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터민스터 사원, 빅벤, 런던 아이
2018년 8월. 유럽에서의 첫날, 영국 런던의 아침이 밝았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피곤한 몸이었지만 일찍 눈을 떴다. 지난밤 동화 같은 런던의 한적한 마을 풍경이 창문 너머로 눈에 들어왔다.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았고, 나무와 집들이 어우러진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마을이었다. 상상하던 대도시 런던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유럽 6개국 여행을 한다는 기대만 가득했는데, 첫날부터 느끼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짧은 여행 일정 동안 6개국을 돌아야 하는 강행군으로 이탈리아와 일부 국가를 빼고는 거의 매일 새벽에 짐을 싸야 했다. 여행 캐리어를 풀었다 쌌다의 훈련이 반복되었고, 낮에 이동 강행군으로 밤마다 숙소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힘은 들었지만 새롭게 펼쳐지는 유럽의 풍경에 고단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비싼 경비 내고 온 여행이니 하나라도 더 눈과 사진에 담으려고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지 않는가? 하긴 내 나이가 그리 젊다고만은 할 수 없기는 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이다.
영국에서 단 하루를 머무르는 일정이기에 첫날 여행을 마치면 곧바로 프랑스로 이동해야 했다. 아들 군생활의 예행연습처럼 새벽 일찍 비상이 걸려서 완전 군장을 싸고 출동 준비를 해야만 했다. 막상 시작된 여행의 일정이 생각보다 빡빡했다.
첫날 조식 시간의 식당은 많은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영국인들로 추정되는 외국인들이 대다수였다. 제법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노년에 여행 다니며 풍족하게 지내는지는 알 수는 없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밝고 여유로워 보였다.
여행 중에 조식은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베이컨과 계란프라이, 감자튀김. 시장이 반찬이라서 그런지 첫날 조식은 제법 맛이 괜찮았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영국 런던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호텔방을 나오면서 베개 위에 1달러를 올려 두었다. 호텔비에 다 포함되어 있을 법한데 팁을 또 내야 한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니 현지 룰에 따랐다. 한국인에게 팁 문화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하룻밤 묵었던 감사의 인사를 남겨 두고 호텔을 나섰다.
밤늦게 도착했던 호텔이라 아침이 되어서야 외관을 볼 수 있었다. 첫날밤을 보낸 세인트 자일런스 호텔(St. Giles Hotel)이다. 호텔 외관은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내부 시설은 그렇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혹시 이러다 멈추는 거 아닌가 하는 정도로 노후화되어 동작도 느렸고 출입문이 덜컹거렸다. 누군가 숨어서 손으로 작동시키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의 호텔 건물이나 시설들이 얼마나 좋은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호텔 앞 도로에 정차해 있는 이층 버스를 발견했다. 영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빨간색 이층 버스인데 실물 영접을 한 것이다. 첫 만남이라 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담았다. 잠시 뒤에 수많은 이층 버스를 만나게 될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첫 정이란 게 무서운가 보다. 이 버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층 버스가 되었다.
드디어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단체 여행이라 일정 내내 같이 이동했다. 한동안은 서로 서먹서먹 말도 잘 건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친해진 일부 가족들과는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빡빡한 여행 일정이라 일행들 간에 교류할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아 여행 중에는 거의 가족 단위로만 지냈다.
영국에서의 모든 일정은 버스 이동이었다. 섬나라인 영국도 운전석이 오른쪽으로 한국과 반대이다. 도로의 좌우가 반전된 상태여서 역주행 길로 잘못 접어든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순간순간 들기도 했었다. 도로에는 수많은 빨간 이층 버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을 떠날 때까지 지겹도록 만난 버스였다.
한참 시내를 달려온 버스는 템스강이 내려다 보이는 다리 위로 진입했다. 멀리 좌측에는 영국 의회가 있는 웨스터 민스터 궁(Palace of Westminster)과 강변에 공사 중인 시계탑 빅벤(Big Ben)이 보였고, 템스강 우측에는 거대한 회전 관람 차인 런던 아이 (London Eye)가 한눈에 들어왔다. 영국 런던의 대표적 랜드마크였다. 시원하게 펼쳐진 템스 강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조화되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온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했다. 사원을 관람하기 위한 관광객이 어마어마했다. 영국 왕실의 역사적인 행사들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고, 영국 왕과 위인들이 묻힌 곳이었다. 관람객들이 내부 입장을 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아쉽게도 이 여행 패키지에는 내부 관람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멋진 건물 외부 풍경만 담는데 만족해야 했다.
조각 같은 저 거대한 건물을 어떻게 축조했을까? 건물 외관은 그야말로 조각 예술품이었다. 유럽의 유명 건축물들을 만나기 전이었으니 눈앞에 펼쳐진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겉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실내 관람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만 했다. 앞으로 마주할 웅장한 건축물들이 즐비하니 아쉬움은 이 정도로 달랬다.
빅벤과 런던 아이를 보기 위해 잠시 도심을 걸었다. 유명 관광지라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각자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첫 관광지를 걸으니 드디어 영국 런던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한국 관광객도 많았고, 수많은 인파들이 거리 곳곳에 넘쳐났다. 유명 관광지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웨스터민스터교로 이동했다. 빅벤과 런던아이를 보기 위한 사람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웨스트민스트교에서 우측 빅벤과 템스 강 건너 좌측 런던아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템스 강을 내려다보며 잠시 강멍을 때려 본다. 강물이 깨끗하지는 않다. 흙탕물처럼 갈색으로 물든 강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긴긴 역사의 시간 흐름 속에서도 템스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갔으리라. 잠시 흐르는 강물을 보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사진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빅벤이다.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온전한 상태의 빅벤을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빅벤은 시계탑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라고 한다. 엘리자베스 타워라고 부르는 게 정확한 표현이라고는 하는데 빅벤이 워낙 유명해져서 그냥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그 유명한 '런던 아이(London Eye)'다. 템즈 강변에 우뚝 솟은 거대한 회전 관람차 런던 아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직접 탑승해 보지 못해서 어떤 뷰가 보일지 궁금하기는 했다. 웨스트민스트교 일대가 시원하게 잘 보일 듯했다. 어김없이 빨간 이층 버스가 나타났다. 강렬한 붉은색의 버스가 지날 때마다 시선이 저절로 버스로 향했다. 사진 속의 버스도 역시 그 존재가 돋보였다.
신호 대기 중인 자전거를 탄 남녀가 너무 영국스러워서 한컷 남겼다. 저 두 영국인들에게는 사진 찍고 있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어떤 느낌일지... 아, 그리고 예전부터 내게는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흔히 백인이라고 하는 서양인들이 과연 진정한 백인인지? 내 눈에는 피부색이 평균적으로 붉게 보였다. '홍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닐지? 개인적인 의문으로 남겨 둘까 하다가 검색을 해 보니, 아뿔싸 홍인이란 말이 인종차별주의 백인을 낮잡아 표현하는 말이었다.
"백인들은 색소가 적은 피부에 피부 두께가 얇기 때문에 피부 속의 붉은 혈색이 돋보이는 편이고, 피부가 약해서 쉽게 안면홍조가 생기며, 햇빛에 그을리면 황갈색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붉게 달아오른다. 그래서인지 아토피성 피부염도 많고, 햇빛에 약해 주근깨도 많다. 이를 두고 백인을 까는 사람들이 상기된 아메리카 원주민 관련 홍인 드립도 의식해서 '이들은 백인이 아니라 (자기들이 멸시하던) 홍인이다'라는 식으로 쓰면서 퍼졌다. 즉, 피부가 연약하고 쉽게 붉어지는 백인의 특성을 비꼬는 말이다." (출처:나무위키)
인근의 New Palace Yard라는 작은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칠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윈스턴 처칠은 영국의 정치가로 유명하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산문집으로 더 유명하다고 한다. 2018년 여행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유럽 여행기를 쓰면서 알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객관적으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인생에 있어서 조금 늦긴 했지만 나도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근처에 있는 Millicent Garrett Fawcett 여사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50여 년을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해 앞장선 여성운동가라고 한다. "Courage Calls To Courage Everywhere"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누군가의 용기에 의해 세상은 변화되고 발전되는 것이리라.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어수선한 정치 상황에 딱 적당한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치인 각자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가 잘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지혜와 용기를 모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첫날의 오전 일정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왔던 런던을 직접 돌아보니 진짜 유럽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 첫날 만난 영국 런던의 느낌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상상만 하던 유럽에 와 있다는 생각과 장시간 비행 이후의 시차에 따른 피로감들이 함께 어우러져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기도 했다. 유럽 여행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했다.
2018년. 세월이 흘러 약 6년 만에 다시 보는 여행 사진들이지만 그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 당시 마주쳤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느꼈던 그 순간들은 영원히 내 기억에 저장된 듯하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유럽의 명소들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 본다.
영국 런던 1편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 편에서 영국을 좀 더 만나 보기로 한다.
(2018년 감성 충전, 유럽 이야기 by 드림맥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