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살던 이모할머니가 친정집에 쉬러 오셨을 때 땅개(재현이) 아빠가 인절미를 한 번 사다 드린 후 얼마 안 가서 산소 호흡기를 찬 체 돌아가셨다. 이 아이 엄마는 바로 둘째동생.
태몽으로 이 할머니가 “얘, 넌 이 아일 거둬도 된다. 애 먹고살건 걱정하지 마.” 그래서 재현일 품었단다. 이름보단 내가 지어준 땅개가 더 친근감 있고 별명 쫓아 웃기는 머슴아다.
지 아빌 닮아서 인정은 많아도 땅개는 별명으로 불려졌다. 억수비가 소낙비로 팍 쏟아지더니 조금 잦아들 때쯤 국진이빵과 어린이 우산을 들고 우리 집엘 둘렀다.
때마침 점심 준비를 했으니 애 밥도 한 그릇 퍼주었지. 처음엔 싫다 더만, 두 그릇을 맛있게 먹더라고. 무를 밑에 깔아준 고등어조림과 오징어볶음이 맛있다며 “따봉 따봉!” 엄지척해가면서 국진이빵은 누나 먹으란다. (남편ㅡ 남의 편은 오징어를 총각 때부터 올려! 내려! 오징어게임 하듯이 먹지를 않는다.)
이모부가 치킨을 잘 사준다고 “꼬꼬아빠”라고 부르며 잘 놀러 왔던 네가 우릴 곧잘 웃겼다.
나는 땅개 나갈 때 같이 일을 봐야 하므로 내 아이들이 착용했던 노랑 우비와 같은 색의 장화를 신 켜 줬다. 저만치 공원 슈퍼를 지나는데 “이모 이거 백 원 가져.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말하지 마. 할머니랑 우리 엄마랑 아까 그랬어. 큰 이모는 싸가지가 없대. 정말 말하지 마. 약속이다.” 애가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싸가지 없다는 뜬금없고 생뚱맞은 말.
속이 니글거렸다. 좀 전의 점심 먹은 것이 쌉싸름 해지네.
내게 준 백 원이 필요했나 보군. 해거름 때 마주치니 “이모 그거 백 원 있으면 나 도로 줘봐 뭐 사 먹게.” “하하하!” 땅개라서 잘 웃겼던 너를 보고 웃었다. “감자, 고구마, 계란이 왔어요. 무~말랭이.”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뭐긴 모야 모기장수지.” 정말 웃기지만 솔직하다.
내 큰 아이가 고등학교 입학식 하고서 일주일 될 때 볶음밥 도시락을 급히 들고나가다 집 앞 입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었었다. 그때도 두 번씩이나 국진이빵을 들고 큰 딸이 누워있던 병원엘 찾아왔다며 “엄마, 땅개가 또 국진이빵 들고 왔었어. 학교 파하고 왔대.”
“그래 기특하다. 어린아이가.” 지난 얘기다.
우리 집도 엄마집과 이 땐 한 정류장의 거리여서 오가긴 쉬웠다. 사촌이라고 네가 병문안을 왔구나!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만 봐도 웃기고 말투도 코메디언 같은 네가 어릴 때 정을 많이 풀었어.
군대를 한 달 서둘러 제대한 땅개는 사격을 전국적으로 잘 쏜 명사수라고 이름이 올랐기에 ‘집으로 갓!’이 가능했던 것이다.
내 큰 딸 나해랑 한 번 붙어 봤으면 좋겠는데 텄을까? 너희가 왕래를 끊었으니.
보드게임도 이 누나랑 한 번 맞볼 기회는 있을지 텁텁하다.
오늘도 나해 누나랑 소현이 누나가 그러더라. “땅개는 웃기니까 개그맨도 하고 발라드도 하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