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be는 오래전부터 인사를 나눴고 그 앞에서 4개의 점포를 고수하고 있는 모습 자체가 시커먼 연배는 인사를 열 번은 했건만 고갤 빳빳이 세우고 있으니 무안하면서 민망했다.
무지 얄밉더라. 그 후로는 이이 앞을 못 본 듯이 지나친다. 5개 점포를 가진 분도 가오는커녕 목소리조차 곱던데. 내가 소비자가 되어주지 못하니 인사하기가 좀 껄끄럽다 생각을 하며 거의 매일 마주치는 이한테 아는 체를 못 했다.
출근길의 눈부심. 드디어 용기를 내어 “안녕하세요.” 내가 그냥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웃으시면서 “네” 기다렸듯이 답변을 하시네.
이어서 난 “이제 꼭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이분이 “오우, 좋은 하루 되세요!”
기분이 쾌로 변했다. 유쾌! 상쾌! 통쾌! 내 머리에 손하트를 얹으며 “고맙습니다.”로 걸음을 가볍게 했다.
샷타를 올리니 야채가게 사장님이 양팔과 엉덩이를 흔들며 에너지가 넘치는 인사를 하신다. 그 해 여름의 뱀사골 같은 스토리를 흥미롭게 주셨던 분.
담배꽁초 너저분함을 치우고 거미줄도 제거하는데 내 신발 뒤꿈치에서 새 울음보다 더 맑은 청량감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주름진 미소를 띠시며 스쿠터를 타고 내리막길에 휘파람 소리로 “비켜 주세요.”를 대신하신 거.
점심이 지난 오후엔 폐지를 수집하며 수급자 대상으로 생활을 영위하시는 분이 고로케를 두 개나 갖고 오셨다. (7080시대 팝에 열정이 대단하셨던 분)
오늘 일정은 밝은 인사로 시작해서 긍정적인 하루를 받는 날! 인사치레로 돈을 안 내고 기쁨을 받은 날!
우리는순하지 않은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는데 인사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사람들 사이에 지키는 예의를 잘 몰라서 집안에 처음 뵙는 어른이 오시면 “안녕하세요.”를 쑥스럼 타며 못했다. 이랬으면서 둘째동생이 잘 뵙지 못한 이모할머니한테 어느 날 말을 놓고 하더라. 존댓말을 쓰지 않는데 대표 자리에 있으니 저렇게 반말도 하나 불편하게 귀가 많이 거슬렸다.
세 번째 남자를 맞은 둘째네가 형제들 인사를 시킨다네. 싫은데 엄마의 성화로 억지의 인사를 하게 됐다.
우리 동네 가든에 와서 내 어머니랑 우리 가족까지 세 테이블을 잡았다. 돼지갈비 10인분 정도에 얼마 인지도 몰라서 3십만 원을 둘째네 수진이를 통해서 탁자 밑으로 밀어줬다.
아니 그랬으면 됐지 노래방에 가자며 수진이 지 어미가 뒤 쪽에서 걸어오며 재촉 행세를 한다. 난 집으로 가려고 빠른 걸음한 건데. 아씨 정말 수진이가 5만 원의 노래방비를 또 받아 가고 말았다.
집에 오고 다음날 자기 자식들이 고깃값 남은 거 나눠달라며 손을 벌렸다나. 그래서 안 주고 회사 기사분들 삼계탕 사줬다며 통화를 짧게 끊더라. 남았으면 날 도로 내줘야 하는데. 아! 이게 뭔가. 그리고 난 돼지갈비 값도 모르고 살았나. 그럴 여유 시간이나 있었는가.
내 딸이 지 막내이모한테 과일박스를 택배로 부쳐 주었는데 이걸 막냇동생과 내 아이와의 통화를 듣다가 알게 됐듯이 나도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배려해 주다가 나중엔 큰 손 소리를 듣게 된 거. 여느 집도 보면 둘째가 거의 속을 썩인다고 푸념들을 한다. 대부분 둘째 들이 양심적이지 않으며 맏이나 막내가 희생을 끌어안고 있다고 했다. 에휴, 한숨 소리는 나오고 누군가는 치다꺼리를 하면서 속에 거품으로 앙금을 가져서 아프다고 외치는 거.
어떤 큰형은 부모님 교통사고로 이별한 사례비를 본인 몫으로만 챙긴 이도 있고 또 다른 맏이 누나는 동생이 일하다 잃은 손가락 절단비로 방을 얻어서 살며 되려 큰소리치는 이도 있고 별난 사람들이 많다. 형제들이 몇씩 되는 우리 시대에선 해바라기하며 자란 형제 중 누군가는 형제의 학비나 부모님의 병간호를 도맡아 희생을 끌어안고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으니 털어내지 못해 하소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또 다른 맏이로서의 내 아픔.
분노를 깨는 노트에 너희한테서 보답처럼 받은 생채기를 휘휙 문질러 가며 쓱쓱 써 내려간다. 시린 가슴 녹이며 잊혀지는데 글이 한몫하고 있어. 내가 저만치 가고 있다. 이젠 달라진 나를 보려고. 점점 새살이 돋아나는 걸 글에서 발견해.
5월 초 거제도로 아이들이 예약을 해놨다.
내가 안 간다거나 공연한 염려를 할까 봐 이 둘이서 (효녀상을 새겨 주고 그와 맞는 일기를 두 아이로 정해놓고 써도 손색이 없겠어.) 서로 카톡을 꾹꾹 하더니 날 데리고 거제까지 왔다. 작년처럼 우산받이 하고선 실내 동식물 테마파크에 들렸다.
버드&피쉬 체험장에서 코카투 엠브렐라종 화이트색 앵무와 시간을 길게 보낸 것 같다. 이 한순간 사진도 못 박고 말이지.
호주에선 우리나라 비둘기처럼 앵무새가 흔한데 그중 머리에 흰 왕관을 쓰고 깃털 안엔 노란 빛이 비치는 말하는 앵무새에서 또 하나의 마음을 읽어왔다. 말을 잘해. 감정을 토해내네.
‘테디’란 이름을 가진 이 앵무새 심장이 탄탄하구만. ‘안녕’부터 별말을 다 시켜보다가 정말 감동받음. “나도 좀 주라 맛있겠다. 응, 줘” “그래” 하더니 중간 크기 씨앗류를 먹는 애가 그 중 큰 빨강 고추 말린 것 인지 보리수, 아니면 구기자 말라진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거 비스름한 걸 내게 던져줬다. 와 아! 그래서 “고마워!” 하고 도로 철장 밥그릇에 넣어줬더니 “안 먹어? 그럼 안 줘.” 더 달라고 졸라댔다. 동영상 좀 이제 찍어보려고. 에고 안 준다고 했으니 안 주더라.
그렇구나! 말을 시켜줘서 보답하려고 큰 거로 골라서 집어 줬더니 사양했다고 냉정하게 안 준다로 노터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