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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푼 Dec 13. 2024

연말 회상식




모닝 라이트 홍차 비누는 얇아졌을 때도 순하고 기분 좋은 사용감을 자랑했다. 특히 스크럽 효과는 얇아질수록 빛을 발했다. 비누칠을 하기 위해 손으로 비벼보니, 얇아서 안에 있던 찻잎들이 더 쉽게 나왔다. 그 덕에 스크 효과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찻잎들도 손에 묻어나고 거품들도 크리미해서 정말 좋았다.


그리고 손에 찻잎을 계속 문지르면 시원한 홍차 향이 풍겼다. 로즈마리 향이 아니라 확연하게 홍차 향이 진하게 나서 기분 좋게 음미할 수 있었다.  에도 향이 좋았지만, 이렇게 손으로 비비니까 더 강하고 짙게 홍차 향기가 퍼져서 너무너무 좋았다.



마지막 모닝 라이트 홍차 비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고, 잘 숙성된 홍차 비누를 개봉할 차례가 다가왔다. 건조기간이 길었기에 지금까지 썼던 홍차 비누들보다도 다방면에서 더욱 무르익어 있었다.


정면은 진한 초콜릿 파운드 케이크 같았고, 반면 찻잎이 올라간 윗면은 마치 슈가 파우더를 뿌린 것처럼 비교적 하얀 색이었다. 경도는 더욱 높아져서 벽돌이나 아주 단단하게 굳은 초콜릿 같았다. 홍차 향도 짙어져서 그냥 평범하게 비누칠을 할 때 비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서도 잘 느껴질 정도였다. 로즈마리 향을 거의 맡지 못할 만큼 진하고 좋았다.



마지막 홍차 비누의 거품은 스팀 밀크처럼 부드럽고 환상적이었다.



마르세유 비누답게 순한 감각은 여전했으나,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무게감은 훨씬 덜어지고, 더 산뜻하고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비누칠을 하기 위해 손으로 문지르니 꿀처럼 촉촉했다. 거품도 워낙 가볍고 부드러워, 마치 스팀 밀크 같았다. 피부가 편안하게 힐링 받는 것 같았다. 씻고 나서도 몸에 수분기가 충분해서 촉촉하면서 부들부들하게 매끈해졌다. 홍차 비누는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고 깊은 만족감과 행복을 선사했다. 미사여구를 덧붙일 필요 없이, 그저 완벽했다.


홍차 비누가 너무 좋아서 금방 사용하다보니 비누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당초 계획은 크리스마스 당일에 홀리데이를 축하하며 이 비누를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전에 다 쓰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루하루 함께 했기에, 매일이 행복했고 후회가 없음을 기쁘게 단언할 수 있다.


너무 행복했던 건 변함 없지만 약간 아쉬운 마음은 있어서,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차 비누와 함께 했던 것들에 대해 회포를 풀고 싶다. 차 비누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겨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름하여 차 비누의 연말 회상식이다.



첫 차 비누였던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



두 번째 차 비누였던 백차와 허브차 반반 스크럽 꽃 비누




세 번째 차 비누인 모닝 라이트 홍차 비누



차에 대한 애정이 시들해졌을 때 좋아하는 것을 더욱, 길게, 많이 좋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차를 비누로 만들어보자고 결정했다. 좋아하는 차를 좋아하는 비누의 형태로 재탄생시키면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마음에서 시작된 차 비누의 여정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출발해 어느덧 겨울이 되고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왔다.


맨 처음 기대감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를 기획했던 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첫 번째로 만든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는 첫사랑 같은 차 비누였다. 진한 자스민 향과 밀키하고 오일리한 감촉, 예상치 못한 찻잎의 스크럽 효과와 완벽한 사용감은 기대 이상으로 놀랍고 황홀했다. 자스민 넥타 녹차에 어울리게끔 동백 오일을 넣어보기로 결정했던 것도 무척 탁월한 선택이라 뿌듯했다. 차에 대한 애정도 돌아오고, 차 비누 자도 사랑에 빠지게 된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비누였다.


다음 비누였던 백차와 허브차 반반 스크럽 꽃비누도 사랑해 마지 않았던 비누였다. 차 비누가 너무 좋은 나머지 어떤 차로 만들지 고심할 때, 혜성처럼 나타난 가족의 현명하고 초월적인 아이디어 덕택에 무려 두 개의 차를 동시에 넣은 차 비누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아이스크림의 플레이버 같았던 화이트 페탈 백차의 아이보리와 핑크 가든의 스트로베리 컬러는 너무 예뻤고, 한 달이 지나자 아이보리가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고급스러운 색감으로 변한 건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감동이다. 반 비누에 라벤더 오일을 선정해 넣은 것도 완벽했다. 사용감도 향기도 다 좋아서, 그야말로 아름답고 감미로운 차 비누였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자 만들었던 모닝 라이트 홍차 비누도 정말 애정하는 비누다. 파운드 케이크처럼 달콤한 비쥬얼이라 정말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아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여기에 르세유 비누로 만든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여기에 반전처럼 찻잎들을 넣어 스크럽 효과를 극대화시킨 것도 완벽한 선택이었다. 순하고 부들부들해서, 물을 마시는 게 당연한 것처럼 씻을 때마다 홍차 비누를 사용하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좋았다.


하나씩 돌이켜보니 각각의 비누를 경험했던 당시가 떠올라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같다. 차 비누를 하나하나 구상할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어떤 차를 비누로 만들지 선정하고, 차와 어울리는 원료를 특별히 골라서 넣는 것도 매순간 즐거웠다. 완성된 비누들이 도착해서 처음 사용할 때의 환희와 감동, 일상에 차 비누가 스며들어 나날이 행복하게 보낸 시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차 비누로 차에 대한 애정도 다시 돌아왔을 뿐더러 이전보다 더 좋아져서 흠뻑 빠지게 되었다. 다시 차 비누를 구상해서 주문해볼까 고민했는데, 차가 더욱 좋아져서 차들 중에서 어떤 걸 고르면 좋을지 선택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올해는 이렇게 시즌1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하기로 했다.


자스민 넥타 녹차 비누, 백차와 허브차 반반 스크럽 꽃비누, 모닝 라이트 홍차 비누까지.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차 비누들과 항상 곁에서 함께하며 도와준 고마운 가족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면서 연말 회상식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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