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2017. 10. 7. 의 일기
첫 독립을 하기 직전이다. 이 나라의 30대로 살면서 느끼는 것, 그리고 그동안 함께 살았던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정말 나에게 어땠는지 되새기는 것, 이 둘을 생각해 봐도 지금이라도 독립하는 건 잘하는 것 같다. 그래, 원래는 필요하던 일이기도 하고 더 빨리하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아쉬운 것 같다.
우리 집이 나를 불안하게 하고 내 힘을 빼앗는다는 사실, 이건 우리 집 구성원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쏙 빼고, 삼십 년 가까이 함께 살던 ‘우리’를 벗어나 홀로 살겠다는 이유를 나는 ‘자립과 성장’이라는 뻔한 내용으로 설명했다. 그때, 내 설명을 듣는 구성원의 표정에서 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알아챘다. 아마도 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사회 초년생 또는 내 또래가 경제적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부리는 허영으로 봤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꿈과 이상을 가지고 우리 집을 나가는 게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살고 싶어서, 그리고 살고 싶어서 스스로 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스스로 살고 싶어서’와 ‘살고 싶어서 스스로’는 떼어다가 나열하면 같은 의미인데, 그때 나에겐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닌 생존 이유였다.
이후 나는 명절에 큰집이나 외갓집도 잘 가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
우리 적당한 거리에서 살아요. 가끔 투정을 빙자한 안부를 전해도 기분이 좋은 거리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