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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참지 않아도 덕을 보게 된다

(9) 언덕을 비비다

by 블라썸도윤

어제 원추시술을 받았다. 새벽 6시 반까지 오라 했는데 대학병원 경비분이 원무과 앞에서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8시 반이나 돼야 개원이 된다고 하셨다. 겉옷 걸치기를 잘 가져왔길래 식전 댓바람을 막을 수 있었고, 주차비는 10시간 미만이 무료여서 내가 좋아하는 추어탕 집 앞에 일단 세워놨다. 탕을 끓이시는 분이 주인장 같은데 벌써 미꾸라지를 양동이에 그물망으로 퍼올려 담고 있었다. 아침 9시에 영업 시작이지만 종일 주차해도 된다고 하시기에 손님이 항상 북적북적 매는 곳에 주차하게 해 주셔서 고맙다며 10시엔 병원으로 주차하겠다고 했다. 이른 시간에 하루를 여는 사람들! 병원 오는 방향의 도로에 차량도 만만치 않게 많았다.



나는 조금 뻔뻔스러워진 것 같다. 예전엔 불편해도 참아야지, 저 사람이 편하면 되지 그렇게 넘어가 주곤 했는데 지금은 왠만큼 할 말을 하며 사는 것 같아서 불편함을 억지로 참아내지 않는 혜택도 본다.


아주 친절한 병원 가족들의 느낌을 마음으로 담고 있을 때 수술대에 올랐다. 준비 중인 간호사 손이 내게 닿았는데 얼음장이었으며 난 참아내다가 이를 닥닥닥 부딪히며 춥다고 했다. 병원균이 침투하지 못하게 실내 온도가 상당히 낮은 것에 이해하며 떨었다가 결국 많이 춥다며 떨리는 입술 밖으로 말을 꺼냈다.


보온덮개가 바로 목까지 덮어진 채로 수술을 마쳤다. 참고만 살 필요가 없음을 수술대에서 알았다.


집에 와서 몸에 현기증을 느끼며 잠을 도통 이루지 못해 물수건을 이마에 댄 채로 비상 수면제를 먹었다.


병원 가기 전엔 세탁기 아래 벽면으로 물이 샌다며 관리사무실에 찾아갔었다. 직접 관리부장이 와서 봐주셨는데 세탁실 수도꼭지 문제라며 부속을 갈아 끼워야 하며, 이 아파트의 부속품을 가지고 있는 곳은 딱 한 군데라고 해서 연락처를 받았다. 단지가 큰데 독점이 될 수 있나 싶었다. 일단 병원 가기 전 이틀을 전화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아 딸내미가 인터넷으로 업체를 선정했다. 이틀을 허비하고 설마 한 곳만 있을까 싶어 검색 인용으로 다른 업체분이 오셨다. 이분이 인터넷에 올린 상황대로는 고칠 것 같아지지 않고 부속품이 없어서 직접 방문으로 수리하려는 순간 관리사무소 부장 말이 떠올랐다.


다른 철물점에서 수리하면 수일 내로 물이 또 샐 거라고 했다. 수리업자 계실 때 관리실 분 와서 보시라고 확인차 연락했다. 부장급은 짜증을 냈는데 관리소 기사분은 이분이 수리하시는 부품도 맞는 거라고 했다. 아휴, 내가 관리 사무소에 연락을 또 하지 않았더라면 확인이 안 될 것이고 혹시나 수리한 쪽에서 물이 새니 와달라고 하면 오겠냐고. 물이 새는가 자주 들여다보고 신경을 많이 썼을 거 아닌가.


몸을 제대로 쉬어 주어야 하는데 세탁실 앞에서 꽈당 미끄러져 옆구리가 결렸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니까 업자분이 나보다 스무 살은 젊어 보이는데도 먼저 여쭌다. 잡아드려도 되냐고 해서 팔을 내밀었더니 붙잡아 줬다. 공연한 날이다 싶었다. 그래도 할 말을 제대로 하여 확인하는 바람에 이후의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게 됐다. 물이 새나 자주 들여다보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참지 않아서 다른 업체 연락처도 알게 된 것이다.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은 아니다. 게임방에서 나온 고등학생들이 정오와 오후 네 시만 되면 사무실 옆으로 와서 담배 태우고 꽁초를 막 던져도 부랑아 불량 학생들 표시 남에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한 번은 했었다. “요기 병원 옥상에서 던졌잖아요.” 그러면서 바로 불똥이 살아있는 담배를 던졌다. 중학생들인지 알았더니 내게 들르신 분이 그런다. “턱수염 깎았는데요. 고등학생이에요.” 공부시간에 허투루 시간 낭비하는데 두 번 경고를 재촉이진 못했다. 씁쓸했다.


그 불량 학생들은 게임방이 문을 닫는 날 이 동네를 뜰 것 같다. 험한 세상에 손주뻘 같은 아이들한테는 말을 못 하니 이것이 참 안타깝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은 표현해서 불편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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