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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브브 Oct 23. 2024

09. <데일리>

-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사람별에게


 그동안 좋은 거만 보여주려고 편집되어서 수고 많았다. 너 때문에 새로운 세계가 열렸고, 너 때문에 새로운 만남도 겪었고, 네 덕분에 불안했고, 네 덕분에 고통스러웠어. 나를 기록하던 또 다른 방향이라 너는 사실 도움이 되었어도, 응당 네가 철저히 망하길 기도해. 빨리 미니홈피처럼 역사로 사라졌으면 좋겠어. 또 이름만 다른 악마가 새롭게 나오겠지만, 다음에 한결 수월하게 퇴마 될 거야, 네가 철저히 무너지면.



 알아야만 할 것 같은 게 넘치는 시대에 '아는 게 힘'이라는 말. 유리보다 약한 멘탈을 가진 나에게 이 말은 불안을 해소하고 싶어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탐색만 하게 한다. '불안'이라는 증세를 가라앉히고 싶어서 인터넷을 떠돌아다니며 얻은 짧은 영상 속 지식(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에서 난, 빠른 편집과 플레이 속도에 맞춰 관련 영상만 계속 넘기고 넘기며 시뮬레이션만 뇌에서 돌릴 뿐이다.

from 'miricanvas'

 또 이렇게 저렇게 잘 될 것이니까 따라 해 보라는 사람들 중 몇은 자신의 SNS에 이미 성공한 사람의 표본 이미지를 게시해 놓는다. 자연스럽게 지금의 내 모습과 등치 시키면, 그 큰 간극의 막연함이 그나마 내게 살짝이라도 주어진 자존감을 마구 베어낸다.


 이렇게 나를 돕겠다며 마구 내질러지는 정보들, 특히 '귀하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는 알고리즘의 추천 콘텐츠들은 종종 나를 잠 못 들게 만든다. 끊고, 차단하고, 없애면 된다는 말이 이제는 옛 말이 된 시대. 쏟아지는 정보 덩어리들에서 나를 잘 지키고 나한테 필요한 것만 잘 골라내는 것도 이젠 능력이다. 나는 아직도 열심히 그 능력들을 부딪히고 깨지면서 키우는 것 같다.


 아, 아닌가? 그 능력을 깎아 먹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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