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로로 Nov 20. 2024

<소설> 신춘무예 2




  “몽구우우우우스스스스스스스스.”     


  첫 시작으로 생각해 놓은 기합을 외쳐본다. 아무래도 첫 기합이 마음에 걸렸다. 작은 몸집의 몽구스가 스스스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빳빳이 든 코브라와 대결을 펼치기 전 상황에 대한 묘사다. 괜찮은듯하면서도 어딘가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어디가 이상한지 말로 설명이 불가능했다. 나는 그것이 설명이 가능할 때까지 반복적으로 첫 기합을 중얼거렸다.

  첫 기합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말이었다. 첫 기합의 인상이 무예의 전체적인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뒷부분의 무술 구성이 아무리 좋아도 첫 기합이 시원찮으면 그 길로 심사위원들은 눈길을 때 버린다. 고로 시선을 사로잡는 첫 기합은 무예의 필수인 것이다. 무술가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었다.

  원래부터 기합이란 것은 무술에서 중요한 요소에 꼽혔다. 상대방의 기를 제압하고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일에 기합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한때 기합은 자신의 밑천을 드러내고 상대방을 필요 이상으로 도발하여 더욱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에 기합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무술가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역설적으로 기합의 중요성을 강조시키는 사례로 들 만큼 무술에서 첫 기합이 중요하다는 것은 정설이었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전의 무술에선 기합이 무예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기합 그 자체였다. 타핫. 얍. 오오스. 아오. 아뵤. 아자. 라거나 혹은 태권 태극 극진처럼 그 무술의 이름을 힘 있고 간결하게 붙인다거나 하는 정도였다. 몽구우스스스스스라니. 과거에 이따위 기합을 뱉으며 대결에 임했다면 뼈도 못 추리고 상대에게 성대부터 뜯겨 나갔을 거다. 하지만 대세에 따르자면 어쩔 수 없다. 대세에 따라 기합소리가 재미있느냐 창의적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관심을 쏟다 보면 어느새 본질은 다 날아가 버리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들 그런다. 변명하자는 게 아니라 흐름이 그런 거다. 나 따위 무술가 지망생이 뭘 어쩌겠는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그렇게 정해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그냥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제도권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도권의 규칙을 존중해야 한다. 생각이 이렇게까지 미치기까지 나는 무려 십 년이라는 시간을 갈아 넣어야 했다. 한 해에 수십 번이 넘게 무예의 쓴맛 신맛 짠맛 분노의 매운맛을 봐야 했다. 단맛 빼고는 다 맛봤다. 그러고 나서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이다. 단맛을 보려면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잘 따라야 한다고. 올해 나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들이 정해놓은 규칙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기필코 빌어먹을 신춘무예를 통과해서 꼭 무술가가 될 거다.          


  학교 운동장은 수련하기에 너무 눈에 띄는 장소가 됐다. 삼삼오오 모여서 무예 수련을 하던 아이들이 있는 풍경은 고릿적 이야기가 됐다. 하라면 할 수도 있지만, 축구며 농구를 하는 아이들에게서 괜한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무술가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운동장에서 사라진 무술가들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올라왔다.     

  과거. 그러니까 무술가 협회가 없던 시절엔 무도에 뜻을 품은 자가 곧 무술가였다. 그들은 각자의 무예로 자신의 명성을 떨쳤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문파를 만들었고 어떤 이는 권력을 쟁취했으며 어떤 이는 그에 맞서 싸웠고 어떤 이는 세상을 돕고 어떤 이는 세상을 괴롭혔다. 강함을 추구하던 사람들이었으니 그들의 주변에는 항상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그 점이 멋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지켜내기도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꺾어야 하고 승패를 통해 명성을 쌓아가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인류의 시작과 동시에 무술가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힘은 살아감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고 극한의 단련으로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만이 자기 뜻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진짜 무술이다.


  그런 전성기의 끝을 나는 총의 발명부터라고 봤다. 총은 다른 차원의 물건이었다.

  무술가가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잡은 도구는 실로 다양하다. 주먹, 단도, 태도, 봉, 창, 표창, 도끼, 망치 활과 화살까지.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더 강해지는 법을 끊임없이 연구했고 수련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 어떤 무기들이 나타나도 무술가는 해법을 찾고 그것을 뛰어넘는 강인함을 이뤄냈다. 하지만 총은 달랐다. 무술가가 자기 근육을 아무리 단련해도, 아무리 빠른 움직임을 보여도 총알을 감당할 순 없었다.


  지금의 무술은 그냥 건강을 위한 운동과 비슷해졌다. 사격술 같은 말을 써가며 총도 무술의 하나로 집어넣으려는 사람도 있지만, 범위를 그런 식으로 넓히는 건 옳지 않다. 그렇게 치면 칼보다 강한 펜도 펜술이라 부르며 무술의 하나로 집어넣어도 상관없는 일이 되니까 말이다. 수십 년 수련한 무술가가 총을 가진 어린아이에게 죽을 수도 있다. 그건 무술이 아니다. 무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무술이 세상의 룰을 만들던 시절은 총의 등장으로 끝을 맞이했다. 끝남과 동시에 무술은 세상 안에 자신들만의 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들은 연합을 만들었고 무술가라는 업을 지켜나가기 위해 애썼다. 태초부터 시작된 무술가의 자부심이 끊어지지 않길 원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나 무술가로 불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무술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들의 룰은 더 복잡해져만 갔다. 그 복잡함의 결정체가 신춘무예였다. 신춘무예에서 인정받은 무술가만이 무술가로 불릴 자격을 갖게 됐다.          


  신춘무예는 신년 벽두에 새로운 무술가를 뽑는 행사로, 우리나라에만 유일하게 있는 무예 신인의 등용문이다. 문파들마다 많게는 수천 명 적게는 수백 명의 무술가 지망생들이 몰리지만 그중에 영예를 얻게 되는 건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 한 사람만이 1월 1일에 자신의 무술을 세상에 시연할 수 있다.

 -시사상식사전. 네이버 발췌     


  지금은 무예의 열기가 많이 죽었다지만 예전에는 그 위상이 대단했다. 수많은 사람이 도전했고 새해가 되면 구름같이 몰려 새롭게 뽑힌 무술가의 무예를 지켜봤다. 그 자체가 온 국민의 즐길 거리였다. 그때 당시만 해도 장래희망 란에 무술가를 적는 아이도 많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무예소년 소녀들이 땀을 흘려가며 어설프게 무술가의 무예를 따라 하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 중의 하나였다. 나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마음에 드는 이성의 눈에 띄기에도 무예는 괜찮은 방법이었다. 나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던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나는 명성이 자자한 무술가가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때 무예 동아리에서 만났던 첫사랑 소녀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난 천하제일 무술가가 될 거야. 신춘무예에서 우승하면 미선이 너 이름 크게 말할게. 넌 내가 무술 하게 된 이유니까.”


  삶 중에 문득 그 말이 기억날 때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동시에 벽을 쳤다. 혹은 이불을 걷어차거나. 바닥에 침을 뱉거나. 그도 안 되면 가슴을 쳤다.          


  “나는 강한 남자가 좋아.”


  소녀의 말이 내가 무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그리고 그 말을 했던 소녀. 소녀는 멀리 떠나갔다. 그러니까 소녀는 돌아올 수도 있는 곳이지만 돌아온대도 예전 같지는 않을 먼 곳인 건 분명한 곳으로 가버렸다.

  시집갔다. 그리고 이제는 소녀도 아니다. 미선이는 시집가서 벌써 애가 둘이다. 첫째는 하은이. 둘째는 하율이. 남편은 중학교 선생님. 남편이 잘생긴 건 모르겠고 착할 것 같다. 정교사니까 안정적이겠지. 여기저기 인터넷에 미선이가 남겨 둔 자취 덕에 소식은 어제 만난 친구처럼 잘 알고 있다. 물론 미선이와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연락한 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럼에도 잊지 못하는 건 그때 약속했던 말 때문이었다. 가장 순수했고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아무 걱정 없이 몰입했고 그래서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건 미선이 아니라 미선을 보며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이루기 위해 애썼던 내 시간이었다.

     

  “난 무술가로 천하제일이 될 거야. 신춘무예에서 우승하면 미선이 너 이름 크게 말할게. 넌 내가 무술 하게 된 이유니까.”


  순수했던 다짐의 대부분은 실패를 확정 지었다. 무술가는 이제 천하제일일 수도 없고 이름을 크게 불러도 들을 사람도 없다. 무술 하게 된 이유도 상관이 없어져 버렸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많은 것이 변했다. 그 사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태어났다. 열정 가득했던 그 말이 싸늘하게 식은 주검이 되어 있음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있었다. 아직 희미하게 피가 도는 한 부분이 있다. 신춘무예의 우승. 나의 다짐이 새빨간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몽구우우우우스스스스스스스스.”     

이전 27화 <소설> 신춘무예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