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직서는 이미 시로 썼어요
암막 커튼, 노란 탁상등, 어두운 방, 침대 위, 이불속.
어떤 친구는 이런 단어들이 너무 숨 막히고 답답하다고 한다. 난 그런 친구가 왜 그런 반응인지 이해하면서도 가끔 그런 반응이 참 의아하다. 실은 그 단어들만큼 편안하고 포근한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것도 많이 없는데 말이다.
나는 주기적으로 ‘토끼’가 되는 사람이었다. 토끼는 무서운 상황을 피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요리조리 도망치거나, 그 와중 먹이를 찾거나, 결국 지쳐서 어두운 굴 가장 깊은 곳에 몸을 웅크린다. 학창 시절의 이 토끼는 주로 시험기간이 끝난 다음 주가 되면 굴 깊숙이 숨었다. 갓 성인이 된 이 토끼는 연애가 끝날 때 굴을 찾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이 토끼는 주말이나 공휴일이 되면 굴에 박혀 있었다. 특히 그 굴은 주로 침대가 있는 어두운 방이었다. 편히 ‘내 방’이라는 곳. 굴 안에서 토끼로 지내는 기간, 마치 <드래곤볼>에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그곳. 정신이든 몸이든 지친 것을 회복하고 싶었지만, 처음엔 나도 갑갑했다. 홀로 방에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날 며칠을 별말도 없고 별 내색조차 없는 상태로 지냈다.
혼자 굴을 파서 어둡게 지낸 이유는 지금 와서 보면 참 별거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를 예로 들어본다면, 그 당시 땅굴에 있던 이유는 내가 시험을 망쳐도 너무 망쳤기 때문이었다. 그 시기는 시험 하나가 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표정도 행동도 망친 시험 탓에 어두웠던 거였다. 아마도 시험을 망친 대가로 묵언 수행이나 극도로 우울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라고 스스로 체벌한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유난도 이런 유난히 없지.
"안녕하세요, 토끼인간입니다. 눈치 안 보고 사는 법을 모르죠."
부제 : 시 써본 적도 없는 사람이 시를 쓴 이유 - 1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