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사위가 오는 것도 모르고 들렸네. 꽃 화분도 갖다주고 잔 돈도 주고 집 가는 길에 문을 열어 봤건만 눈 짓을 준 걸 못 알아봤다. “오빠랑 밥 먹기로 했어.” 얼른 나왔다. 달포가 지나서 또 들렸네. 둘째 동생이 현관문 열면서 “너네 큰 이모는 왜 와서 떠드냐. 시끄럽게.” 유진이의 친구도 같이 있었던 날이다. 잽싸게 나왔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그 집에 왜 갔네? 왜 가서 떠들고 그랬네? 그 집 사위 와서 밥 먹으러 나갈 건데.” “몰랐어.” 뒤통수에 큰 돌멩이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밥자리에 내가 끼면 안 되는 상황이었나 보다. 그걸 또 엄마한테 일러바친 거다. 둘째의 고자질은 언제든지 먹혔으니까. 이래서 우리는 형제의 우애가 없고 맨 위도 없는 것 같다. 황제펭귄이 영하 50도를 이겨내는 것은 서로 붙고 붙어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거늘. 교대로 바깥쪽은 안쪽으로 밀어주고 의지하며 살아가잖아. 우리 형제는 우애가 없다.
우리 회사에서 알바를 하게 된 재현이는 자기 엄마한테서 차비를 타 왔을 텐데 점심때가 되면 택시를 타고 왔다지. 일이 끝나면 홍대에 놀러 간다며 나보고 차비를 달랜다.
한 달여를 그러다가 전철역 입구에서 이 아이와 마주쳤다. “이모, 나 친구들 있어서 창피하니까 다른 칸에서 갈 거야. 이해해 줘.” 그러냐. 내가 네게 창피한 거냐. 미치갔네. 그래도 나는 말을 해주면 안 되는 거야.
으흠;;; 꼰대 같은 뒷방 노인네 취급을 받았다. 거침없이 내뱉는 조카 재현이 눈이 번뜩거렸다.
그러고서 1년은 지난 언제쯤 새벽 세시 반에 나는 문 앞의 인기척을 느꼈다. 거실 불을 켜니 “이모, 나여. 문 좀 열어줘.” 미안한지 작게 말하더라. “얼른 들어와. 많이 마셨구나.” 술내가 독한 재현이를 우리 식구들이 다 잠이 들어서 큰 딸 침대 아래에 잠자리를 펴줬다. 술 냄새가 찐해서 지갑을 열어보니 하얀 가죽 지갑은 손 때가 시커멓게 묻었고 현금 영수증만 꼬깃꼬깃해서 나오더라. 딱해서 오만 원을 넣어 놓고 회사에 왔다.
물론 속풀이 계란 장국도 파 송송 시원하게 끓여놓고서 조카 대접을 식탁 위에 해놓았지.
며칠 후 사무실에서 “큰 이모도 이쁘게 하고 다녀. 우리는 보일러 안 때도 옷이 최고야. 이쁜 옷 입고 다녀라.” 철없는 요즘 너희들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노상 말을 꺼내지 못하는 나는 이 순간도 몸에 밴대로 멍청했다.
이 아이 일곱 살 때 아빠를 일찍 사별해서 엄마는 얘들을 더욱 끔찍이 여기셨다. 둘째딸도 엄마한테는 더 아픈 손가락이어서 더 맘이 많이 찡하게 당기셨던 거다. 특히나 둘째한테는 항상 가림막이 되어주는 든든한 엄마가 있으니, 꽹과리 소리처럼 시끄럽고 형제들 앞에서 기세가 등등했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고 시끄러우니 피하게 되는 것.
수진이가 무심코 뱉었다. “우리 엄마는 낙이 연속극 보는 거야. 만 팔천 원을 내면 연속극 녹화해서 봐.” “그러니. 돈을 아껴 써야지. 피곤한데 뉴스라도 보고 한국기행, 아니면 세계테마여행, 인간극장 이런 프로라도 보면 되지.” 이 집 문을 열고 나오면서 엄마한테 말을 한다는 것이 나도 일러바침처럼 돼버렸다.
나는 역습으로 된통 당했다. “네가 왜 오천 원이냐? 오천오백 원이지!” 소리를 댑다 지르셨다. 그 자리에서 얼음이 돼버림. 그랬군. 부가세 우스리를 빼고 말한 것이야. 유선방송비. 이걸 세납해야 TV가 나오니 난 기본료만 낸다. 만 팔천백오십 원, 난 오천오백 원.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던 거다. 이런 것도 나는 혼이 나고, 참 이상한 눈물을 가슴에 적신다. 나도 예순을 바라보는 다 큰 어른인데. 길바닥에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울면 시원해지거든.
엄마의 애잔한 마음을 나도 한편으론 헤아림이 되면서 지청구를 녹이고 눅여주고 하다가 툭 튕겨져 나온 말!
“엄마 집에 고기, 엄마 집에 고기!” 어쩌다가 갑자기 이 말이 순간에 튀어나왔다.
고길 꼭 사다 드려야겠다는 강박감 같은 게 어느 찰나에 생겼다. 나 자신도 분별 못하게.
엄마한테 고길 사다 드리고 싶은 맘은 늘 갖고 다녀서일까?
기안84의 눈 깜빡임처럼, 머리카락 꼬무락 만져 댐처럼, 손톱 물어뜯는 아이처럼, 나는 엄마 집에 고길 사드리면 하늘을 얻은 것처럼 기분이 들떠져서인가. 별 희한한 틱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