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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엔 함께해

(15) 콩깍지 팥깍지

by 블라썸도윤 Aug 30. 2024

 엄마랑 동갑이신 아버지는 올해 여든일곱 이시다.

청춘에 편지로 끌리게 하셨고 엄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계셨으며 내 기저귀도 비벼 빨아 주셨더랬는데 홀어머니의 강한 눌림으로 점점 할머니를 닮아가셨다.(엄마가 자주 말해 주심.)

 

 엄마 사진을 거실에 쭈욱 깔아 놓으시곤 막냇동생이랑 한 세대가 되면서 불편한 심기나 부탁의 요구는 역시나 군말이 없는 편한 나에게 청하신다.

나는 습관이 돼서 생활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원래 식성이 까탈한 아버진 식재료를 사 오라고 권하시고 난 사다 드리면 그저 그만인게 엄마와 같이 살림을 도모해 주셨기에 야채도 잘 다듬으시고 소금양도 잘 맞추시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이질 담그신다며 반접만 사 오라는 명을 받았다. 손수레를 잘 챙겼네. 한 접만(비닐 한 망 100개) 살 수 있지 반 접은 안 된다고 해서 구르마로 싣고 오는데 좀 무겁다.


 머리를 틀어 올리고 중앙공원을 들어선다. 승리가 벌써 날 아는 체를 해줘. 첫사랑, 속 깊은 사랑이 여기서 내 수레 위로 얼른 오른다. 보고 싶어 아가야! 고마움으로 넘치는 내 아기! 쪽쪽쪽, 얼굴 비벼대기랑 인사♡ 아주 반갑다! 같이 하는 맘 쫓아서 쓰담쓰담♡♡

내 새끼 이쁜 거 승리(반려견)가 요기 저기 조금씩 묻혀진 자리에 다른 이들도 한 번씩 만져 보게 심심하지 말라고 너른 자리해줬지.

말은 가족이지만 다들 하는 일이 있어서 산책을 소홀했으니 승리는 이런 자리에서 실컷 놀아야 해. 맘껏 뛰어놀아야 해.


 망초 꽃밭으로 흰나비 무리가 꽃술을 툭툭 치면서 팔랑팔랑 난다.

이 공원은 승리의 토지!(내 생각) 강아질 키워 보면서 아니 가족으로 맞아들이면서 색다른 일기로 파스텔을 칠해준 복실복실 내 새끼가 누워 있는 자리.

강아지를 키우는 데는 누구나 다 이유가 있다.


 내가 풀지 못한 숙제를 이쁜 작은 아이한테 하소연을 했더니 사달이 났다. 그러냐며 끄덕여 준 애한테로 우울증 병이 와 버렸으니 어째.

다행인데 중3 겨울방학 때여서 길병원 정신과에 두 달은 입원을 하게 됐다. 밤 잠을 한숨 안 자고 먹지도 않아서 결국 입원 치료를 고집한 거. 고1이 되니 퇴원 조치를 하게 됐으며 무섭다고 해서 등하교를 시간 맞춰 나랑 반개월은 함께 했다. 통근버스를 줄 서서 기다리는 직장인의 얼굴도 익혀지게 될 즈음 아픔이 덜 가신 아이가 마음의 치료 센터를 날 데리고 갔다. 들어가서 젊은 코칭 지도자들한테 호된 야단을 맞았다. 친정엔 왜 신경 쓰고 자식을 아프게 했냐며 눈까지 매섭게 떠서 눈물을 벌컥벌컥 쏟아내고는 아이 손을 꼭 잡은 체 누런 실내문을 뚫고 나왔다. 내 아이도 울었으며 아픈 애한테 미안해를 연거푸 해댔다.

그때는 무서웠으며 내 자식이 탈 난 것에 무지 미안함이 넘쳐댔다. 애를 토닥토닥 쓸어주면서 꼭 이 병을 물리칠 수 있도록 기도를 했다.

제발을 서두로 올리고 간절함을 애끓도록 살려주세요!


 직업엔 충실해야 했고 나에게도 아직 끓지 않은 밥솥이 얹혀 있는 맘구석이 있는 걸 어쩌면 좋으랴! 세월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시간아! 나와 내 아이가 아파서 머문 이 자리 얼른 비껴가게 해 줘. 시간아 빨리 가주라. 멀리 떠나줘. 애절하다.


 시험날이라 점심때 온 아이가 가방을 내리면서 “엄마 강아지 키워볼까?” “오, 그래 지금 갈까?” 주섬주섬 윗옷을 걸치고선 기운을 내며 ‘쿨펫 애견숍’으로 ‘쿠퍼’(이 숍에서 불러준 이름)를 만나러 가는 거, 아니 데리고 오는 거, 내 아이가 안고서 와 주는 거. 가족에 품게.


 새 가족 들이기. 무조건 가서 꼭 데리고 오자.

우리의 이유는 우울에 도움이 돼주는 활달한 아기를 안아 오는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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