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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Jul 30. 2024

그녀의 트라우마 '추락'

<암벽등반선수 손희우 이야기>



   "벗어요."


편집장이 말했다.


  "네? 뭘요?"


  "언제까지 그 재킷 입고 있을 겁니까?"


나는 거추장스러웠던 스터드찡 재킷을 벗었다. 이제야 홀가분했다. 어깨에 모래주머니를 얹고 있는 느낌이었다. 재킷을 벗어 한쪽 손에 들고 자연스럽게 다른 한 손은 편집장의 손을 잡았다. 우린 함께 걸었다. 편집장은 앞만 보고 걸었다.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 재킷 위압감 전혀 없습니다. 시골 강아지처럼 생겨서 옷 하나 바꾼다고 맹수가 됩니까?"


  "시골 강아지라뇨? 혹시 똥개 말씀하시는 거예요?"


  "큭큭, 시골 똥개가 귀엽기는 제일 귀엽죠."


편집장이 웃었다. 지금 내게 귀엽다고 건가.  맞다. 그렇긴 하다. 시골 똥개만큼 귀여운 개도 없다. 우리 할머니도 내게 '우리 똥강아지'하며 엉덩이를 토닥여 주시곤 했다. 발발거리며 달리는 시골 똥개들을 떠올리며 내 얼굴을 빗대어 보았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아마도 할머니가 나를 불러주던 애칭처럼 들려서 그런 것 같다.


  "사무실로 가죠. 다음 인터뷰이 알려줄게요. 그리고... 손은 계속 잡고 있을 건가요?"


   "앗!"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편집장의 손을 놓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또 손을 잡았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언젠가 잡아봤던 손 같다. 어쨌든 이 무더위에 손을 잡고 걷는 건... 괜찮은 것도 같은데.   


   



  "아핫, 이번엔 암벽등반선수네요!"


편집장이 내민 다음 인터뷰이 신상 정보를 보고 나는 웃음이 터졌다. <피플스>에서 나를 채용한 이유를 이제 확실히 알았다. 채용 우대사항에 있던 4번이 떠올랐다. '취미 부자'였다. 다양한 취미 활동을 가진 사람을 우대한다고 했었다. 나는 대학 때 동아리로 산악부 활동을 했고 암벽도 탔다. <피플스>가 이번에는 나를, 암벽으로 보내는구나 싶었다. 편집장의 질문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력서에 보니까 대학 때 산악부 활동도 했던데. 암벽도 탔습니까? 그 많은 활동 다하면서 공부는 언제 한 겁니까?"


  "그거 다하면 공부할 시간 없어요. 암벽은 안 탄 지가 오래라... 이번엔 산에 가나요? 또 새벽은 아니겠죠?"


  "실내 암벽장으로 가시면 됩니다. 새벽도 아니고요. 정확한 약속 시간은 오늘 저녁에 연락할게요."


  "그것 참, 다행이네요. 요즘 같은 더위에 자연 암벽은 위험하죠."


  "주의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신상 정보 쭉 보시면 밑에 빨간색 글자 'PTSD' 보일 겁니다. 손희우 선수 작년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받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진행 중에 본인 판단 하에 멈추셔도 됩니다. 대체할 인터뷰이도 있으니 잘 판단하십시오."


집으로 돌아와 바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검색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의하면 이 장애는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었다. 증상으로 수면 장애와 우울, 공황 장애를 동반했다.


암벽등반선수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면 암벽 사고가 유력할 것으로 추측된다. 암벽 등반은 부상이나 사고 위험도가 높은 스포츠 중 하나다. 인터뷰에 더 신중하게 임해야 했다. 나도 지난날 암벽 사고로 인한 공황 상태를 겪었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이 되어서다.            


다음날 손희우 선수가 훈련하는 실내 암벽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피플스>에서 사전 연락을 취했고 손희우 선수가 인터뷰에 응하겠다 답해왔다. 암벽장에 들어서자 인공 암벽의 색색깔 홀드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암벽 등반을 그만둔 지 6년 만에 그 앞에 다시 섰다. 손가락 끝이 저릿했다. 더 이상 숨이 막히진 않았다. '언젠가 다시 암벽을 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금세 고개를 내저었다. 난 암벽 앞에 서는 것조차 여전히 두려웠다. 굳이 힘든 기억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진혜원 기자님?"


내 앞에 나타난 여자는 빛나는 까만 돌 같았다. 볼록한 짱구 이마와 오뚝한 코에서 빛이 났다. 동그란 눈에 양볼은 반질반질했고 매끄럽게 윤이 돌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한눈에 봐도 귀여운 인상이었다. 아주 앳된 얼굴이라 20대 중반이 아니라 중학생처럼 보였다. 나랑 겨우 한 살 차인데 얼굴만 보면 10년 이상 차이 나는 것 같다. 반지하에서 햇볕도 못 보고 소설만 내내 썼더니 세월의 풍파를 나만 모질게 맞은 것 같다.


  "안녕하세요. 손희우 선수인가요?"


  "네. 기자님. 안녕하세요. 암벽등반선수 손희우입니다."


잠시 뒤늦게 도착한 사진 기자는 손희우 선수가 인공 암벽을 타는 사진을 찍었다. 자연 암벽을 타는 사진도 있으면 좋을 같아 손희우 선수가 소장하고 있는 사진 장도 따로 받기로 했다. 1차 인터뷰는 실내 암벽장의 휴게실에서 간단히 진행하기로 했다. 국제대회를 앞두고 있던 터라 인터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렵다고 했다.

 

  "바쁜 시기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천천히 얘기해 주시면 돼요. 첫 만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그분을 만나셨나요?"


  "스무 살이었어요. 전 신입생이었고 그 사람은 복학생이었어요. 산악부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첫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 동아리방에 모여 뒤풀이하는 자리였어요. 신입생 환영회도 겸하는 자리였는데 그 당시에 산악부의 악습이 하나 있었어요."


"오겡끼데스까"를 수없이 외쳤던 암벽 등반


그 악습은 첫 산행 후, 주말 동안 산을 누빈 고린내 나는 선배의 등산화에 각종 술을 섞어 폭탄주를 만들어 돌아가며 마시는 거였다. 그 술의 이름은 폭탄주가 아니라 고린내주가 더 잘 어울렸다.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다 못 마시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했다. 동기끼리의 의리와 정을 다진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벌어졌던 악습 중 하나였다. 손희우 선수는 술을 전혀 마시지 못했기에 더 긴장했다고 한다.


손희우 선수는 그날 운이 지지리도 없었고 가장 마지막 순서였다. 등산화에 술이 남으면 다 마셔야만 했던 것이다. 차례가 점점 다가오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동아리 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곤 그녀 옆에 앉았다. 그 남자는 남은 술을 모조리 마시고 머리 위로 등산화를 흔들어 보였다.  


  "이거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냐? 신입생들 이런 거 하면 몇 명은 안 나오잖아. 이 악습, 우리가 끝내자."


그 남자 이야기를 하는 손희우 선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 어떤 충격적인 사고가 있었을 것이 예상되어서 이야기를 듣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전 형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아! 산악부는 윗 학번은 성별에 상관없이 호칭이 모두 '형'이에요. 형 덕분에 그 악습은 우리를 끝으로 없어졌어요."


  "멋진 분이네요. 저도 대학 때 산악부였어요. 제가 한 학번 위입니다. 신입생 환영회 때의 그 고린내 나던 술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죠."


내가 웃으며 손을 건네자 손희우 선수도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거칠지만 옹골진 손희우 선수의 손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나는 그 손을 꼭 쥐었다. 내 손의 온기가 그녀의 손에 가 닿기를 바라며. 서로의 손을 잡는다는 건 마음의 온기도 함께 전하는 일이다. 그녀도 내 손을 꼭 쥐고는 말했다.    


  "정말요? 반갑습니다. 형!"  

   

2주 뒤의 자연 암벽 등반에서도 선배들의 짓궂은 장난은 이어졌다. 암벽을 타는 신입생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거나 각종 장기자랑을 시켰다. 인공 암벽을 타며 기본적인 기술은 익혔으나 자연암에선 자칫 위험할 수도 다. 손희우 선수는 그날 영화 '러브레터'의 대사를 외쳐야 했단다.


  "제가 그날 산에서 '오겡끼데스까'를 얼마나 외쳤는지 몰라요. 맞은편 산에서 제 목소리가 울릴 정도로 외쳤다니까요."


  "풉! 전 락을 그렇게 불렀어요.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요. 산이 에코가 장난 아니죠? 노래방이랑 차원이 다르잖아요. 산악부가 제게 남겨준 선물이 있다면 바로 득음이죠!"


내 대답에 손희우 선수가 까르르 웃었다. 그 당시에는 분명 짜증 나는 일이었는데 돌아보니 웃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손희우 선수가 명랑하게 말했다.   


  "맞아요. 맞은편 산이 에코가 최고예요. 등 뒤에서 제 목소리가 계속 울리는데 답을 하고 싶더라고요. 난 잘 못 지낸다고. 쎄빠지게 암벽 타고 있는 거 안 보이냐고요."           


손희우 선수가 '오겡끼데스까'를 외치고 있을 때 그 남자가 나타났다. 손희우 선수의 로프를 잡고 있던 후배들에게 말했다.


  "적당히 좀 해라. 첫 자연암인데 뭐 하는 짓이야. 장기자랑은 나중에 시켜. 암벽탈 때는 늘 안전이 우선이란 것 잘 알잖아."


그 남자는 군 전역 후에 복학한 터라 윗 학번이었고, 그의 한마디에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손희우 선수에게 그 남자는 위기 때마다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는 '히어로'였다. 그리고 다음 산행에서 손희우 선수는 그 남자에게 푹 빠지고 말았다.


인터뷰 내내 이 사랑이 실연으로 끝난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이야기만 연이어졌다. 그의 이야기를 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이 사랑이 지금도 끝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그녀 마음 안에 그는 머물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사랑이야기는 노래 속에 이미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사랑을 막 시작할 때 듣는 노래, 사랑할 때 듣는 노래, 사랑이 끝났을 때 듣는 노래 모두가 있지 않은가. 1차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요즘 길을 걷다 보면 많이 들리는 노래가 있다. 러브홀릭의 'Loveholic'이었다.


가사를 가만히 음미하다 어느새 눈물이 흘렀다. 이 노래는 손희우 선수의 사랑 이야기였다. 그녀는 아픈 기억의 터널 속을 헤매었고, 몹쓸 병에 걸려 고통 속에 살았다. 그녀의 사랑은 지독한 병이었다.


     기억의 터널 속을 나 헤매어 우는 loveholic

     너라는 숲 속에서 난 갈 곳을 잃은 loveholic

     빠라빠빠 이런 몹쓸 병 몹쓸 병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지독한 병이지 어제도 오늘도 너무 아프기만 해

     그냥 멍하니 눈물이 흘러 I'm  loveholic





<에필로그>


혜원은 대학 때 암벽 등반 사고를 겪었다. 사고가 일어났던 날, 혜원은 암벽 아래에서 등반자의 안전을 확보해 주는 빌레이어였다. 빌레이어는 등반자가 추락하지 않도록 로프를 잡고 조절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만일의 사고가 벌어졌을 때 등반자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


혜원이 암벽을 탄 지 1년이 넘었을 때였고 빌레이어는 처음이라 배우는 중이었다. 능숙한 빌레이어와 등반자가 함께 했다. 하지만 그날 등반자는 홀드를 놓쳐 한순간에 추락했다. 빌레이어가 둘이었기에 돌발 상황에 능숙하게 대처했고 등반자가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혜원과 또 다른 빌레이어는 공중으로 떴다가 인공 암벽에 강하게 부딪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실외의 15M 암벽장에서 난 사고였고 당시에 혜원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만다. 119 구급차가 왔을 때는 이미 혼절했다. 자연암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등반자없었을 것이고 빌레이어 또한 크게 다칠 수 있었던 사고였다.

혜원은 몸이 공중으로 떠 인공 암벽에 부딪친 것쯤은 괜찮았다. 문제는 추락하는 사람을 바로 아래서 지켜보았다는 것에 있었다. 그 일은 숨통이 조여 오는 고통을 가져왔고, 혜원은 그 뒤로 다시는 암벽장에 갈 수 없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손희우 선수와 혜원은 암벽에서 추락 사고를 겪었다. 서로의 트라우마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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