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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Nov 13. 2024

<소설> STUCK 3 完


●     


  I’m stuck in here.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어~♩     


  토요일이 아침이 됐습니다. 살려 주세요.라고 외치다가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살려주세요.라고 외칩니다. 제가 좋아했던 밴드의 빌어먹을 노래가 아직까지도 흐르고 있고 입안은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 있습니다. 이 황당한 상황이 마치 꿈같지만 허리의 통증이 너무도 선명해서 도저히 꿈이라 믿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온몸이 저리고 두통까지 시작됐습니다.


  제발 누가 무한 반복되는 밴드의 새 앨범을 꺼줬으면 좋겠습니다. 살려주는 게 안 된다면 노래라도 꺼줬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새 앨범의 7번 트랙이 지옥의 소리처럼 끔찍합니다. 두어 번 듣기에는 신선한 사운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복해서 계속 듣다 보면 포크로 칠판을 긁어대는 정도의 괴로움이 귓속을 파고들어 미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앨범을 만들어 내는 아날로그 정신은 칭찬해 줄만 하지만 꼭 아티스트라는 걸 티 내고 싶어서 실험적인 음악을 일부러 만들 필요는 없었을 거라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이따위 짓거리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독보적인 사운드로 사랑받는 밴드일 텐데요. 공포의 7번 트랙을 제발 어느 구원자가 나타나 구급차를 부르기 전에 노래부터 꺼 줬으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집니다. 하반신불구를 각오하고 거실의 휴대전화를 가지러 가거나 가만히 누워 구원자를 기다리거나 기다리다가 죽거나 이래나 저래나 망한 답변뿐인데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기를 선택한 건 아닙니다. 선택을 위해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현관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저를 제외하고 단 두 사람입니다. 헤어진 전 애인과 지방에 사시는 어머님. 지방에 사는 어머님은 복잡한 아파트를 혼자 찾아오시지 못합니다. 제가 항상 데리러 갔거든요. 그마저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럼 남은 사람은 헤어진 전 애인뿐이네요.     


  그녀와는 결혼에 거의 근접하게 다가갔던 사이였습니다. 예쁜 사람이었고 똑똑했고 서로 많이 좋아했습니다. 3년 정도 연애를 했고 헤어지기 직전이 둘 다 결혼적령기의 나이였죠.

  그녀도 프러포즈를 기다리고 있었고 저도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그녀의 친구들이 우르르 시집을 가기 시작하던 때였거든요. 그때 결혼이 성사됐다면 아마 지금의 상황은 극복될 수 있었겠네요.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집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지금 제가 사는 이 집이요. 방 두 개, 거실, 부엌, 화장실로 이뤄진 18평의 전셋집은 직장을 구하고 대출과 부모님이 보태 준 돈으로 구했죠. 대출금은 제 월급에서 다달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신혼집을 지금 제가 사는 집으로 하자고 말했습니다. 결혼으로 부모님께 더 부담드리기 싫으니 지금 사는 집에서 시작하고 차차 넓혀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난색을 표하더군요. 직장과도 거리가 멀어지고 결혼하는 기분도 나지 않는다면서요. 멀어지긴 하지만 출근길 40분이면 못 다닐 거리는 아니지 않냐. 네 직장과 가까워지려면 강남 쪽을 구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어림도 없다.라고 말했죠. 그때는 그랬습니다. 제 논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기분이 상한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서운함을 표현했고 그것이 그녀의 집에서 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죠. 스드메, 혼수, 예물, 예식장, 뭐 이딴 것들을 준비할 때마다 의견이 안 맞았고 그러다가 기분 상하는 몇 마디의 말이 오가고 결국엔 대판 싸우다가 끝나버렸죠.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들 결혼 처음 해 보잖아요. 스드메니 예물 예단이 뭔지 구분도 제대로 못 하고 그 규칙이 지방마다 다 다르던데요. 모를 수도 있고 싸울 수도 있잖아요. 싸웠다는 걸 잘했다고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처음 하는 결혼이니까요. 좀 서툴러도 이해해 주고 그랬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완벽해지려고 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어른인 척 말해봤자 지금에 와서 뭐 하겠어요.

  지금에 와서 추측하는 거지만요. 아마도 돈이 많았다면 싸우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별다른 고민 없이 좋은 게 좋은 걸 골라가며 그렇게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고작 얼마의 돈 때문에 그녀를 속물로 만들고 나를 무능력자로 만들고 그랬던 게 후회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돈이야 벌면 되잖아요. 근데 사람은 잃으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혹시 이런 후회를 그녀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방에 들어와 죽어가는 저를 발견하는 거죠. 그렇게만 된다면 평생의 은인으로 그녀를 모시고 살 자신 있거든요. 하늘에 영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제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올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     


  저는 지금 허리에 핀이 빠져 꼼짝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도움을 주러 찾아올 사람은 없고 누군가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습니다. 다리의 신경은 살아있지만 허리에 힘을 주면 끊어질 듯 한 통증에 시달립니다. 이 상태에서 무리하게 움직이면 신경이 손상되어서 영영 걸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수천만 가지 우연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낸 거죠.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운명을 설계당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완벽한 곤경에 처할 수 있냔 말이죠.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가 쌓여 빚어낸 결과입니다. 평생의 제 선택이 사소하게나마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어요. 그래서요. 이제 제가 뭘 하면 될까요?     


  I’m stuck in here.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어~♩     


  알아요. 알거든요.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죠. 허리가 끊어지든 목숨이 끊어지든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야죠. 포기하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긴 시간 가만히 견디다 보니 아주 대단한 걸 깨닫게 됐는데요.


  죽기를 기다리는 삶이 죽는 것보다 힘들어요. 몸소 체험하여 알아낸 진리입니다.     


  마침내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뒤집습니다. 허리를 짓이기는 통증 때문에 몇 번을 실패했지만 이미 머릿속의 사념은 다 지워버렸습니다. 마침내 두 팔로 기어갈 수 있게 됐고 저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미끄러지듯이 굴러 떨어집니다. 대단치 않은 충격이 제 몸에 전해졌지만 이내 흉악스러운 고통이 찾아듭니다. 괴성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흐르는 눈물과 콧물과 침을 제 의지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고통 탓에 감각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양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각오했지만 두려운 상황입니다. 이제 더는 뒤돌아볼 필요도 없습니다. 설사 허리가 끊어졌대도 이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손발이 잘려도 바로 병원을 찾으면 붙일 수 있다고 하잖아요. 병원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잖아요. 어떻게든 되겠죠. 넓은 집도 아닌데 거실까지 거리가 꽤 됩니다. 겨우 거실로 기어 나왔습니다. 소파 위를 더듬거립니다. 이쯤 어딘가에 휴대폰이 있었습니다. 소파 위에 놓인 휴대폰을 손으로 집었습니다. 전원을 확인합니다. 배터리가 방전입니다.


  “오예!”     


  충전기가 있는 안방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자동차가 후진하듯 팔로 몸을 뒤로 밀었습니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통증은 이제 해탈한 상태입니다. 안방 문턱을 넘어 드디어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습니다. 전원을 켜고 통화 가능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배터리가 1%입니다. 조금이라도 충전이 된다면 119를 눌러 허리가 끊어졌다며 응급차를 부르면 됩니다. 이제 진짜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제가 가장 기쁜 게 뭔지 짐작하시려나요?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바로 그겁니다. 이제 엿 같은 노래는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한고비 넘겼으니 다음 걱정은 다음에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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