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꽃잎 물고 날아가는 별들아
아버지 모시고 딸내미랑 매달 한 번 식사 약속차 흑염소 집에 들렀다. 한 뚝배기씩의 탕을 호호 불어가면서 먹는데 비스듬히 있는 테이블 아저씨가 꺼낸 말이 귀를 풍요롭게 해준다.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이해를 못 해줄 건데 사위 본 나이가 되니 그럴 수 있겠구나! 넘어가 주면서 고개도 끄덕거려진다. 여유가 생겨나오는 나이 탓이랄까? 웃을 수 있다.
한 수저 더 뜬 아저씨는 앞의 친구 두 분 앞에서 부인과 다퉜던 얘길 꺼냈다. “전에 나 집사람과 다퉜었을 때 그것도 애들 문제로 큰소리가 났는데 화가 났어. 츄리닝 입은 채로 포장마차로 갔지. 쐬주로 풀려고 갔는데 나 혼자 홀짝홀짝 마시다가 옆을 보니 네 명의 아줌마들이 쐬주 4병을 마셨더라고. 내가 주인장더러 저 테이블 얼마치 나오냐 했더니 4만원 정도 나왔대. 안주가 얼마인지 묻지도 않고 내가 바로 계산을 해줘버렸어. 옆의 아줌마들은 같이 더 마실 수도 있다 했고 난 그날 기분을 아도했어. 포장마차서 그렇게도 먹어봤네. 옆좌석 술값을 내가 다 내주고 속의 기름을 걸러내곤 집에 들어가서 조용히 잤지.”
아도를 바로 검색하니 양보라고 떴다. 이런 양보를 해서 기분을 풀었네. 양보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도 해주는가 보다. 술기운의 배려?를 열은 남편분의 아내는 이 상황을 모르니까 다행이다. 한 성미 가진 부인이 뒤쫓아 와서 아도를 봤다면 술상이 바로 엎어졌을 텐데 아저씬 그래도 기분이 풀렸었다고 했다.
양보는 어디까지가 양보일까? 내가 맏이여서 무조건 양보했던 이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술값을 대신 내어준 아저씬 언짢은 기분을 풀 수 있었던 것이고 난 울분을 속으로만 쟁여놔서 찌꺼기가 나중에 병이란 화근으로 달려듦의 차이남 일런지.
아도란 우리 나라말을 하나 배웠으니 식사의 본전을 뺀 것이다. 물론 염소탕값은 아버지가 지불하셨지만 모르던 단어 하나를 얻었으니 아도로 기분 전환되는 일상과 맞먹는 것일 테다.
퇴근해서 오니 내 운동화가 베란다에 널어져 있다. 딸내미는 말없이 이쁜 짓을 또 했다. 내게 표시 없이 신발을 빨아서 햇볕 바람 쐬어 준 것이다. 내 운동화를 빨아준 딸내미의 아도!
아도는 양보란 말보다 잘 써먹지 않은 말이라 입에서 척척 껄어붙지는 않지만 배려와 베풂의 속 깊음이 내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