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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Nov 11. 2024

<소설> STUCK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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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시간은 3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잡스러운 지식 중 하나인데요. 333 법칙인가 그렇습니다. 음식이 없으면 3주를 못 버티고 물이 없으면 3일을 못 버티고 공기가 없으면 3분을 못 버틴다든가 아마 그럴 겁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이 순간이 무너진 건물 밑에 깔린 것보다 상황이 나쁘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여기선 잔해 사이로 흐르는 빗물조차도 기대할 수 없으니 제게는 아마 숨이 붙어 있을 날이 3일도 남지 않았다는 계산이 섭니다. 이렇게 심각한 와중에도 배가 고프다는 게 새삼 저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지네요. 원래라면 지금쯤 식탁 위에 있는 소스가 진득하게 불어있는 탕수육을 뱃속에 넣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겠죠. 저는 소스를 부어서 먹는 걸 즐깁니다. 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래 탕수육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요리니까요. 새삼스럽게 부어서 먹는다는 걸 밝히는 이유는 일전에 친구들과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을 때 제가 소스를 튀김 위에 붓고 있는 걸 본 친구가 흥분하며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죠.


  “탕수육 부어서 먹는 새끼들은 죽어야 해.”


  그날 식사 장소가 우리 집이었고 계산도 제가 했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데 더 놀랐던 건 다른 친구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더란 말이죠. 오늘은 저 혼자 먹은 터라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소스를 부어서 먹었는데 그것이 이 사고의 이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기 때문입니다.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탕수육 신이 소스를 끼얹는 저를 보고선 죽음의 형벌을 내린 건 아니겠지요. 근데 탕수육은 원래 소스를 끼얹어 먹는 음식이란 말입니다. 소스에 찍어 먹는다면 탕수육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어야 했겠죠. 고기튀김이라든가 뭐 그런 이름으로 불러야 했겠죠. 제가 맞아요. 그리고 내 돈 내고 부어서 먹겠다는데 왜 내가 죽어도 되는 사람 취급을 받느냔 말입니다. 아니겠지요. 탕수육 때문은 아니겠지요.

  누구나 다 저처럼 강제적인 참회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골몰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이럴 줄 몰랐으니까요.

  허리에 미세한 힘만 들어가도 극심한 통증이 되돌아옵니다. 이 불행 중에 다행인 하나는 발목과 발가락이 움직인다는 겁니다. 이건 아직 허리 신경이 살아 있다는 뜻이죠. 불행 중의 불행은 몸에 박혀 있어야 할 핀이 어긋나 신경을 날카롭게 겨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리를 움직이기라도 하면 신경을 끊어버릴 기세로요. 지금 누워 있는 곳이 침대만 아니라도 몸을 조금씩이라도 밀어가며 어떻게든 거실의 휴대전화까지 움직여보겠지만, 지금의 저는 킹사이즈 침대 밑으로 몸을 떨어트리는 일을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떨어지면서 받을 충격이면 분명 허리에 박힌 핀은 제 신경을 끊어버릴 것만 같거든요. 끊어진 신경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인 즉 앞으로 걸어 다닐 일이 없어진다는 거겠죠. 감히 누가 그런 걸 쉽사리 선택할 수 있겠어요. 그 삶을 상상하며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저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그냥 설명할 수 없이 억울할 뿐입니다. 어쩌나요. 이대로 죽어버려야 할까요?     


  허리 수술을 받은 건 군 입대 후 상병이 되어서였습니다. 그때가 상병 6호봉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바라던 병장을 두 달을 남겨놓고 제대해야만 했죠. 병명은 허리 디스크와 척추분리증이라는 합병증이었습니다. 디스크는 쉽게 말해서 수액이 튀어나와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고 척추분리증은 말 그대로 척추가 분리된다는 건데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놔두면 허리가 굽어 못쓰게 되는 병이죠. 노인 중에 허리가 굽어 펴지 못하시는 분을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의사가 제 허리를 보며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해야 할지 모르는 수술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군대에서 다쳤으니 간첩이라도 때려잡다가 얻은 병이라고 하면 더 폼이 나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멋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근무와 노동을 반복하는 일상생활을 하다가 얻은 병이었습니다. 군대에서의 일상이 제게 무리였던 거죠.

  제가 배치받은 부대는 예비사단이었습니다. 최전방의 바로 뒤를 지키는 부대였는데 적군이 휴전선을 넘어 선제공격해 오면 후퇴하는 최전방 부대와 합세하여 치고 올라가는 부대였죠. 그 덕분에 여러 전술 전략을 익혀야 해서 유독 군사훈련이 많은 부대였습니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훈련은 훈련대로 많았고 경계근무는 경계근무대로 많았습니다. 그런 곳이니 허리가 버텨주질 못했죠. 척추분리증이 디스크를 불러오고 합병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그 많은 훈련도 지독하게 힘들었지만, 훈련만큼 힘들었던 게 경계근무였습니다. 총을 들고 서 있으면 발이 저릿저릿하면서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죠.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25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탄약고였습니다. 불이 나면 소방수가 필요하다는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물탱크에 물을 채워야 했죠. 그때 저는 20L 말통을 둘러매고 산을 올랐습니다. 그때 오르면서 느꼈습니다. 허리가 심상치 않음을요. 후에 각 병사들이 수통에 채운 물을 물탱크에 넣는 거로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 짬밥이 안 되는 병사들은 매일 20L 말 통을 들고 탄약고를 올라야 했습니다. 제가 일병 때 있었던 일이었죠. 그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기에 남은 군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습니다. 짬밥이 안 되기에 아프다는 소리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사실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허리 수술은 함부로 받는 게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일지 모르지만 어떻게든 버텨서 영광스럽게 전역하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환자 하나가 소대에 미치는 피해를 생각해 본다면 그런 욕심을 접는 게 맞았습니다.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열외 한다면 병사 하나에 할당된 임무와 작업을 나를 대신해 누군가가 해야 하니까요. 전우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는 착한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나 자신이 몹쓸 병력 취급받는 것. 내 몫의 일거리를 소화해 내는 전우의 썩은 얼굴을 봐야 한다는 것. 거기서 파생되는 각종 스트레스가 견딜 수 없는 이유였죠. 누군들 군 복무를 좋아서 하겠어요. 입장 바꿔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그래서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버티다 버티다 허리에 핀을 박았죠.

  허리에 박힌 핀이 이런 식으로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그 의사는 알고 있었을까요? 제 죽음은 이렇게 기획된 것일까요? 이렇게 죽으면 제 꼴이 뭐가 되나요? 저는 왜 태어난 걸까요? 대답 없을 질문을 허공에 날립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살려 주세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뭔가 억울합니다. 아프리카에 태어났어도 군대는 안 갔을 거잖아요.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도와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혼자서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죠. 그런데 아무리 외쳐도 변하는 건 없었습니다. 노랫소리에 묻히는 건지 어쩐지 알 수가 없지만 도와주세요.라는 외침이 한 시간 넘게 계속되어도 아무 변화가 없는 걸 보면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살려 주세요.라고 구호를 바꿨습니다.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기억에 살려 달라는 말을 직접 해 본 건 태어나서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작 아무리 살려달라고 외쳐도 누구 하나 관심 보여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리도 무관심한가요.


  내가 누운 이곳은 조용하고 독립적인 공간입니다. 이 아파트를 처음 들어올 때 대수롭지 않게 넘긴 층간 소음 완화 시공이라는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그 효과는 오늘로써 입증되었습니다. 이 집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길 때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살아서 그런 날이 온다면 말이죠.


  저는 지금 죽음보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먼저 죽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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