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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Aug 06. 2024

기억의 오류

<암벽등반선수 손희우 이야기>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 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 서문이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듯, 사랑에 미쳐도 생의 맛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살 수 있는지. 하밀 할아버지가 답했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니 '사랑해야 한다'라고.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에서 영영 사라졌다면 당신은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죽을 수 없다면 잊어야 한다. 잊고 다시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손희우 선수와 1차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그 꿈을 다시 꾸었다.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몸은 마치 간수에 절여진 생선 같았다. 일어날 힘조차 없어 가쁜 숨만 내쉬었고, 내 몸에선 또다시 피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손끝을 물어뜯었다. 밤새 물어뜯어 놓았다.


지구는 중력이 지배하는 곳이다. 중력을 거스르며 오르고자 하는 인간은 항상 '추락'도 각오해야 한다. 인간에겐 물리학이란 학문이 있고 추락으로 인한 충격 정도를 수치화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화된 숫자보다 더 유의미한 건 인간이 자신의 몸으로 그 충격을 받아내는 것이다.


나는 그날 15미터의 인공 암벽 앞에서 로프를 잡고 있었다. 내 두 손과 몸으로 추락하는 이의 충격을 받아내고자 했다. 반드시 살려야만 했다. 두 손에서 제동 장치는 정상 작동했고 로프는 더 이상 위로 딸려가지 않았다. 다음은 바닥과 인간의 충격 정도를 줄이면 되었다. 15미터의 인공 암벽에서 80kg의 건장한 성인 남성이 바닥까지 떨어질 때 걸리는 시간과 그 아래에서 둘이 합쳐 90kg 남짓의 두 여성이 남성을 살리고자 대처한 시간. 그 모두가 일순간이었다. 두 여성은 자신들의 체중을 로프에 최대한 실어야 했다. 그래야 살릴 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둔탁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먼저난 소리는 80kg 남성이 바닥과 만난 소리, 뒤이어 난 소리는 두 여성이 인공 암벽으로 각각 딸려가 부딪친 소리였다. 남성은 헬멧 밖으로 피가 흘렀고, 두 여성은 팔과 다리에 피를 흘렸다. 119 구급차가 왔고 의식을 잃어가던 남성을 먼저 태웠다.


  "미안해..."


흐려져가던 의식을 부여잡고 그 남성이 가까스로 내뱉은 말이었다.


  "혀어엉, 형!"


두 여성은 눈물과 피범벅이 된 상태로 혼절했다. 나는 두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날의 상처는 오른쪽 팔꿈치에 고스란히 남았다. 20센티 남짓의 꿰맨 상처다. 암벽과 부딪치기 직전 오른손을 올려 머리를 감싸면서 생긴 상처였다. 이 정도의 상처는 아무렇지 않다. 그날 형이 암벽에서 떨어지던 모습과 두 손으로 감당해 냈던 목숨의 무게, 눈과 손끝에 각인된 그날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대학 산악부는 성별에 상관없이 선배를 부르는 호칭이 모두 '형'이다.    




첫 인터뷰 때부터 이상함은 감지되었다. 불과 작년까지도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았다던 손희우 선수는 그의 이야기를 하며, 너무도 안정적이었고 막 사랑을 시작한 이처럼 설렘까지 보였다. 그녀의 PTSD는 내 예상대로 암벽 사고 이후였다. 한 겨울의 빙벽 등반 사고였고, 그녀의 증상은 사고 한 달 이후에 시작되었다. 2차 인터뷰 전에 그날의 사고에 대해 더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사고가 있던 다음 날의 지역 신문 기사를 찾았다.


  <20대 남성, 청룡산 폭포 빙벽 등반 중 50m  아래로 추락.  소방헬기로 이송 중 사망>


나는 기사를 읽어 내려가다 입을 틀어막았다. 빙벽은 암벽 등반 중에서도 체력 소모가 가장 크다. 그만큼 사고의 위험도 더 높다. 청룡산 폭포는 국내 최장의 빙벽으로 그 높이가 100m에 달했다. 초보들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고난도 코스이기도 하다. 그 빙벽을 탈 정도면 남자는 상당한 실력자였을 것이다. 기사에 의하면 사고는 원인불명이었다. 그날 그 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출처 - 제28회 천체사진공모전 은상 작품 (추지혁, 은하수 폭포)


2차 인터뷰는 손희우 선수의 귀국 다음 날 진행되었다. 손 선수는 첫 국제대회에서 콤바인 부문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선수의 첫 국제대회 메달이었기에 언론 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빗발쳤다. 이번 인터뷰가 더 중요해졌다. 한창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수의 사랑과 실연이야기였다. 그러나 질문지를 작성하며 세심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녀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 있는 질문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한 카페에서 만난 손희우 선수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희우 선수, 축하합니다. 경기 영상 유튜브로 지켜봤어요. 볼더링 경기에서 보여준 폭발력 있는 동작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손희우 선수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손희우 선수를 닮은 꽃을 생각하다가 노란 수선화가 떠올랐다. 노란 꽃은 부정적인 느낌으로 인해 선물하기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노란 수선화를 선택한 건 꽃말에 있었다. 이 꽃의 꽃말은 '자기 사랑, 신비, 고결, 자존심'이다.


  "기자님, 저 수선화 제일 좋아해요. 감사합니다."


  "노란 수선화 꽃말이 자기애의 끝판왕이거든요. 손희우 선수가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길 바라요."


  "고맙습니다. 꽃말처럼 제 자신을 가장 사랑할게요."


이번 인터뷰 장소는 더욱 신경 썼다. 조용한 데다 캐모마일 향이 가득해서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진행하였다. 손희우 선수가 그 남자에게 푹 빠졌던 세 번째 산행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그 산은 너른 암벽으로 신입생들이 암벽 훈련하기 좋은 곳이었다. 금요일 밤 산 중턱의 야영지에 도착했고, 다음날인 토요일은 하루종일 암벽 훈련이 진행되었다.


  "암벽 탈 때는 몰랐는데 도중에 다리를 접질렸나 봐요. 다 끝나고 야영지에 돌아왔는데 다리를 조금씩 절었어요. 통증이 크진 않아서 참으려고 했고요."


그 남자는 손희우 선수가 다리를 절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업히라고 했다. 곧 해가 질 것이고 밤이 되면 산을 내려가기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고민 없이 그의 등에 업혔다.


  "전 형이 산에 사는 도인 같았어요. 저를 업고 축지법을 쓰듯 산을 뛰어 내려갔는데 얼마나 멋졌는지 몰라요."


다행히 산 아래에 보건지소가 있었고 문을 닫기 직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희우 선수는 발목염좌였고 바로 처치를 했다. 다시 그 남자의 등에 업혀 야영지로 향했다. 이미 해는 졌고 둘은 헬맷의 랜턴 불빛만으로 산길을 올랐다. 상황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웃으며 손희우 선수에게 질문했다.  


  "좋아하지 않고서야 축지법 써가며 산에서 뛰어 내려오진 않죠. 제가 다 설레요. 그날이 사랑의 시작 맞죠?"


  "네. 다시 야영지로 돌아가면서 형에게 물어봤어요. 아무래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았거든요."


손희우 선수는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그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녀의 볼은 발그레했고 막 사랑에 빠진 이의 설렘만 보였다. 첫 인터뷰 때와 똑같았다. 이 사랑의 결말은 분명 비극인데 왜 그녀는 이토록 행복해 보이는 걸까. 인터뷰가 진행되어 갈수록 나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손희우 선수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형의 등에 업혀 산에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형은 신입생 환영회날, 동아리방에서 처음 만난 날부터 제가 보였데요. 저한테서 빛이 났데요."


  "그건 진짜예요. 손희우 선수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요."


  "기자님도 제 이마 보고 놀리시는 거죠? 짱구이마에 광까지 나서 저 별명이 빛나리였거든요."


  "전 짱구이마도, 얼굴의 윤기도 너무 부러운걸요. 나 봐봐요. 납작한 이마에 윤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이 푸석함."


나의 푸념에 손희우 선수는 까르르 웃었다. 아무리 봐도 10대 소녀 같다.  해맑은 소녀에게 실연 과정을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갈수록 더 막막해졌다. 연애 과정만 듣고 실연은 안 듣고 싶었다. 나의 계속된 머뭇거림을 눈치챈 것인지 손희우 선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진혜원 기자님, 근데 왜 PTSD는 묻지 않으세요?"


  "아... 사실 많이 조심스러워서요. 손희우 선수 그간 힘드셨을 텐데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계속 망설였어요."


  "앞으로 계속 인터뷰도 해야 하고 다른 기자분들은 그것부터 물어보실걸요. 원래 사람들은 남의 아픔에 관심이 더 많잖아요. 진혜원 기자님이라면 조금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차분하게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고 조금이라도 그 마음을 읽고 공감해주고 싶었다. 나 또한 암벽 사고를 겪었기에 그 기억의 아픔을 잘 알고 있으니까.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고였고, 나는 선배였다는 것이다.  


  "전 특정 색깔을 보면 발작을 일으켜요. 새파란 하늘색, 하얀색, 빨간색이요. 세 가지 색을 동시에 보면 공황 상태에 빠져요. 심할 때는 하늘을 못 봤어요. 낮에 외출을 전혀 못했죠. 새파란 하늘만 보면 울었거든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다. 한겨울의 새파란 하늘, 청룡산 폭포의 하얀 빙벽, 그리고 피... 그날 사고의 기억일 것이다. 사고 당시의 풍경이 기억에 각인된 것일까. 그러나 사고 당시의 기억을 얘기하면서 손희우 선수는 굉장히 차분하고 평온했다.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조차 없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추락하던 순간에 대해 어떠한 언급조차 없었다. 이상했다. 풍경만 기억에 남고 남자의 존재는 사라진 것이다.


  "그 사고가 많이 충격적이었을 텐데 지금은 괜찮은 건가요?"


나의 질문에 손희우 선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되물었다.


  "사고라뇨? 무슨 사고요?"


그녀의 기억에 문제가 있음이 분명했다. 이날 나는, 손희우 선수의 인터뷰는 기사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타인의 불행으로 이목을 끌 생각은 없다. 또 그 불행이 불특정 다수에게 회자되게 할 수는 없었다.


   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 문은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열어 주는 문도 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열고 나가는 문이라야 합니다.  

   자기 발로 걸어 나가는 문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 신영복, <감방문 안쪽>에서        


그녀는 고통의 기억 속에서 자기 손으로 문을 열었고, 자기 발로 걸어 나왔다. 그러나 그녀가 열고 나온 문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나는 그녀의 문을 바깥에서 대신 열어줄 수는 없다. 열어줄 수 없다면 나도 그 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녀의 손을 잡고 둘이 함께 또 다른 문을 찾을 것이다.  


며칠 후, 사고 당시에 그 산에 있었던 산악부원을 만났다. 나는 그날의 진실 앞에 오열하고 말았다.




<에필로그>      


이번 인터뷰부터는 매주 금요일마다 취재 비용 정산과 함께 진행 상황을 편집장에게 보고하라고 했다. 회사에서 그렇게 하라니 말단의 수습기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매주 금요일 <피플스>로 출근해야 했다. 손희우 선수와 2차 인터뷰를 마친 후, 인터뷰이를 교체해야 한다 보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뷰이 교체와 별도로 손희우 선수와 함께 산악부원이었던 동기는 만나기로 했다.


손희우 선수는 <피플스> 외에도 연달아 여러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가 있었고, 그녀의 상황을 얼른 정확하게 알아야 했다. 그래야 소속팀에 인터뷰 때 절대 언급해선 안 될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편집장님.”      


  “그래요. 보고 파일은 책상 위에 올려줘요.”   


편집장에게 인사하곤 그의 책상 위에 인터뷰 진행 상황을 정리한 파일을 올려놓으려 했다. 책상 위는 엉망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파일을 올려놓아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였다. 편집장은 책상 아래의 책더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편집장님, 뭘 찾고 계세요? 이 파일 올려놓을 만한 곳이 없어요.”     


나는 고개를 숙여 편집장이 뭘 찾고 있나 보려 했고 마침 책상 아래에서 나오던 편집장과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편집장의 검고 두꺼운 뿔테 안경이 벗겨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편집장과 불과 30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이 눈빛 분명 봤다! 근데 어디서 본 것일까.’      


기억이 안 나면 물어보면 된다.        


  “편집장님, 혹시 저 아세요?”   


  “진혜원 씨, 내 눈 잘 봐봐요. 정말 기억 안 나요?”     


편집장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듯한 낯익은 이 눈빛. 혹시...  대추나무집 비단 할머니 손자? 그 오빠인가?’      


가을이면 대추가 탐스럽게 열렸던 그 집. 문득 비단 할머니가 떠올랐다. 비단 할머니의 눈빛이 이렇게나 맑았었다. 편집장의 눈이 비단 할머니 눈과 닮았다. 그 오빠가 맞다면 난 망했다. 나의 흑역사를 모두 알고 있을 터였다.  


  “진혜원, 너 기억났지? 어떻게 날 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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