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콩깍지 팥깍지
잔가지에서 이는 바람처럼, 굴뚝의 연기처럼 스토리는 표시가 나며 일어나. 내가 남동생 회사 그만두게 될 때까지는 회사 이야기가 디밀어지지.
24시콜의 미경씨도 보고 싶고 사적인 집안 얘기해 주신 기사분들과, 나와 밥을 먹고는 영종도를 산책시켜준 상급 업체 조카사위뻘 직원과도 유지되고 있을 동안의 머문 추억거리가 있다.
사실 J대 나온 90년생 직원을 하나 더 쓰게 돼서 내가 나오려고 했는데 업무 실수가 잦고 비행기를 거꾸로 태워 업체에서 말이 나는 바람에 나는 짐 쌌던 것을 다시 풀게 됐다.
물건이 분실되면 아작이다. 아찔해. 우리 대표는 아주 차갑고 출고 직원을 대졸만 투입시키려고 해서 직원들이 의자에 엿을 붙여놨나 게임에 더 집중하려고 했지. 본인의 업무는 열외였다.
용복씨는 나랑 손발도 맞고 협조가 잘됐는데 퇴근 때 전철 안의 옆자리에서 내 업무폰의 개인 톡으로 “저 낼부터 그만둡니다.” 보내고는 끝이다.
이들 직원은 09시 반 출근에 퇴근이 오후 6시 반인데 저녁까지 먹게 하고서 업무 엔딩을 시켜 줬건만 저녁밥을 사양하고서 내가 하는 업무를 보고도 그들은 시간 때우기식 이었다.
이렇게 남 부리는 것도 힘이 부친다.
내가 없으면 동생은 대표여도 혼자 기상해서 업무를 봐야 한다. 난 사실 새벽 출고 시 동생을 깨워주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나중엔 옆의 분이 딸내미랑 교대로 삼촌을 깨워야지. 내가 쓰러지겠다고 코치하는 바람에 딸내미의 도움도 받았지만 이 아이한테 미안했다.
동생이 알람 소리가 크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면 일어날까 하여 자명종 알람시계를 새것으로 갖다가 놔줬으나 헛됨이어서 도로 가져왔다.
화물이 늦게 나오니 얼른 접수해야 하는 창고 1순위는 FDX(페덱스)여서 나를 한국공항에 떨궈주고 동생은 이동했다. 1시간 넘게 다리가 후들거리고 쌀쌀해서 움츠리고 있는데 내가 서있는 곳으로 꾸리꾸리한 쾌쾌한 냄새가 났다.
소가 왔나 하는 순간 진돗개만 한 갈색 개와 그보다 덩치가 더 큰 어미 개가 케이지 안에다 변을 잔뜩 본체 비행기 하강 후 창고로 바로 나오게 된 거. 나이가 지긋한 두 분은 서로 박사라고 호칭하는데 아마도 한 분은 수의사 같아 보였다. 검역서류 제출과 차량 이동 등 이 분 둘이서 절절매며 두 개에게 영어로 “스테이!”(stay!)를 계속 명령하는데 얘들이 말을 안 들었다. 내가 “기다려!” 했더니 단번에 가만히 있더라고.
이어서 “싯”(sit) 했는데 “뭐야.” 이분들이 왜 말귀를 못 알아듣냐고 투덜댔다. 내가 또 나서봤다. “멈머야! 앉아.” 어라, 한국은 처음인데 우리나라 말만 듣네. 이들이 그런다.
“희한하다. 한국말로 합시다.”한국말 명령을 금방 알아들은 얘네들을 내게 잠깐 맡기고 창고로 움직이셨다. 꼬리가 엄청 길고 털이 밋밋한데 눈도 그렇고 내 맘엔 썩 와닿지 않았지만 어느 나라였는데 수입한 곳이 지금 생각이 안 난다. 첫 번째 우리나라로 들어온 특이한 종류라고만 한 분의 박사님한테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을 전혀 안 해 본 큰 개들은 대번에 한국말을 알아들었다. 신기했다.
난 체격이 왜소해서 가딱이나 엉덩이 살이 빈약해서 기사분 아들이 쓰던 의자를 가져다 앉았다. 이 의자가 허리를 잡아주어 아주 편해서 그나마 덜 피곤하니 차량 확보가 다 되면 짬을 내어 유튜브 명상을 많이 했다. 문학관도 또 들여다보고 스트레스는 여기서 풀었다.
떡을 사다 주셔서 같이 점심으로 떼웠던 이분은 ‘남자 장화홍련’이라고 내가 닉네임으로 불렀던 분. 큰 따님이 내 큰 아이와 같은 동갑인데 뉴스에 크게 보도된 페미사건 주인공이었다.
똑똑하고 영리한데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다 온 이이의 딸내미가 터무니없이 요금이 과하다며 빙빙 둘러서 오지 않았냐고 따지는 바람에 택시 기사는 “어린 것이 어디서.” 한 마디와 이 아가씨 뺨을 냅다 후려 때렸다.
둘 다 파출소에 불려갔는데 경찰이 운전한 기사 편을 들더란다. 이때부터 페미가 된 이 딸내미는(이름도 기억해. 이 집 가족들) 남자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 그래서 사건이 되고 부인은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변도 못 가릴 정도의 충격) 2년 후 국제변호사를 통해 외국에서 사건이 마무리되니 부인도 건강이 회복되어 우리 사무실에도 들리곤 했었다.
기사분들이 우리 사무실에 자주 들르고 인수증도 갖고 오시면서 여러 사적인 얘기들을 하시는데 재미가 당겼다.
좋지 않은 소식 또 하나는 인수증을 본인 서랍에 넣고 나가시기 전 방금 대출 저렴 문자에 대해서 말이 나오길래 절대 하지 마시라고 일렀는데 문 열고 나가자마자 3천8백만 원을 보이스피싱 당하셨다. 내 말을 새겨듣지 않으셔서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순식간에 당하셨다. 다음날 일찍 오셔서 억울하다며 녹음 소릴 들려주셨는데 그 사기꾼은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거기다 처음에 3백만 원을 선입금 해야 금융감독원에서 대출금을 저금리로 내준다고 하여 인터넷뱅킹을 했더니 5분 안에 이 돈을 다시 넣어주며 금액이 약하니 3천8백만 원은 있어야 대출금을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있다는 속임수에 확 넘어가신 거다.
이분은 한 달을 쉬고서 보름 더 맘을 삭히시곤 우리 일을 해주셨다. 육십 후반이신데 고아원에서 데려온 각각의 여아 두 명을 키우신다네. 다른 분이 나중에 일러주셨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입을 수 있는 명품 옷은 어디 가야 있냐고 내게 묻기도 하셨다.
나랑 고등학교 때 위문편지 주고받았던 국군 아저씨. 명필 글씨와 성이 유난히 특이했던 설승식 기사분은 우리 배송일을 가끔 해주셨고 네이버 검색창에도 뜬다.
그리고 같이 학원 수업받던 우섭이 친구는 (군대 갔다 오면 바로 결혼하자던 목소리 좋은 남친) 바로 결혼할 수 없는 나의 사정으로 내 동창과 결혼을 했다. 항공과를 나와서 공군 제대 후 바로 대한항공 정비고에 취업이 됐다. 얼마 전 대한항공 직원이었던 헤어모델 남편이 이 친구가 높은 직급이라며 사진까지 보여줬다. 세상이 참 좁다고 새삼 느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름이 돋는 얘기를 꺼내본다.
4120차량 분과 동생이 잘 아는 기사분이 우리 운송일을 하겠다고 인사차 방문했는데 4120분은 좀 작업복 바지가 주름이 가고 어제도 땀 흘리며 입으신 옷 같았는데 밝은 해가 비쳐 보이고, 같이 온 이는 까망츄리닝을 위아래 세트로 아주 깔끔하게 입으셨는데 이 옷을 보면 머리가 땡기고 쑤셨다.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담날 까망츄리닝 입으신 분이 자살을 하셨다고 문자가 날아왔다. 아 훗! 숨을 크게 들이셨다. 그분 발목 쪽에서 섬찟함을 느낀 게 다가올 죽음 때문이었을까?... 4120분이 친한 지인으로서 부조를 알리고 장례 뒤처리도 끝까지 해주셨다고 했다.
군대 건빵을 갖다주신 분도 있고 구미 엘지이노텍 담당이셨던 분은 윗옷 앞자락에 담아온 자두를 가져와 쏟아부어 주셨는데 이때의 감성이 난 좋았다. 아침이슬 맞아 온 것처럼 물기가 조금씩 투명하게 맺혀서 내 책상 위에 쏟아져 나올 때 내 얼굴에 화기가 돌며 입가가 벌어졌었다. 나도 같이 따라온 것 마냥.
(이다음에도 내 가슴 한 자락에 붙어있을 추억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업체 상무님은 내가 그만두었는데도 연어를 소스까지 담아서 큰 아이스박스에 보내주셨다. 이 상무님은 지금 전무님이 되셨고 케익도 대형 으로 보내 주셨던 게 나처럼 안다미로 큰 손임은 틀림없다.
전무님 고맙습니다*****
목소리도 시원시원 좋은 목소리끼리는 통한다. 마음이 열어진다. 잘 알아듣기 때문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