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엄마의 두 번째 학교

아이들이 보여준 진짜 적응기

by voyager 은애




해외에서 살아간다고 할 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이들의 적응이다.


첫째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 3월까지 다녔다. 알래스카로 가기 위한 비자는 금방 나올 줄 알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는 아이들이 알래스카에 가서 가장 먼저 부딪힐 문제는 영어일 거라고 생각했다.


영어는 미리 준비해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여러 방법을 고민한 끝에 체계적인 스피킹 중심의 영어 학원을 선택했다. 첫째를 설득해 겨우 학원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딸은 학원 가는 것을 싫어했다. 친한 친구도 없었고, 같은 반 남자아이들의 장난이 심했기 때문이다. 점점 딸을 설득해 매일 학원에 보내는 일이 버겁고 지치는 일이 되어 갔다.

딸은 단호히 말했다. 영어도 싫고, 학원도 싫다고. 자기는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암기를 정말 싫어했다. 결국, 4개월 만에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둘째는 유치원에서 알파벳을 배우고, 초등학교 2학년 초까지 한국에서 다녔다. 따로 영어공부를 시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알래스카에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보다 부모가 영어 때문에 더 힘들 거예요"라고 말했지만, 그땐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현지 학교에 등교한 지 이틀째 밤, 첫째가 펑펑 울었다. 아무도 자기에게 말을 걸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선생님과 친구들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다.

우리가 선택한 학교는 알래스카 원주민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ESL(영어 보조 교육) 과정도 없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그 가시덤불 같은 시간을 묵묵히 견뎌냈다.


이곳에 와서야 나는 딸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첫째는 모든 일에 열정이 많고, 뭐든지 잘하고 싶어 하는 아이였다. 1년의 적응기를 지나, 5학년이 되면서부터 학교에서 열리는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스펠링 비(spelling bee) 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그게 뭐야?”

나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들어보니, 단어철자 외우기 대회였다. 단어 목록을 받아 외운 후, 선생님이 불러주는 단어의 철자를 말하는 방식이었다.

대회가 어떤 건지 몰라, 지인의 추천으로 영화 《아키라 앤 더 비(Akeelah and the Bee)》를 보며 감을 잡았다. 딸은 단어 목록을 받아온 날부터 스스로 외우기 시작하더니, 나에게 단어를 불러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실전처럼 연습을 했다.


첫 스펠링 비 대회가 열렸다. 놀랍게도 딸은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캐치캔 학군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알래스카 시골섬, 경쟁 없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종종 생각했다.

"한국 아이들이 여기 오면 전교 1등은 다 할꺼야.“

학군 대회에서 초등학교 대표들과 중학교 대표가 함께 겨루었다. 아이들은 번호표를 달고 차례로 나와, 마이크 앞에서 단어를 스펠링 했다. 내가 하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만약에 딸이 거기서 1등을 한다면 이 초등학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너무 자만한 것일까. 아주 작은 실수로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다음 해, 딸은 또 한 번 학교 대표로 선발되었다. 이번엔 엄마가 철저히 준비시킨 백인 남자아이와 30분 동안 둘이서 대결을 벌였다. 아쉽게도 마지막 단어에서 실수해 탈락했지만, 나는 확실히 느꼈다. 집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아이와, 한국어만 쓰는 우리 아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가 지켜온 가정의 기준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학교 대표로 뽑힌 아이는 온라인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받으면 앵커리지에서 열리는 알래스카 주 대회(State)에 참가할 수 있었다. 앵커리지는 우리 섬에서 비행기로 5시간 거리이다. 대신 학생 비행기표와 부모 한 명 비행기표를 제공해 준다고 했다.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3주 안에 거의 만개가 되는 단어를 외워야 했다. 결국, 포기하고 내년에 조금 더 준비된 마음으로 다시 도전해보자고 했다.

6학년이 되자 대회 기준이 바뀌어 학교에서 1등만 해도 주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비행기표는 더 이상 지원되지 않았다. 게다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분량의 단어를 외워야 했다. 다시 다음 기회로^^



스펠링 비





이후 '배틀 어브 더 북스(Battle of the Books)'라는 대회가 열렸다.

둘째도 함께 참가했다. 3명이 한 팀을 이뤄 정해진 책을 읽고 퀴즈를 푸는 방식이었다. 어릴 때 교회에서 했던 성경퀴즈가 떠올랐다.


아이들은 각각 발표자, 작성자, 내용확인자로 역할을 나눴지만, 결국 모든 팀원이 책을 열심히 읽어야 승산이 있었다. 첫째 팀은 또다시 학교 대표로 선발되었다. 학군 대회에서 이기면 알래스카 주(State) 대회로 올라가게 된다. 나는 경쟁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되는 걸 선호했다. 그래서였을까, 다행히(?) 좋은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battle of the books



매년 새로운 학교 행사에 아이들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처음엔 나도 아이들도 모르는 것 투성이었지만, 이제는 아이들이 알아서 잘 해내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첫째는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마치 대학생처럼 자기 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녔다. 가끔 상상해 본다.

내가 그렇게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한 교실에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산만했을 수도 있지만, 나름 재미있었을지도. 그래도 난 여전히 한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편하긴 하다.

학교에서 선택해서 할 수 있는 배구, 크로스컨트리, 레슬링, 농구 같은 스포츠 활동을 보며 생각한다.

"달리기를 워낙 못하는 나에겐, 팀 스포츠 없는 학창 시절이 다행이었네."

혼자 괜스레 웃음이 난다.


알래스카 시골섬에서의 경쟁 없는 학교 생활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경험하느냐는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학교에 처음 다녀온 날 밤, 펑펑 울던 아이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씩씩하게 학교 생활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그저 감사할 뿐이다.


아이의 적응은 도전이자 선물이었다.

낯선 땅에서 함께 성장하며, 부모 역시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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