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브라의 공격은 단순하다. 고개를 들고 상대를 노려보다 일직선으로 상대를 향해 내리꽂는다. 코브라를 마주한 상대는 대부분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어렵지 않게 쓰러진다. 코브라의 무기는 치명적인 독과 날카로운 이빨이다. 덩치가 크든 작든 도망치는 상대를 물어뜯는 일이 익숙하다. 단 한 개체를 뺀다면 말이다.
사향고양이과 동물에 유사하나 더 좁은 어깨와 넓은 두개골을 지녔다. 귀는 작고 둥글며 주둥이가 뾰족하다. 고양이과에 묶어두기에는 특징들이 도드라져있기 때문에 몽구스과로 분류함에 마땅하다. 특히나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맹독을 지닌 코브라와 맞서는 것이 더욱더 그 동물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몽구스는 코브라의 독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맹독에 끄떡없는 것은 아니다. 독에 대한 내성만 믿다간 역으로 코브라의 먹이가 된다.
내가 보는 영상에서 몽구스는 빠른 발로 코브라의 주위를 맴돌다가 코브라가 직선으로 공격해 올 때 돌아서 달려들어 앞발로 머리를 제압한 뒤에 목을 물어뜯었다. 빠른 발. 빠른 공격. 호전적이다. 용맹스럽다. 귀여운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이거다. 충분히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연의 법칙에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알아본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나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경우는 보통의 것과 다르다. 포식자가 사냥에 나섰다가 실패했을 때 되려 피식자의 먹이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부분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이것이라면 승산이 있다.
나는 확신을 하고 몽구스의 움직임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세밀한 동작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영상을 돌려봤다. 몽구스는 독사가 독을 흩뿌리는 때를 어떻게 알아차리며 몽구스가 코브라의 공격을 피할 때 발동작의 각도가 얼마만큼 벌어지는지, 목을 물어뜯을 때 앞발의 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발톱의 날은 어디로 파고드는지, 그 모든 것을 뇌에 새긴다는 느낌으로 반복하며 익혔다. 열댓 번을 돌려봤을 때쯤 내 몸은 조금씩 화면 속 몽구스를 따라 하고 있었다. 나는 몽구스의 동작을 구체화하며 이미지를 떠올렸다. 스무 번째 영상을 독파했을 때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기합과 함께 손톱을 새우고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몽구우우우우스스스스스스스스”
몽구스는 내가 표현하려는 동물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이고 뒤쪽의 스스스스는 눈앞의 대상이 코브라라는 것을 모사했다. 뜻이야 어쨌든 스스스스 라는 표현이 다소 힘 빠지게 만드는 기합이 아닐까 내심 신경이 쓰였다. 일단은 우려를 접어두고 다음 동작을이었다. 어차피 앞으로 남은 기간에 수십 번 고민해서 최적의 기합을 만들어내야 할 일이었다.
갈고리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미끄러지듯이 발을 굴렀다. 앞으로 이어질 동작들에 대해서도 괜찮은 그림이 그려진다. 오른쪽으로 몸을 틀고 발을 구르다 이보 전진 후에 머리 쪽 상단을 향해 왼손을 후려치고 뒤이어 오른손이 따른다. 그리고 다시 뒤로 물러서 빠르게 발을 구르며 거리를 둔다.
“타핫”
기합소리와 함께 몸을 숙이며 빠르게 전진하려던 때에 바닥에 떨어진 블록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본능적으로 피하고서 균형을 잡았다. 까딱하다 밟기라도 했으면 그대로 쩔뚝이며 두어 달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조카 녀석의 소행이다. 1초가 귀한 지금 다치기라도 한다면 기회는 그걸로 끝이다. 올해 승부를 보지 못하면 아예 무술을 관둬야 한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약속해 놓은 상태다.
바닥에 떨어진 블록 조각을 주웠다. 처음 발견한 것 외에도 몇 개가 더 눈에 띈다. 이 정도라면 여기선 자유로운 수련이 불가능하다. 동작을 연구하고 무술의 구성을 짜기엔 집이 좁고 방해물이 많다. 또한, 발을 구르면 층간소음으로 아랫집 할머니가 올라온다. 지난번에는 조카에게 뒤집어씌우며 넘어갔지만, 지금은 뒤집어씌울 조카도 없다. 여러 이유로 집에서는 집중할 수가 없다. 핑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내 집이라면 쓸데없는 가재도구들을 다 갖다 버리고 방진시설도 갖춰서 완벽한 도장을 만들어버릴 테지만 그럴 수도 없다. 여긴 누나의 집이다. 나는 조카를 봐준다는 명목으로 누나 집에 얹혀살고 있는 객식구일 뿐이다. 곧 어린이집이 마칠 시간이다. 외삼촌인 나는 오후 세시가 되면 밥값을 위해 누리 어린이집으로 가야 한다. 꾸물대다가 늦기라도 하면 조카가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조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시간 즈음에는 비가 그쳤으면 좋겠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어젯밤부터 그 생각만 했다. 내게는 자가용이 없는 탓에 비를 맞으며 조카와 힘든 걸음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내 간절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비는 어제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내렸다.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듯이 내리는 비의 양도 지루할 만큼 일정했다.
나는 비 내리는 거리를 오른손에 큰 골프우산을 들고 왼손에는 뽀로로 우산을 쥐고 걸었다. 몸이 약한 조카가 혹시나 비를 맞고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나. 차도 못 태워주는 삼촌 탓이겠지. 조카를 만나기 전부터 걱정거리만 늘었다.
생각 같아서는 조카를 업고 일본에 전설적인 빠른 발의 사나이 비사이로 막가처럼 젖지 않고 집까지 가고 싶지만 그건 망상에 불과했다. 이미 그런 옛날이야기는 순수무술에서는 퇴출당한 지 오래다. 구전으로만 전해질뿐 연구하는 것조차도 웃음거리를 산다. 근래 들어 영화에서 그 모습을 구현해 내면서 인기가 올라갔지만, 그것과 별개로 순수무술 업계에서는 여전히 깔보며 하대하는 분위기다. 어찌 됐건 가짜인 건 맞다. 혹여 누구는 무술의 기본에 상상력까지 더해야만 환상무술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겠냐며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하지만 문제는 무술의 기본이 없는 인간들이 눈속임으로 특수효과를 떡칠하고선 내가 최강입네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은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다. 그들은 무술로 강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 연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무술가가 아니다. 그냥 액션 배우다.
그들이 보여주는 무술에는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나도 사실 시켜만 준다면 열심히 할 의욕은 넘친다. 거기는 움직인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보상이 주어지는 곳이었다. 일단은 돈이 몰린다. 돈이든 명예든 유명세든 지금 내게 없는 것이 거기에는 다 있었다. 다만 그 업계에서 필수로 갖춰야 할 준수한 외모나 연기력 또한 내게 없으니까 나는 원래 하던 거나하면서 내가 못 가는 길을 가지 않는 길이라 여기며 멀찍이 떨어져서 욕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도 안다. 내가 이 모양인걸.
아무렴 어떤가.
사실 나도 순수무술보다는 액션영화 한 편이 더 신나고 재미있다. 액션영화가 본격적으로 활개 치면서부터 순수무술은 스스로 오락성을 던져버렸다. 그래야만 차별화를 이루며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화려함이라는 측면에서 상대되지 않는 게임이다.
차별화 덕에 순수무술은 더 진지하고 본질에 가까운 무술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갖게 됐지만, 같은 이유로 무술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었다. 그런 순수무술에 뜻을 품은 나 같은 무술가 지망생의 생각이 이 정도인데 대중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무술가의 황금기는 이미 지나갔다. 그 황금세대를 이끌던 사람은 전설이 되어 스크린에서 영화로 구현됐다. 그것도 아주 과장되게 말이다. 현실의 무술가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있었다.
잡생각에 빠져 걷다 보니 어린이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린이집 앞에는 부모들이 몰고 온 승용차들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손에 쥔 우산이 더 민망해지고 있었다. 일부러 한걸음 물러서서 차가 빠지기를 기다렸다. 내가 무술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자투리 시간에 담배라도 태웠을 텐데. 나는 할 일 없이 우산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만지며 빗방울을 당수로 쳐내고 있었다.
차가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었다. 다만 부끄러웠다. 길게 늘어선 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조카를 데려 나오려면 조카는 우산을 쓰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야 하고 그게 미안했다. 조카의 손을 잡고 가다 보면 꼭 문을 열고 태워 주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긴다. 차를 얻어 타게 되면 그때부터 호구조사가 시작된다. 아이와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 몇 살이냐. 뭐 하시는 분이냐. 벌이는 괜찮으냐. 결혼은 했느냐. 사귀는 사람은 있느냐. 무술가는 전망이 어떻게 되냐. 질문도 뻔했고 대답도 뻔했다.
호의를 베푼 사람의 질문을 성의 없이 대답해 주는 것은 또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것이 비록 궁금해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두어 번 그런 경험해 봤더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는 것도 싫었지만 구태여 그것을 거절하고 가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이렇게 마냥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차가 모두 빠진 다음에야 어린이집으로 가서 조카를 불러냈다.
“민호야. 비 안 맞도록 우산 단단히 쓰고 삼촌 뒤에 잘 따라와야 해. 알겠지?”
“응. 근데 삼촌은 왜 차가 없어?”
“삼촌은 걸어 다니는 게 좋아서 차를 안 샀어. 민호도 많이 걸어 다니면 삼촌처럼 튼튼해질 거야.”
차를 안 산 것인지 못 산 것인지 조카에게 자세한 상황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카에게 둘러댄 변명이 거짓말도 아니었다. 처지가 곤궁해서 그런지 이말 저말 떠벌리기 싫어 조용히 걸었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만 요란했다. 조카는 뽀로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기한 눈치였다.
비 오는 날 걷는 게 나쁜가. 내가 어렸을 적에는 마중은 고사하고 우산도 없이 집까지 걸어간 일도 허다했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요즘엔 비라도 한 방울 맞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비 오는 날 삼촌이랑 이렇게 걸어가니까 재미있지?”
조카가 웅얼거리며 대답하는 말이 빗소리와 함께 뭉뚱그려졌다. 좋다는 말일 터였다. 조카의 표정이 그랬고 내 기분도 그랬다.
아파트 복도에 도착해서 기다란 골프우산을 접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골프우산을 손오공이 여의봉 돌리듯이 휙 하고 돌리며 젖은 물기를 털어냈다. 봉술이 내 특기 중에 하나다.
“우와. 삼촌 짱 멋있어. 나도 나중에 삼촌처럼 되고 싶어.”
나를 따라 뽀로로 우산을 휘두르며 조카가 말했다. 몸이 약한 민호에게 무술은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무술까진 아니더라도 기초체력을 올리는 일은 삶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민호가 나를 멋있게 생각했다는 사실은 누나가 절대 알아선 안 될 것만 같았다. 누나의 집에서 쫓겨남은 물론이고 앞으로 조카에게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지도 모를 일이다. 누나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민호야. 엄마한테는 절대로 그런 소리 하지 마. 알겠지?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