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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Nov 06. 2024

<소설> STUCK 1


  I’m stuck in here.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어~♩     


  점이며 타로 관상 손금 따위는 절대 보지 않았습니다. 미신일 뿐입니다. 과학적이지 못합니다. 운명이 있다면 제가 스스로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요. 사실은 돈이 아까워서였습니다. 잡지 한쪽을 차지한 별자리나 띠별 운세에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운세까지 대신 봤었으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로 들어가면 고작 돈 때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미로 흘겨보는 잡지 한쪽의 운세와 달리 진지하게 찾아간 점쟁이에게서 나쁜 말이라도 듣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믿어버릴까 그것이 두려운 거였습니다.     


  처음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눈 게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취업에 대한 걱정에 대학 선배에게 조언을 구하러 찾아간 자리에서 그 선배가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용하신 분이 있는데 신내림 받은 지 3년이 안 됐으니까 아직도 신빨이 있을 거야. 내가 입사 지원서 세 군데 넣고 찾아갔는데 어디가 떨어지는지 하는 거랑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연락이 올 거라는 것까지 맞췄다니까.”

  “에이. 좀 그러네요. 혹시 가서 다 떨어지고 나쁜 말만 듣고 오면 어째요.”

  “그냥 보는 거지. 나쁜 말 하면 안 믿으면 되고.”

  “안 믿을 거면 왜 가요?”     


  저는 누군가가 확신에 찬 얼굴로 내게 나쁜 말을 했을 때 그걸 무시할 만큼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닙니다. 저를 제일 잘 아는 건 저 자신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배의 조언에도 점쟁이를 찾지 않았고 찾지 않고도 원하던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런 인간들은 안 마주치고 사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좋아도 나쁠 수 있고 나빠도 나쁠 수 있잖아요. 그냥 안 마주치고 무시하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말도 무시하고 싶었습니다. 내 속에서 내 미래를 결정짓는 목소리. 확신에 찬 목소리. 엄격하고 진지하게 조목조목 알려주고 있습니다. 피할 수도 없이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제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반신 불구가 되거나 죽게 될 거다.     


  큰일입니다. 목소리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상당히 긍정적이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익숙해졌다고나 할까요. 혼자 지낸 지 오래되다 보면 좋고 나쁨의 문제로 다가오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생활인 거죠. 혼자 잠이 든 건 20년이 넘었고 혼자 살게 된 지는 10년이 넘었습니다. 애인과 잠자리를 하고 아침에 같이 눈뜨는 일은 인생의 이벤트로서는 좋았지만, 일주일이 넘어가니 불편하더군요. 사랑과는 별개로 불편했단 말입니다. 물론 감당할 수 있는 불편이긴 했습니다. 몸에 익은 익숙함을 떨쳐 내려면 상당한 동기부여가 필요하잖아요. 그겁니다. 큰마음먹으면 언제고 누군가와 살림을 합치게 되겠죠. 그 큰마음을 언제 먹느냐가 문제인 거니까요.


  당연히 외롭기는 하죠. 하지만 단순히 외로움 때문에 결혼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그것 자체로 문제가 아닐까요? 준비 안 된 결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늦어졌고요. 요즘 세태로 보면 늦어졌다고 생각되지도 않네요. 서른셋이면 아직 한창입니다. 아직은 장가를 가지 않은 친구들이 좀 더 많아요. 마흔 줄 들어서면 그때부터 조금 조급해지려나요? 대부분 다 비슷한 생각 아니려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제가 특별한 게 아니라고요.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그것 때문에 미칠 지경입니다.     


  I’m stuck in here.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어~♩     


  지금 저는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오늘은 휴일이고 겉보기에 나쁜 그림은 아닙니다. 컴퓨터에서는 오랜만에 앨범을 낸 제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습니다. 저는 가만히 누워서 그림자의 변화를 지켜봅니다.


  거실에는 낯에 시켜 먹은 탕수육세트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습니다. 혼자서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습니다만 짜장면은 다 먹었고 탕수육은 저녁을 위해 조금 남겨 뒀습니다. 배가 무척이나 불렀습니다. 그 영향이 있었겠죠. 식사를 마치고 고개를 내려다봤을 때 복어처럼 부풀어 오른 배가 마치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상반되는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동정과 혐오가 절반씩 제 마음을 나눠 가졌죠.


  제 배의 크기를 보신다면 아시겠지만,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배가 아닙니다. 8년간의 전쟁 같은 직장생활이 남긴 전리품? 훈장? 상흔? 뭐 그런 거라고 하면 좀 과장이 있겠지만, 어찌 됐든 그게 동정의 눈빛을 불러온 이유였습니다. 취직 전 대학생일 때는 이 지경이 아니었으니까요. 영업과 접대가 많을 수밖에 없는 직업인지라 잦은 술자리와 불규칙한 식사는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 요는 어쩔 수 없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거 아셔야 합니다. 혐오는 어쩔 수 없는 것의 사정을 봐주지 않죠. 그냥 그 꼴이 보기 싫은 거거든요. 원래 그런 거야. 그럴 수도 있어. 따위의 변명은 받아들여 주지 않아요.


  불뚝 튀어나온 배가 혐오스러웠습니다. 복어처럼 솟아오른 배를 오래 들여다보니 무서운 단어들이 연상됐죠. 복부비만이 불러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질병들이요. 지방간, 내장비만, 성인병, 심근경색, 뇌졸중, 치매, 어떤 병이 걸리든 복부비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죠. 다들 그러더라고요.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녀석들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혹은 음주나 흡연 같은 것들 말입니다. 사람의 신변에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십중팔구 걔들한테 원인을 돌리면 되는 거죠. 복부비만이 아마 암과도 연관이 있을 걸요?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그럴 겁니다. 없어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래도 될 겁니다. 세상 모든 큰일 날 질병의 원인은 대충 우울증 비만 음주 흡연에 돌려 보세요. 해결은 안 돼도 괜찮아요. 비난의 대상은 찾을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런 복부비만이니까 곱게 볼 수가 없었죠. 이놈을 없애버리고 싶었죠. 그 생각이 들고 곧장 안방의 침대로 향했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운동을 위해서였어요. 집에 따로 운동을 위한 매트를 마련해 두지 않아 쿠션감이 있는 침대를 이용한 것뿐이지 실컷 먹은 뒤에 늘어짐을 해결하려고 침대를 찾은 건 절대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유격훈련 때 했던 가장 힘든 8번 PT를 따라 했습니다.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다들 익숙할 그 호루라기 소리를 입으로 흉내 내면서 말이죠.


  삑 삐빅 삑삐빅 삐빅. 삑 삐빅 삑삐빅 삐빅.


  뱃살 타도를 위해 육성되는 전사를 만들려고 저는 엄격한 교관 역할을 자처하면서 상황극에 몰입했습니다.


  “그것 밖에 안 되나? 20회 실시한다. 몇 회?”

  “20회”

  “15회 시작.”

  “삑 삐빅 삑삐빅 삐빅. 하나. 삑 삐빅 삑삐빅 삐빅. 둘. 누가 숫자 안세고 있나? 오늘 밤새 달려 볼까?”

  “아닙니다.”

  “누가 마지막 숫자 외쳤나? 정신 안 차리지?”

  “아닙니다.”

  “김병직 왜 자꾸 틀려?”

  “죄송합니다. 잘 못 들었습니다.”

  “너 이 고문관새끼 텐트 가서 보자.”

  “잡담하지 않습니다. 누가 잡담하나?”     


  혼자 있을 때 다들 이 정도로 놀잖아요? 혼잣말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이 정도로 정신분열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유격대 놀이를 하다가 발을 공중에 올리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땀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암스트롱 빙의해서 발을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전거 타는 사람. 루이 암스트롱 맞나요? 그 사람은 달에 간 사람인가?     


  “자 루이 암스트롱 선수. 결승점을 통과해 달에 갑니다. 아 약물의 힘이죠. 루이 암스트롱 1위. 김치를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김치의 유산균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김치가 암을 이겼어요.”


  아무 뜻도 없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냥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거죠. 그렇게 루이 암스트롱은 1등으로 달에 도착해 중력을 거스르고 발이 높이 떠올랐습니다.


  “루이 암스트롱 선수. 시상대에 올라섭니다.”


  정확하게는 갈빗대 아래쪽에 양손을 올리고 발을 천정을 향해 높이 올린 거죠. 숫자 1처럼 보이게 하려고 발가락 끝까지 힘을 보냈습니다. 자세가 자세이니만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말씀하시는 순간 루이 암스트롱의 발이 달에 닿으려 합니다. 닿는다. 닿는다. 닿습니까? 닿나요?’     


  뚝!!


  그건 인간의 몸에서 나서는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이 왔습니다. 순식간에 발끝까지 보내던 힘이 끊기고 허리부터 무너져 내렸습니다. 들어 올린 발이 침대로 추락하고 그 반동으로 몸이 아주 잠깐 침대 위로 떠올랐죠.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도 없는 엄청난 통증이 온몸으로 번졌습니다. 신경이 연결된 곳이라면 세세한 곳 어디 하나 빠짐없이 통증이 덮쳤습니다. 백만 볼트의 전기를 맞아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당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버릴 것 같은 난생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통증이 허리에 찾아왔습니다. 그때 저는 엄청난 통증에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10년도 훨씬 전에 나에게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하던 의사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이 핀은 영구적으로 박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교통사고라도 나면 핀이 빠지면서 신경을 건드리고 할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신경은 한 번 상하면 회복이 안 됩니다.”


  의사의 말대로 교통사고는 조심하고 살았습니다. 교통사고는 조심해야죠. 세상에 교통사고를 조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어쨌든 저는 각별히 조심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벌어진 곳은 안방의 침대였습니다. 안방의 침대에서 조심하라는 말은 없었거든요. 안방의 침대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날 일은 없을 줄 알았거든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침대에서 발을 허공에 구르며 사이클 선수 흉내를 낸 것도 교통사고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죠. 말이 아닌 말이죠.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안방의 침대에서요. 저는 침대에 누워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사고 후 지금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핀이 박혀 있던 허리 부분에서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온 신경으로 전달 됐습니다. 통증이 지나가면 전기 고문이라도 당하는 사람처럼 온 근육에 힘이 들어가서 이빨을 꽉 물게 됩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몸을 부르르 떨어야 합니다. 제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침대에서 가만히 누워 있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I’m stuck in here.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없어~♩     


  지금 저는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컴퓨터에서는 오랜만에 앨범을 낸 제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앞으로도 좋아하게 될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저와는 상관없이 세상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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