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로로 Nov 25. 2024

<소설> 신춘무예 3 完



◆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다가 북한산 둘레길 안쪽으로 나 있는 쪽 길을 발견했다.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수련하기 좋은 공간이 있었다. 집에서 조금 멀긴 했지만 방해받을 염려가 없는 좋은 장소였다. 무예를 짜기 전에 팔 굽혀 펴기와 뜀뛰기로 몸에 열을 올렸다. 무예의 기본이다. 이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이 습관을 진짜 습관으로 만들게 된 건 더 짧은 시간이었다. 한 시간 정도 몸을 예열 한 뒤에 본격적인 무예에 들어갔다.


  목숨을 걸고 사냥하는 절박함. 생존과 직결된 사냥. 패배는 곧 죽음을 상징하는 전투. 몽구스와 코브라. 코브라와 몽구스.

  공격전에 뒤로 두 발 물러서며 신중을 기한다. 빠른 속도로 턱밑을 파고들며 손바닥으로 위로 올려친다. 곧바로 팔꿈치로 공격을 가한 다음 옆으로 발을 뻗어 측면으로 돌아들어 간다. 자세를 가다듬고 따라 들어오는 상대의 반대편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흩뿌려지는 독의 거리를 계산해 거리를 벌린다. 막무가내 공격보다는 신중을 기하는 한방 한방으로 조금씩 코브라의 체력을 갉아먹는다.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몸을 돌리는 상대가 반동의 영향으로 속도가 줄어들었을 때를 이용해 빠르게 접근하여 머리를 가격한다. 다시 등 뒤로 돌아서서 목을 노리고 당수를 휘두른다.


  “타핫.”


  기합을 내뱉었을 때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북한산 둘레길을 걷는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노년에 가까운 중년 남자였다.     


  “힘이 아주 좋구먼. 근데 속도가 그에 비해서 좀 느려. 공격이 이뤄지기 전에 예비 동작들이 많아서 체력소모가 아주 심하겠어. 기본이 탄탄해야 마무리까지 잘 소화할 것 같은데.”


  무예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충고였다. 어설퍼 보이는 차림에도 어딘가 모르게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런가요? 아직 연습하는 중인데 쉽지가 않네요. 혹시 무술가신가요?”

  “무술가는 무슨. 그냥 취미 삼아 운동하는 사람이지. 자네 신춘무예 준비하나?”

  “예. 한창 연습 중에 있습니다.”

  “뭐 입 아프게 하는 말이지만 무예에서 제일 중요한 건 말 안 해도 알지? 다른 사람의 무예를 많이 봐야 해. 그래야 상대방의 허점에서 더 나은 부분을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지. 둘째는 동작을 소화 시킬 만큼 많이 연습하는 것이고 셋째는 힘과 체력 속도와 같은 기본을 갖추는 거지.”

  “예 열심히 해야죠. 근데 신춘무예는 그것만 가지고 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운도 좀 필요한 것 같고.”

  “실력 없는 인간들이나 그따위 소릴 지껄인단 말이야. 그래도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닌 거야. 무예란 게 강해지는 게 목적 아닌가. 강하려면 위에 세 가지는 철칙이지. 무조건이야. 무조건.”

  “잘 모르겠어요. 저도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우승자를 보면 잘 모르겠단 말이죠.”

  “그 생각이 위험한 거야. 왜 우승했는지 그 면모를 봐야지. 차분히 파고들면 다 이유가 있다고. 잔소리같이 들리겠지만, 기본에 좀 더 충실하게. 그냥 지나쳐도 되는데 꼭 나 젊었을 때 보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기본이 제일 중요해.”

  “예 어르신. 명심하겠습니다. 저 어르신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일없네. 정진하시게. 나는 잔소리 그만하고 물러가네.”     


  무예의 기본. 그 기본이란 것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지 정확한 수치를 알 수는 없지만, 고작 기본을 갖추기 위해서 먹어야 할 마음과 들여야 할 시간은 인생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보통의 사람들이 보통의 대기업에서 일하며 보통의 2000cc 자가용과 보통의 32평 아파트에서 자녀 둘을 키우며 사는 것과 같았다. 말하자면 기본을 갖추기 위해선 인생을 걸어야 한다는 소리다. 삶이 그렇듯 무예라고 다르지 않았다.

  기본에 대한 생각은 콤플렉스로 남아서 떠오를 때마다 나를 괴롭혀왔다. 무예를 시연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애쓴다고 애쓸수록 기본은 괴물처럼 커져만 갔다. 무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생에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연애, 결혼, 가족, 생계, 교우관계, 어른의 세계에 발을 딛기 위해선 치러야 할 값이 항상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내 사정에는 관심도 없는 기본이란 녀석은 끊임없이 내게 요구했다.


  기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인생의 균형을 포기해야 했다. 결국, 거기에 연애와 결혼 직장과 돈벌이를 위해 쌓아야 할 노력을 몽땅 갈아 넣었다. 그런데 그 발광을 하고서 오늘 또 그 말을 듣고 말았다. 눈앞에 기본이란 녀석이 거대한 코브라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총총히 내려가는 중년의 아저씨에게 돌이라도 던지고 싶었다. 황망한 마음에 의욕도 나지 않아서 주저앉았다. 눈물이 조금 났다. 사실은 많이 났다. 엉엉 소리도 조금 냈다. 그러고 났더니 예열되어 있던 몸이 식어서 조금 추웠다.     


◆     


  성탄절을 기점으로 각 문파는 무술가 지망생을 위해 문을 열어둔다. 무술가 지망생들은 1년간 갈고닦은 무예를 선보이기 위해 문파의 앞으로 모여든다. 많게는 수천 적게는 수백의 사람이 몰린다. 신춘무예를 준비하고서부터는 제대로 성탄절을 즐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문파 앞에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이 심사위원들은 새해가 가기 전에 단 한 사람을 문파의 대표로 세워야 한다. 모두의 무예를 세세히 보기에는 빠듯한 시간이다. 첫 기합이 중요해진 가장 큰 이유였다.

  수십 번 옷매무시를 고쳤다. 칼같이 다린 도복에 얼룩이 묻지는 않았는지 살피고 또 살폈다. 이 또한 기본이었다. 흐트러진 옷차림. 도복의 얼룩 하나만으로도 탈락의 여지는 충분했다. 첫인상에서 심사위원의 눈이 떨어져서 허공에 몸부림만 치고 내려오는 사람을 숱하게 봤다. 그리고 그런 경험도 있었다.

  문파 앞에 모인 사람은 어림잡아 천여 명은 되는 것 같았다. 신춘무예의 인기가 식었다고 해도 이 정도의 사람은 항상 줄을 섰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 나는 벌써 십 년 넘게 신춘무예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무예를 완성하고 문파 앞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일은 항상 떨리면서도 흥분됐다. 어쩌면 이 맛에 아직 무예를 놓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신춘무예의 문이 열렸고 사람들은 차례로 단상에 올라 심사위원의 시야에 들었다. 열 명 스무 명씩 무더기로 단상에 올랐다. 그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음 무대를 위해 준비를 했다. 비 내리듯이 주르륵 떨어졌다. 누구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탈락했다고 해서 광탈이라 불렀다. 그야말로 광탈의 향연이었다. 놀러 왔던 사람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더러는 소리치고 항의하며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운이 좋았던지 어쨌는지 예심은 붙어서 살아남았다. 꽤 많은 사람이 줄어들었다. 심사위원들의 눈도 처음과는 달리 퀭한 빛이 돌았다.     


  본심에 올랐다. 내 차례가 왔다. 여기 이곳이 승부처였다. 최종심이야말로 확률의 정점이었다. 적어도 기본은 된다는 소리와 같았다. 거기까지만 이라도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올라오니 욕심이 났다. 나는 마지막 심사를 위해 그간 갈고닦은 초식을 되짚었다. 최종심에서는 특별히 별일이 없다면 준비해 온 자신의 무예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보여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다 보면 내친김에 우승해서 1월 1일 단독 시연을 하는 것도 헛된 욕심은 아니었다. 그 욕심을 위해 보낸 시간이 길었다. 나는 초식을 전개했다.     

  “몽구우우우우스스스스스스스스.”     



◆     



  문파의 소식지에 우승자의 이름이 인쇄됐다. 김희연. 그리고 최종심사까지 올랐던 사람들의 명단도 함께 적어줬다. 드물게 친절한 문파였다. 내 이름과 내 무예 몽구우우우우스스스스스스스스도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제목이 새삼 부끄러웠다. 올해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1월 1일 아침 올해 당선된 신춘무예의 시연이 열린다. 관심이 있던 사람들은 문파의 앞으로 가서 새롭게 탄생한 신인 무술가의 무예 시연을 본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적 폐 청 산!


  정권 지르기로 시작한 그녀의 무예는 동네 싸움으로 변했다가 고양이자세를 취하며 쥐를 공격하는 고양이처럼 귀엽게 달려들었다. 최근 들어 뽑힌 무예에는 유독 고양이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번 무예도 고양이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쥐를 때려잡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녀의 도복을 조인 노란색 띠가 매어진 모양이었다. 콘셉트가 아니라면 완전히 틀린 방식이었다. 심사위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거나 아랑곳하지 않았거나. 어찌 됐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녀의 무예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지는 않았다. 쥐가 퍼트리는 바이러스에 비틀거리다 이내 다시 날카롭게 세운 단도를 꺼내 들고 빠른 속도로 휘두른다. 뒤돌아 한 바퀴를 회전하고서 왼손의 단도로 허공을 휘두르고 오른손의 단도를 날려 준비된 과녁을 향해 날렸다. 힘이 부족했는지 꽂히지는 않았다. 팔랑 거리는 것이 무예인지 춤인지 헷갈렸다. 그 정도였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외침으로 힘차게 무예를 마무리했다. 그 뻔뻔함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외침.


  독 재 타 도!     


  신인 무술가의 무예 시연이 끝나고 그녀를 최종적으로 선발한 심사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일전에 내게 기본을 말했던 노인이었다. 북한산을 떠돌던 중년에 가까운 노인이 심사위원일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적극적인 구애를 해 볼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등산복 대신에 도복을 갖춰 입으니 확실히 무술가의 풍모가 보였다.     


  요즘 보기 드문 시대정신입니다. (당연하지 지나간 시대의 정신이니까 보기 드물지) 신인다운 패기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신인다운 거랑 띠 매는 방식을 틀린 거랑 같다고 봐도 되나?) 하지만 저는 이번 무예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대체 무슨?) 무엇보다도 부드러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날카로움이 돋보였고(내가 볼 때는 그냥 발레 같았는데) 이 험난하고 참담한 시대에 꼭 필요한 저항정신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예의 존재 이유입니다. (험난한 세상에 맞서는데 목젖이 노출돼서 정권 한방이면 무예가 무너지는 건 어떻게 해명할 거야?) 투철하게 무장한 신인 무술가에게 무운을 빌고 싶습니다. (지랄)     


  신인 무술가의 감격스러운 소감이 이어졌고 심심하게 터져 나오는 박수 속에 나는 구석진 곳에 자리 잡아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으며 자폐증 환자처럼 중얼거렸다. 차분하게 신춘무예 시연회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혼자 배가 아파서 열등감이 폭발해 죽어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