 말이야.

1인칭 시점으로 보는 편한 자식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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