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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로로 Nov 04. 2024

<소설> 목소리 5 完

당신은 내 목소리를 상상해야 합니다.


쿵 하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췄습니다. 나를 쫓아오던 그를 비틀거리는 봉고 한 대가 치고 갔습니다. 치고 그냥 갔습니다. 인적이 드문 도로였고 그가 유독 좋아하던 길이었습니다.

  저는 똑똑히 봤습니다. 피 흘리고 있는 그 사람. 그리고 봉고차 번호도요. 끝내 잡지 못한 그 자동차 번호를요. 나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내 휴대전화 뒷자리로 잘 쓰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사람은 죽기 전에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했습니다. 나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도와줘. 지금 생각해 보니 명령일 수도 있겠군요. 도와줘!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중요한 건 내가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거죠. 그토록 무서워하던 사자의 이빨은 빠져있었으니까요.


  못 본 척 그를 지나치면서도 나는 두려웠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난 그가 내게 찾아오면 분명 나를 죽이려들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집으로 간 나는 다음날 그의 사망소식을 듣기 전까지 단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하늘에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내게는 해피엔딩이겠죠. 근데 당신도 그걸 원하진 않잖아요. 근데 하나님이란 분도 그걸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 목사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당연히 교회는 초상집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초상을 치르고 있었으니까요. 죽은 사람의 아버지는 예배 집도를 하면서 설교 중에 내가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들만 골라서 하더라고요. 그의 말에 의하면 나는 씻을 수도 없는 죄를 짓고 지옥에 떨어짐이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성경말씀을 거역했어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내가 듣기로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참 많이 했는데 몇 가지 읊어 볼까요? 그가 천국에 갔을 거랍니다. 착하고 재능 많고 해맑던 아이가 그렇게 허망하게 떠난 것은 하나님이 그를 먼저 천국으로 불러들이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죠. 더 웃긴 건 그 목사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아멘을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의 죽음 앞에 감사기도를 드린 나는 뭐가 돼요. 그러면서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을 열거하는데 거기 내가 들어가 있더라고요. 뺑소니를 친 그 차 주인과 다친 아들을 그냥 지나친 사람들에 대해서요. 언젠가 자기가 저지른 죄만큼 꼭 하나님에게서 돌려받게 될 거라고요. 또 웃긴 건 그 목사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아멘을 외치며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거예요.


  잠깐만요. 제가 할 말이 있거든요. 그럼 내가 뭐가 되나요? 죽은 그가 죽음으로 그동안 저지른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으로 가 버리면 남은 내가 뭐가 되나요?


  그 새끼 순 나쁜 새끼예요. 내게 도둑질을 시키고 빼앗은 물건을 함께 쓰기도 했고요. 꽉 막힌 부모님이 싫다며 욕도 많이 했어요. 돈을 뺏어 오게 시키기도 했고 그 돈으로 주일에 오락실도 함께 갔어요. 거짓말도 밥 먹듯이 했고요. 사람을 때리고 침 뱉고 욕하고 무시하고 멸시하고 또 더 할까요? 살아서 회개 한번 안 하고 죽었는데 천국에 갔을 거라고요? 어리니까? 근데 나는요? 그런 그를 만난 이후 늘 당하기만 하고 살아온 나는요? 그가 내게 지은 죄는요? 나는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평생을 살아야 하는데 나는요? 그런 내가 지옥을 가요? 왜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공기가요. 그 무거운 공기가 내 입을 콱 틀어막더란 말입니다. 그 순수한 영혼이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했는데 순수한 영혼으로 이미 확정된 마당에 내 말이 아무 의미가 없을 거란 걸 나도 알기 때문이죠. 내가 목소리를 잃어버린 건 그때부터입니다. 이제야 기억이 나네요. 내가 목소리를 잃은 건 그때부터입니다. 나도 피해자인데요. 내가 입을 닫았습니다.          

  이제 나는 글쓰기를 멈춰도 됩니다. 내가 왜 목소리를 잊었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왜 아직 글을 멈추지 않는 걸까요. 아물어가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걸까요. 이미 죽은 그를 왜 아직도 원망하고 있는 걸까요. 혹시 그런 것들이 궁금하신가요?

  그냥이요. 그 상처가 아물지가 않아서요. 내게 죄를 짓고서는 용서받지도 않고서 천국에 가버린 죽은 그 사람 때문이라고 한다면 대답이 될까요? 

  당신은 그 오랜 시간이 흐르고도 왜 아직도 죽은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냐고. 나를 어리석다며 비난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그는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가 있거든요. 용서를 구하지 않는 상대를 용서할 수는 없죠.     

  피가 철철 흐르는 생채기가 영원히 아물지 않을 것처럼 아직도 쓰려요. 강을 타고 흐르는 지옥의 불처럼 그가 새긴 상처에 딱지가 아물지 못해요. 나는요. 멀쩡히 생활하는 중에도 지난날이 불시로 떠올라 삶을 망쳐놓고 있어요. 사는 게 지옥인데요. 그런데 그가 시켜서 저지른 내 죄는 회개할 수가 없어요. 내가 저지른 죄는 맞지만 나는 회개할 수 없어요.


  교실 안에 모인 아이들이 짐승은 아니잖아요. 사자의 이빨을 가지고 있어도 그 이빨로 누구를 물도록 놔둬선 안 되는 거잖아요. 나는 인간입니다. 원숭이도 멧돼지도 아니고 그보다 더 연약한 무언가인 인간입니다. 그리고 죽은 그도 사자가 아닌 인간입니다. 인격을 가진 인간들이 만나 한 인간에게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천국으로 가버렸습니다. 당신은 남겨진 내 고통을 가벼이 여길 수 있나요?     


  내 글을 읽고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증오심에 사로잡힌 내가 그 고통을 부풀린 걸지도 모른다고.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바르게만 살아야 하는 자신의 굴레에 갇혀 갑갑했을 것이라고. 그가 오히려 더 현실에서 이해받지 못해 외로웠을지도 모른다고. 그 괴로움이 그릇되게 나타났을 뿐이라고.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은요.

  맞는 말일지도 몰라요. 근데 하지 말아요. 내 앞에서는 하지 말아요. 적어도 상처가 시뻘겋게 드러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내 앞에서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그냥 내 목소리를 상상해 주세요. 제발요.

  그가 내게 남기고 간 죄를 절대 내 스스로 회개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설령 그 죄로 인해 지옥에 간다고 할지라도 말이죠. 상관없어요. 나는 천국을 믿지 않은 이후로 지옥도 믿지 않게 됐으니까요. 뭐가 뭔지 이제 나도 모르겠어요.     


  어떤가요. 내 목소리가 상상이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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