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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실어준 가을걷이

(10) 언덕을 비비다

by 블라썸도윤

댓바람은 나무에 걸쳐 앉았다가도

모가 난 귀퉁이를 깎아내고

기어가다 걷다가 뛰기도 하고

살랑대면서 허리춤으로

꼬시듯 야실거리는데

잎사귀는 그새 초록을 지우고

갈변으로 붓칠하고 있던 모양새


세상을 만지작 주물럭대더니

여름이란 찜통더위를 데려가려고

벼르고 온 길에 달덩이 하나 올려줬다


솔잎 모아 밤알 넣은 송편을 쪄내는데

가을걷이 바리바리 달구지에 실어놓은

아비는 툇마루 비스듬히 누워

옷고름 새 속살 닿게 안겼던 자식이

꼬마였을 때를 잠시 회상한다





어제 Sun ARIZONA 글벗지기님께서 인절미 글을 올리셨는데 고향 순천의 추석 이야기였습니다. 차례를 지낼 때 올리는 상차림에 대하여 언급하셨는데 저도 이쪽 경기도 인천 쪽의 제사음식에 대한 글을 써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어요. 매우 궁금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어려서 친가가 성당에 다니기 때문에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 가지고 나온 튜브 모양 사탕이랑 설탕에 각가지 색을 입혀 꽃을 따라 만든 사탕을 너무 먹고 싶었어요. 그런 것은 어디서 사 먹는 것인지 참 궁금했지요. 많이 부러웠어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으며 이때부터 제사를 지냈습니다.


상에 삼색나물을 올릴 때 경기도 지방은 나물을 꼭 짜서 팬에 볶아내지만 제 시가 쪽 순천에선 나물에 들깻가루를 넣고 주물럭 한 다음 새우와 물을 첨부하여 약간 자작하게 끓여내지요. 그리고 경기도 쪽은 산적에 소고기를 넓적하게 눌러서 팬에 익혀내는데 순천은 산적이 커다란 꼬치 전 이데요. 그런데 손으로 뜯어먹어도 아주 맛있습니다. 고기로는 닭목이 세워지도록 이쑤시개로 살짝 고정한 후 대강 쪄내서 올리고 계란 삶은 것을 반으로 갈라 흰자 위를 지그재그로 모양을 내죠. 경기도 쪽은 조기찜이 올라오는데 순천은 양태랑 조기찜을 올리는 게 틀리더라고요.


자작한 나물볶음이 들깻가루 입어서 부드러운 맛이 있습니다. 동서가 시숙 막 씻고 나온 시꺼먼 때 잔뜩 낀 다라에다 나물에 깻가루 입히는 걸 보고, 시금치도 여기에 묻히는 것을 보고는 입에 절대로 대지 않았어요. 경기도에서 장대라고 부르는 양태만 먹었지요. 인천 사람이라 생선만 먹냐고 했어요.


그쪽 동서네는 근방에 친정이 있어서 친정 형제 부부들 상을 따로 봐줘야 했으며 설거지는 계속 나왔지요. 나다니는 대문도 없는데 남편 친구 모임에도 나가지 말라고 박았으며, 저는 시부모가 안 계시니까 아랫집 시고모님한테 용돈을 드리러 가서 조금 쉬다 오기도 했어요. 제가 올라오는 날 동서 몰래 미리 절 주려고 사다 논 양태를 싸주셨어요. 이것이 명절의 기억이지요.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고 집에서 간단히 지내는데 저희는 녹두를 싫어해서 콩과 깨 그리고 건포도, 밤 이렇게 네 종류로 송편을 만들어 올립니다. 저는 송편을 아주 예쁘게 한입 크기로 빚습니다. 순천에선 빻은 찹쌀을 찬물에 반죽해서 동그랗게 빚어 뜨거운 물에 익힌 후 카스텔라 가루에 묻히거나 백설기를 쪄서 올리지요. 이것 외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요. 나이층이 안지는 큰동서네는 한 달 치 월급을 갖다줘도 고기는 상에 없는 거예요. 내려올 때 복받는 거라며 쌀도 두 공기는 퍼담아 오라 해서 두 번은 그리하곤 모른 척했답니다. 남편과 상의 후 돈을 따로 안 내고 긴 머리 풀어 헤친 동서 오토바이 뒤에 타고 가서 장을 보는데 양념까지 죄다 이 돈에서 나가게 하는 거예요. 그 돈이 그 돈이었답니다. 동서네는 시내에서 식당을 운영했으며 농사는 고구마와 감나무, 개똥 쌓인 위에 살구나무가 있지요. 저는 시골서 올라가면 안집에 먹을 것을 따로 사다 줬어요. 젊은 엄마가 주인이었는데 서로 아플 땐 부엌문 앞에 쌍화탕이랑 감기약을 놓아주기도 했지요. 이것이 명절 이야기여서 특별난 것이 없기에 시로 대신해서 올립니다.


https://brunch.co.kr/@yeses1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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