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로로 Sep 16. 2024

<소설>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4

-그 여자 -그 남자

●         

 

  말 그대로 일이라고. 쉬운 일이 아니야. 여기 오는 남자들이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처럼 잰틀 할 줄 아는 건 아니지? 반푼이 같은 인간들이 술 잔뜩 먹고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게 여기야. 미친 사람도 많고 멀쩡하게 생겼어도 갑자기 쌍욕 하면서 때리기도 하고. 내가 본 중에 제일 미친 사람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면도칼 들고 와서 내 팔뚝을 촥 그으면서 기분 어때? 흥분되냐? 이러잖아. 그런 미친놈도 만날 각오하고 일해야 하는 데가 여기라고. 여기 흉터 봐봐. 이게 그 상처야. 쉽게 돈 번다고? 그딴 소리에 나는 동의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이나 그렇게 말하지. 몸 쓰는 일치고 어디 쉽게 돈 버는 게 있어? 당연히 이것도 마찬가지야.    

 

  내 생각에는 바뀌면 싶은 일이 한둘이 아니야. 당장 기자오빠만 봐도 솔직히 나한테 편견이나 오해가 많았잖아. 자기가 좀 열려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자부하는 사람이 이 정도인데 보통 사람은 말로 다 못하지.


  일하다 보면 별의 별놈을 다 봐. 결국 자기도 연애하러 와놓고 회개하라고 기분 망쳐 놓는 목사도 봤고 꼴같잖은 질문 해서 대답 좀 성의 없게 해 줬더니 창녀는 창녀지. 이러면서 자기는 엄청 도덕적이고 깨끗한 척하잖아. 어이가 없어서. 못난 남자들이 꼭 이런 데 와서 잘난 척하고 가는데 이것도 서비스업이라고 그딴 사람들 비위까지 맞춰 주는 게 이 일라고.


  나이가 몇이야? 이름이 뭐니? 넌 결혼 생각 없어? 왜 이런 일 하고 있어? 하나하나 상대하다 보면 웃기지도 않아. 그거 반대로 물으면 자기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그러는지 참. 몇 살이야? 결혼은 했어? 했는데 여기 왜 왔어? 물어보기라도 하면 어버버 거릴 게 뻔해요. 그런 인간들 상대하면서 번 돈이 어떻게 쉽게 번 돈이냐고. 툭하면 콘돔 뺀다고 진상 부리지. 자기 멋대로 엉뚱한 데다가 넣지를 않나. 아는 언니는 그래서 항문 다 파열됐어.


  술 먹고는 와서 욕하고 때리는 미친 인간 만나는 게 대수겠어? 근데 그렇게 맞는 일 생겨도 이 일 하는 여자들은 어디 가서 신고도 못 해요. 일 자체가 불법인데 공권력 보호는 포기해야지. 그나마 업장에 오면 삼촌들이 지켜주니까 안전해서 여기로 출근하는 게 커. 유영철 같은 놈 알잖아. 이런 일 하는 아가씨만 골라서 죽였어. 밖에서 일하면 그런 놈 안 만난다고 보장할 수 없다고.     


  그것도 많이들 착각하는데 자기들이 돈 냈다고 해서 사람을 샀다고 생각하는 거. 그래서 아가씨를 자기 맘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근데 엄연히 내 서비스를 사는 거거든. 나는 그 이상 해 줄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는 거지. 하다못해 맥도날드를 가도 음식 가져가라 자리 치워라. 정리하고 가라. 말 잘 들으면서 여기도 엄연히 규칙이 있는데 그거 자체를 이해 못 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키스하면 안 돼요. 콘돔 빼면 안 돼요. 뒤에 넣으면 안 돼요. 한 번 싸면 끝이에요. 이거 지키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 않아?     


  이야기하다 보니까 그래서 그렇지 그래도 괜찮은 사람도 있어. 그냥 얌전히 와서 잘 즐기다가 가는 사람이 더 많아. 다 미친놈만 있으면 이 일 하루도 못 버티지. 그래도 연애하는데 진짜 애인처럼 대해주는 사람도 있고 고맙다고 우는 남자도 있고 그랬어. 솔직히 여기 오는 남자들이 다 재미있게 연애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그러면 안 오겠지. 요즘엔 연애하기도 어렵고 혼자 처리하려니까 서럽고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아니면 깔끔하게 즐기고만 싶은 사람들도 있고. 다 필요해서 찾아오는 거야. 와서 얘기도 하고 내 덕분에 좀 풀렸다고 말하는 사람들 보면 보람되기도 하고 그래. 왜 그런 느낌 있잖아. 아 나도 필요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 나한테 위로를 받았구나. 그런 느낌. 일하다 보면 그래도 심심찮게 느낄 수 있어. 맨날 지옥 같으면 죽고 말지. 어떻게 살아.   

            

●          


  남자는 이곳에서 30년간 지켜온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정황상 엄밀히 따지자면 지킨 것도 아니고 바치는 것도 아니니 지녔던 동정을 버린다는 것이 맞겠다. 비록 집창촌에서의 섹스가 첫 경험이 될 터였지만 남자는 이 행위에 대해 필연을 부여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일이 12일이니 열두 번째 눈이 마주치는 여자와 거사를 치르기로 마음먹었다. 어떻게 생겼는가도 따지지 않기로 했다.


  처음 얼마간 남자는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걸었다. 그러면서도 곁눈질로 여자들을 바라봤다. 여자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남자를 불렀다. 순수하기도 했고 해맑기도 했고 도도하기도 했고 앙칼지기도 했다. 각각의 여자들이 진열장에 예쁜 팬시상품이었다. 남자는 열두 번째 상품만 구경하고 끝내기에는 이 기회가 아까웠다. 몰래몰래 훔쳐보다가 골목의 중간쯤에서부터는 어깨를 폈다. 어느새 몇 번째 여자와 눈이 마주쳤는지 세는 것도 잊어버리고 개중에 가장 예쁜 여자를 고르고 있었다.


  결국, 남자의 눈이 멈춘 곳은 긴 생머리에 까만 원피스를 입은 여자였다. 긴 생머리의 여자만 지나가면 뒤돌아보던 남자의 취향이 잘 반영된 여자였다. 남자의 시선을 잡은 여자는 길거리 어디를 지나가든 남자들을 뒤돌아보게 할 만큼 빼어난 외모였다.


  남자는 여자가 어딘지 모르게 슬픈 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여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남자는 가까이 다가가서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여자는 눈에 들어온 남자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손님 받을 때 짓는 미소 띤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편의점 직원이 물건의 바코드를 찍듯이 남자의 손을 잡고 가게 안으로 당겼다.

  남자는 자신에게 이렇게나 적극적인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여자의 손은 차가운 편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온기가 여자에게 전해질 것을 생각하니 속에서 울컥하고 쉽사리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올라왔다. 연애다. 손잡고 키스하고 안고 사랑(섹스)하는 그 모든 것을 오늘 하루 안에 다 경험할 거라고 생각하니 떨리고 무섭고 흥분되며 조바심이 났다. 그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다 표현하기는 어려웠다.


  남자는 여자의 이름이 궁금했다. 생에 첫 여자이기에 적어도 이름만큼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연애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솔직해지고 싶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제가 사실 처음이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요.”

  “희선이예요. 김희선. 별거 없어요. 콘돔 빼면 안 되고 뒤로 넣는 거 안 되고 오빠 긴 밤 아니죠? 그럼 한 번 하면 끝이에요. 아 그리고 키스하는 거 안 되고.”


  본명인지 가명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남자는 여자의 이름이 얼굴만큼이나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입맞춤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의아함이 느껴졌다. 남자는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와 키스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서운하면서도 첫 키스만큼은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할 수 있게 되어 흡족했다. 그리고…….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남자의 첫사랑(섹스)도 서툰 결말로 끝이 났다. 찰나의 순간이 봄날처럼 후다닥 지나갔고 살에 닿는 감촉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


  “빼.”


  “돈 냈잖아요. 아직 시작도 안 했어요.”


  아직은 사랑(섹스)을 끝내고 싶지 않았던 남자는 여자에게 좀 더 매달렸다.


  “끝났어요. 빼세요. 아 삼촌. 삼촌 여기 좀 와 봐요.”     


  험상궂은 사내가 욕을 하면서 들어오는 상황에 기겁하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쪼그라든 성기를 한 손으로 가리고 뒤돌아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인생의 첫 여자에게 보인 아름답지 못한 뒷모습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