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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Jul 03. 2024

또 다른 맏이와 마주침

내게 좋은 일? VS 내게 좋은 일!

 제부가 술병으로 가고 둘째는 재혼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신이 나셨다. 당장 돈이 안 나간다는 안도감. 나이 드시면서 얘네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떨굼이 웃음으로 요새 환해지셨다. 일을 못 마쳤는데 빨리 오라는 엄마 전화를 받았다. “네게 좋은 일이야. 어서 와라. 와서 얘기하자.” 서둘러서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엄마도 바로 오셨다. “네가 아주 좋단다. 재현이를 입양해라. 이름만 올려줘. 네가 핀단다. 남의 자식을 호적에 올리면 네가 아주 좋대.” 내 남편이 아직 퇴근하지 않았지만 이것과 상관없이 난 입이 안 벌어지더라. 그냥 멍했다. 달팽이 뚜껑 덮듯이.

세 번을 내리 똑같은 말을 하시더니 그냥 가셨다. 그래서 결국 둘째는 이 아들을 데리고 재가를 했다.

 엄마가 숭어를 특별히 좋아하셔서 마트에서 싱싱해 보이길래 우리나라 바다 것이냐고 몇 번씩 물은 뒤 사다 드렸는데 “네가 당장 갖다 먹어라. 중국산을 왜 사는 거냐.” 난감했다. 화가 풀리셨을 즘 찐 옥수수 따끈따끈한 것을 10개를 샀다. 동생들도 좋아하니까. 엄마가 하나를 반으로 뚝 잘라서 아버질 드렸다. 그러고서 며칠 후 여고생인 내 둘째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빨리 와야 해.”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또 상장을 타온 줄 알고 신이 나서 왔다. “엄마도 이거 먹어. 할머니네 갔더니 베란다에 옥수수 여러 개가 곰팡이 피어 있어. 분명히 엄마도 못 먹고 온 건데.” 아이를 끌어안았다. 식기 전에 먹자고 한다. 그 당시 내게 좋은 일이란 내 아이들이 사이좋게 지내고 두 아이들이 상장 타올 때이다. 운동화 뒷굽이 다 나가도 새 신 사달라고 말 못 하는 나의 안 좋은 것을 닮은 딸 둘이 내게 있다.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하지만 그때 나는 수시로 닳은 것을 점검하고 얼른 사다 준다. 내 아이들한테도 엄마의 사명을 다 해줘야지.

 아버지가 다리를 조금 저는 장애가 있는 착한 요크셔테리어를 태어난 지 한 달 되어 유치원에서 줬다고 데려오셨다. 둘째네는 ‘뽀삐’라고 부르면서 13년을 희로애락 하다가 무지개를 건네주었다. 하도 울길래 “너네 부모가 죽었니, 고만해라.” 나도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이때까지 동물을 키워보지 않아서 차가운 말을 했는데 뽀삐에게 엄청 미안했다. 친정의 보조를 받으면서 힘겹게 사는 둘째네는 강아지를 또 데려왔다. 육십만 원 주고 이쁜 애를 사 왔더라. 큰돈이다 보니 유진이의 시누이가 줬다고 뻥을 치고서 몰티즈 ‘꼬맹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주안에서 육십만 원 주고 사 왔다고 재현이가 나중에 알려줬다.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고선 변도 못 가리고 제대로 봐주지도 않더니 꼬맹일 다른 가정으로 보내더라고.


 그리고서 바로 치와와 ‘땅콩이’를 수진이가 남자친구랑 반 씩 부담해서 데려왔단다.  ‘꼬맹이’는 먼저 집이 아른거려 밤잠이나 제대로 잤을지? 말 못 함 속에 그 만의 감정을 키웠을 것 같다. 얼마 후 그 집에서 아기가 출생했다고 도로 원집으로 보내서 돌아왔네. 낯설고 불안하고를 작은 호두처럼 생긴 두뇌와 숨을 쉬는 심장에선 무엇으로 눌러줬을까? 얘는 이제 근처만 가도 으르렁거리고 사나워졌다. 또 다른 집으로 보내질까 하는 자기 방어 아닐까. 사람의 탈을 쓰고서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꼬맹이도 14년을 살더니 노견으로 눈도 희끄레지고 몸짓에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냈다. 밤 낮이 바뀌어 치매로 짖어대니 깊은 잠을 못자 일과를 보는데 힘겹다고 했다. “네가 좀 키워줘. 나 졸려서 미치겠어. 좀 데려가.” 둘째동생이 목이 컬컬한 채로 전화를 줬다. “그러면 안 되지. 곧 갈 것 같아. 잘 지켜줘. 식구가 교대로 봐주던지. 잘 걷어줘. 거기다 너는 4시에 퇴근하지만 난 24시간 긴장 속 업무잖아.” 저만치 와있는 이별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던가? 이러고서 5일 후 꼬맹이가 소파에 누워 버렸다고 연락을 줬다. 작은 모습으로 또 한 가족이 떠났다. 떠남을 할 때마다 감정을 깊게 나눈 흔적은 절규와 신음 같은 것이다. 수월하지 않게 이별의 아픔은 오래간다.

 나도 과중업무로 체력이 딸려서 매년 한약을 해 먹었다. 그래도 몸살은 두통과 메슥거림으로 나를 친구처럼 찾아다녔다. 회사에서 근거리에 사는 둘째네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 몸이 안 좋아. 어지러워서 다리가 다 후들거려. 너네 집 가는 길 내과에 휴가철이라고 쓰여있나 좀 봐줘.” “에잇! 네가 직접 일찍 가봐.” 단번에 거부당했다. 재현이도 “깜빡 잊었네. 미안해.” 좀 전에 그 앞쪽이라더니. 내 마음 같지 않고 거절을 당했다. 얘네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고, 귀찮음을 언짢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보통으로 넘겼다. 내가 당장 죽는 것은 아니지만, 두통에 속이 울렁거림은 온몸을 휘청이게 하는데 이 정도 부탁도 못 들어주다니. 강아지똥 집어내는 것보다 훨씬 당김이 없는 혐오를 일으키는 정…… 헛헛하고 얍살질에 속에서 더한 메슥거림이 일었다. 

 도깨비풀에 홀렸나?!

내  의지가 아닌 등떠밈으로 벼락을 맞아 정신의 혼동이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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