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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란도란 Aug 13. 2024

삶의 끝에 남긴 사랑

<암벽등반선수 손희우 이야기>


가장 어렵고도 본질적인 것은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난 중에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나오는 말이다. '삶'은 명사로서 목숨과 생명 또는 사는 일, 살아 있음을 뜻한다. 문학에서는 삶을 사람의 준말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어렵고도 본질적인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고난 중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제일 어려웠다. 내 사랑은 늘 고난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내 삶에 들어와 잠시 머물다 나가곤 했다. 어떤 인연에도 연연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은 인연으로 엮일 수밖에 없고, 어떤 인연은 삶에서 필연이 되고 만다. 첫 인터뷰이였던 마라토너 강유원 선수는 내게 '유원 언니'가 되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었고 우리는 인연을 넘어섰다.


두 번째 인터뷰이인 암벽등반선수 손희우 선수도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임을 알았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연의 실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인연의 실은 삶의 여정에서 느슨하게 있다가 어느 순간 서로를 끌어당긴다. 지금부터 인연으로 엮여 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지고 가라는 신의 은총처럼 말이다. 비슷한 아픔을 지닌 이들은 서로의 고통을 기꺼이 나누어 짊어질 수 있어야 한다.


지난번 인터뷰로 손희우 선수의 기억에 오류가 있을 거란 예측을 했고 그 오류를 찾아야 했다. 사고의 중심에 있던 이는 보지 못한 진실이 있을 것이다. 사고 당일에 함께 했던 산악부원을 만나 기억의 오류를 찾았다.


  어떤 실연은 진한 사랑의 그림자를 남기고 떠난다.


UnsplashStripe Media




손희우 선수의 2차 인터뷰를 마치고 이틀 후, 그녀의 산악부 동기를 만났다. 당시에 청룡산 폭포로 함께 빙벽 등반을 하러 갔고 그날의 사고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손희우 선수를 인터뷰했던  <피플스>의 기자 진혜원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기자님."


  "그날 빙벽 등반 사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손희우 선수와 인터뷰 중에 사고에 대한 기억이 기사와는 달라서요."


  "정말 기사화하실 생각이 없으신 건가요?"


  "네. 유선상으로 이미 말씀드렸지만 손희우 선수 기사 연재는 최종 취소되었습니다. 다만 앞으로 다른 언론사의 인터뷰가 연이어질 텐데, PTSD와 대학 시절 빙벽 사망 사고가 언급될 수 있어요. 사고의 진실을 알고 미리 대처하게 하고 싶어요."


  "희우에게 이 정도까지 마음 쓰시는 이유 여쭤봐도 될까요?"


  "저도 대학 때 산악부원이었고 비슷한 추락 사고 경험이 있어요.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이 짐작됩니다."

 

나는 내 손을 보여주었다. 며칠 전 사고 당시의 악몽을 꾸며 물어뜯은 손톱들의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숨을 가다듬고 그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빙벽을 오른 이는 그 남자, 혼자가 아니었다. 손희우 선수와 그 남자는 함께 등반을 했다. 그 남자가 손희우 선수 옆에서 오르며 등반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손희우 선수는 암벽등반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직후부터 대회에 출전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대회에 나가며 차츰 수상도 하나둘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암벽을 탄 지 2년 가까이 되었고 빙벽을 오를만한 체력과 실력이 쌓였다.


그러나 청룡산 폭포는 손희우 선수의 실력으로 오르기엔 역부족이었다. 50m쯤 올라갔을 때 더 이상의 등반은 무리였다고 판단되었단다. 사고는 하강을 준비하다 일어났다. 이미 체력 저하가 심했던 손희우 선수의 작은 실수로 추락하게 된 걸로 추정될 뿐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둘만 알아요. 하강 준비 중에 갑자기 희우가 추락했어요."


손희우 선수가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 바로 옆에 있었던 그 남자는 그녀를 품에 안고 함께 추락했다. 손희우 선수가 기억하는 건 추락하며 보았던 새파랗던 겨울 하늘과 하얀 빙벽이었다. 그리고 흰 눈이 쌓인 바닥에 닿았고 그녀의 등을 적셔온 그의 피였다. 새파란 하늘색, 하얀색, 빨간색 그녀의 트라우마를 일으키게 하는 색들이 사고 당일의 풍경이었던 것이다. 비로소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그는 손희우 선수를 살리기 위해 그 짧은 순간에 그녀를 품 안에 꼭 안았고, 떨어지며 빙벽에 부딪치는 충격을 자신의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냈다. 아래에서 빌레이를 보았던 산악부원들이 재빠르게 로프에 제동장치를 걸어 바닥과의 충격 정도를 감소시킨 것이 손희우 선수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손희우 선수를 감싸 안았던 그는, 결국 구하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살기를 간절히 원했기에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구했을 거다. 그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걸 알면서도 말이다.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의 삶 끝에 남은 건 오직 사랑뿐이었다. 비극적인 사랑 앞에 나는 어떤 말도 잇지 못했다. 눈물만 하염없이 흐를 뿐이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깊은 사랑이 있었다. 이 사랑은 비극일지언정 숭고하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 세상에서 그보다 더 숭고한 일은 없다. 그의 삶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고 사람을 살렸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그녀였다.


  "희우는 그날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요. 추락 직후에 기절했고 보름 가까이 의식 없이 병원에 있었어요. 그 사이에 형의 장례는 끝났고요."


  "그가 2년째 없는 거잖아요. 손희우 선수는 그가 없는 걸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형은 그다음 달에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목표로 네팔 출국 예정이었어요.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등반 일정 중에는 연락도 어려워요.  등반 외에 네팔에서 아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도 계획하고 있었고요. 희우가 깨어났을 때 형은 이미 출국했다고 전했어요."


  "연락이 전혀 안되는데 손희우 선수가 그걸 믿고 있다고요?"   


  "형의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간간히 보내고 있거든요. 희우가 종종 전화를 걸어오지만 받지는 않고요.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통화가 어렵다는 메시지만 남길 뿐이죠."


  "이대로 계속 숨길 수 없잖아요. 언젠가는 누군가가 진실을 알려줘야 할 텐데요."


  "네. 작년까진 희우가 PTSD 치료 중이라 더 말할 수가 없었어요. 희우 어머님이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계속하고 계시고 좀 더 지켜보다가 사실을 알려주기로 하셨어요."      

              

언제까지나 그녀의 눈을 가려 진실을 숨길 없을 것이다. 손희우 선수가 기억하는 그의 사랑은 더없이 크고 깊었다. 그녀가 진실을 직면했을 고통이 어마어마할지라도 사랑의 힘이 결국 이겨낼 힘도 거란걸 믿을 수밖에 없다. 진실은 때로 상처를 가져오지만 치유의 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날 바로 손희우 선수의 소속팀에 그녀의 트라우마 관련된 질문은 일절 받지 아야 한다고 전달했다. 그녀의 어머니도 이미 소속팀에 거듭 요청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대학시절 빙벽 등반 사고에 대한 기사들은 거의 없는 상태고, 현장에 있었던 소수의 산악부원 외에 그날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손희우 선수에게 같이 밥 먹자고 메시지를 남겼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며 친해지는 게 제일 빠르다. 그녀에게 답장이 바로 왔다.


    "네^^ 혜원 언니♡ 같이 밥 먹어요."


우리의 인연은 지금부터 새로 시작이다. 강유원 선수가 내게 '유원 언니'가 되어 주었듯, 나는 이제 손희우 선수에게 '혜원 언니'가 될 것이다.




<에필로그>

매주 금요일마다 <피플스>로 출근하는 게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지난주에 대추나무집 비단 할머니의 손자로 추정되는 편집장이 내게 말했었다.


  "진혜원, 너 기억났지? 어떻게 날 잊니?"


나는 끝까지 모르는 척 잡아떼었다. 내 과거를 모두 아는 사람과 한 직장에서 있는 건 영 불편한 일이다. 그것도 인생의 암흑기를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망아지 같이 날뛰던 아이였다. 할머니는 내게 "말새끼, 계집애가 좀 얌전해야지. 말새끼처럼 천방지축이야."라고 말하곤 하셨다. 당시에 동네에서 나에게 맞지 않은 아이가 없을 정도로 짓궂었다. 편집장도 내가 짓궂게 장난쳤던 아이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심히 의심된다.


긴장하며 <피플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편집장뿐이었다. 잡지사에 입사한 지 두 달 째인데 나는 편집장외에 본 사람이 없다. 설마 직원이 나 혼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편집장님, 안녕하세요. 일주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왔어요. 진혜원 씨, 인사가 왜 그럽니까? 뭐 찔리는 거 있나봐요?"


  "아니요. 제가 찔릴 게 뭐가 있겠어요."


  "있을 것도 같아서요. 우리 할머니댁 대추가 유독 맛이 좋았어요. 그걸 담장에 올라앉아 대놓고 따먹던 고양이 같은 여자애가 하나 있었죠. 누굴 꼭 닮았어요."


  "전 대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어 담장엔 오르지도 못하죠. 그리고 전, 시골 똥개상이잖아요."


  "하하하하, 시골 똥개상! 담장은 못 오르는데 암벽은 잘 탔나봅니다. 이리와서 다음 인터뷰이 신상과 정보 파일 받아 가요."


나는 다음 인터뷰이의 신상정보 파일을 열고 환호성을 질렀다.


  "와우~ 연두 작가님이네요! 이분 인터뷰도 일절 안 하고 얼굴 공개된 적 없는 탑 작가잖아요. 저 완전 좋아해요. 어떻게 인터뷰 요청하셨어요?"


  "제 친구입니다. 인터뷰 안 하겠다는 걸 겨우 설득했으니 준비 철저하게 하세요. 사진은 못 찍습니다. 요청도 하지 마세요. 이번 인터뷰는 저랑 같이 갑시다. 그 친구가 낯을 많이 가립니다."


  "연두 작가님을 직접 만난다니 꿈만 같아요! 그녀는 순정 만화계의 레전드예요. 신작 연둣빛 바람, 그 애절한 사랑."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가 그려내는 섬세한 사랑 이야기는 예술의 경지다. 내 눈물을 트럭으로 가져간 작가였다.


  "연두 작가, 남자입니다."


  "네?"


 나는 쩍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연두 작가님이 남자라니, 그럴 리가 없다! 뭔가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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