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과 뇌의 습관
기억은 때로, 닫힌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간다.
이미 끝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날의표정, 그날의 공기, 그날의 한마디.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표정에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다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자꾸 펼쳐 보는 것처럼,
이미 지나간 순간 속에 풀리지 않은 물음을 찾게된다.
어쩌면 그건, 그 사람을 그리워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때의 나를 구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사랑을 다 주고도 설명 없이 멀어진 순간,
내 안에는 빈칸 하나가 커다랗게 남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인연은 ‘미완성의 퍼즐’처럼 남는다.
끝났음에도 다시 떠올리고, 다시 이어 붙이고, 채워 넣고 싶어진다. 그 퍼즐을 완성해야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퍼즐은 애초에 완성될 수 없는 그림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집착하는 건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만들어준 뇌의 익숙한 안정과 설렘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의 창시자인 보울비(John Bowlby)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안정적인 애착 대상을 찾고, 이를 통해 심리적 안전을 확보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맺은 애착 경험은 이후 성인기의 연애 관계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예컨대 불안 애착 유형의 사람은 빠진 퍼즐 조각을 찾아 헤매듯, 사라진 조각이 있어야 완성된다고 믿기에, 그 빈칸 앞에서 오래 머문다. 회피 유형의 사람은 관계가 깊어질수록 퍼즐 조각들을 멀찍이 두려 하고, 심지어 완성될 수 있는 그림조차 애초에 덮어두려 한다. 끊어내려 하면서도 무의식 속에서는 여전히 상대의 흔적을 떠올리는 모순 속에 머문다.
결국 애착은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뇌와 정서가 익숙하게 학습해온 하나의 습관이다.
좋은 순간마다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여 그사람을 '보상'과 연결시키고, 안정감을 느낀 기억은 옥시토신을 통해 깊이 각인된다. 그래서 이별은 단순한 단절이 아니라, 뇌 속에 자리잡은 애착 회로를 끊어 내야하는, 생리적이고 정서적인 단절 과정이다.
사랑했던 사람과 관계가 끊기면, 뇌는 본능적으로 “잃어버린 대상을 다시 찾아!”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이성적으로는 “끝났다”는걸 알면서도, 무의식은 “다시 붙잡아야 한다”는 갈망을 계속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치 매일 하던 행동을 갑자기 멈추면 불안과 공허가 밀려오는 것처럼, 관계도 습관의 회로가 꺼질 때 뇌는 “무언가가 빠졌다”라고 신호를 보낸다.
사랑의 기억을 끊는다는 건 곧, 뇌와 애착의 습관을 새롭게 다시 학습하는 과정이다. 새로운 관계를 통해서든, 혼자만의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을 통해서든, 다시 익숙함을 바꾸어 가야 한다.
남겨진 퍼즐 조각을 완성하지 않아도 된다.
빠진 그대로, 미완성의 채로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 회복의 길이다.
애착의 회로는 과거의 대상에 묶여 있지만,
새로운 경험과 자기 돌봄을 통해 언제든 다시 쓰일 수 있다.
애착일 수도 있고, 습관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그 사람이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건 어쩌면 그때의 나를 구하기 위해
지금의 내 마음이 자꾸 돌아가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미완성의 퍼즐은 더이상 아프지 않은 채,
그저 하나의 그림이 되어
내 삶 속에 조용히 남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