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학창 시절이 아니어도 지금까지 여러 이유로 우울해지면 난 땅굴로 들어가서 어둠을 흡수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도록 나 자신을 채근했다. 침대에 누워서 새벽 늦게까지 불안한 상상의 상상을 이어나가고, 온갖 SNS에 내 깊은 무의식에서 욕망하는 계정들이나 게시물들을 빠르게 읽고, 침대에 앉아 맥주캔을 계속 비워내고, 다시 누워서 눈만 감고 상상 속에 빠지고. 일상을 살 때는 말도 거의 안 하고, 처지는 노래만 듣고, 일정이 끝나면 바로 혼자 집으로만 가버리고. 이렇게 사람이 우울해지고 어두워지니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러는 나를 보는 걸 힘들어했다. 특히 성인이 되면서는 주변인들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우울한 시기가 오면, 되려 열심히 밝은 가면을 썼다. 지금 글을 쓰면서 회상하니 그때는 나 스스로 우울한 감정에 고립되길 선택했던 것 같다. 일종의 중2병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러다 한창 연애로 마음고생 하던 어떤 날에,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예쁜 노트를 사고서 초등학생 이후로 쓰지 않던 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숙제가 아니니까 매일 쓰지 않아도 되고, 오늘은 뭐 했고 어딜 갔고 누굴 만났다는 육하원칙의 규칙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일기. 처음 일기를 쓸 때는 연애 중에 온 우울함과 공허함을 쏟고 싶은 마음이었다.
곧이곧대로 일기 속에 나를 ‘나’라고 쓰고 싶지 않았고, 느꼈던 감정을 ‘불안’이나 ‘질투’ 같은 직접적인 단어로 쓰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 일기를 훔쳐보면 너무 적나라한 내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등장인물이든 감정이든 그대로 쓰는 게 좀 촌스러운 거 같아서? 아무튼, 난 일기를 쓸 때 당시 그 글을 쓰고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비유했다. 그렇게 써오던 게 어느덧 몇 권이 되고 지금처럼 ‘시’의 느낌을 조금 가진 것 같다.
우울한 감정에 고립되거나 젖어야만 할 거 같은 느낌은 일기장에 글로 녹이면서 자연스럽게 중화되었다. 그 효과를 의도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울감에 숨이 막혀 죽지 않은 건 일기장 덕분 같다. 스스로 땅굴에 들어가는 시기, 주로 어두운 방에 노랗고 희미한 불빛만 켜놓고 가만히 있을 적에도,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우울한 감정이나 공허함은 일기장에 여러 모양으로 쓰였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으로는 힘들어도 나에게는 어느새 혼자 어두운 방에 있는 시간이, 다른 무언가로 치환될 수 있는 공간이고 상황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어두운 내 방은 지친 에너지를 채우는 공간이면서 몸을 피하는 곳인 건 여전하다. 온도나 공기가 고여있어서 답답하면 금세 우울해지는 단점은 있지만. 시간이 또 흘러 요즘은 감정을 치환하고자 골몰할 때, 방보다는 산책으로 보내는 중이지만, 여전히 과거에 일기장에 정리하던 때가 좋아 ‘어두운 방’은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토끼인간입니다. 결국 일기를 풀어쓴 글이겠군요. 덕분에 오늘은 방에서 일찍 잠들었습니다."
부제 : 시 써본 적도 없는 사람이 시를 쓴 이유 - 2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