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땡큐 그리고 멘붕

알래스카 스몰톡 생존기

by voyager 은애




" 한국에서 바로 이 섬으로 왔다고요?"


내가 이곳에 온 뒤 가장 자주 들었던 질문이다.


섬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이들은 외부인에게 쉽게 마음 문을 열지 않는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이 섬에서 오랫동안 살 사람인지를 확인한 후에 서서히 마음을 연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눈이 동그래지면서 깜짝 놀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놀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서, 혹은 다른 주에서 알래스카로, 그것도 보통은 단기 체류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에서 곧장 알래스카 시골섬으로 이사 온 사람'은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어쨌든 나는 무식하고 용감하게 이곳에 왔다.


내가 처음 이곳으로 오겠다고 결심했을 때, 단순히 '미국에 간다'는 생각보다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과 친구가 되고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문화와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했기에 문화적응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곳에 살아보니, 그들과 우리의 정서는 많이 닮아 있었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익숙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줬다.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상처도 함께 있었다.


알래스카가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면서 하이다(Haida), 심시언(Tsimshian), 클링깃(Tlingit) 등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언어는 점차 사라져 갔다. 이제 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다행히 최근에는 학교와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원주민 언어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직 희망이 있다'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어는 이곳 아이들에게 더 익숙한 모국어가 되어 있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주제로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는 늘 고민이다.

시골의 특성일까. 이곳에서는 길을 걷다가도 모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고 “Hello!” 하며 인사한다.

"Hello, how are you?"는 일상적인 인사다.

그때 학교에서 배웠던 문장,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교과서처럼 답한다면 정말 어색한 것이다.

이곳에서 “How are you?”는 상대의 상태를 진심으로 묻는다기보다는 ‘우리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 같은 말이다. 그냥 “Good. How about you?” 하고 웃으며 지나가면 된다. 처음에는 그렇게 말하고 지나가는 게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되었다.


알래스카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한 스몰톡(Small talk) 문화가 존재한다.

상점 줄에서, 주차장에서, 병원 대기실에서조차, 이곳 사람들은 늘 대화를 시작한다. 대부분 가벼운 이야기다. 날씨, 음식, 오늘 하루, 애완동물, 아이들 애기, 최근 본 영화까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치, 종교, 돈 이야기는 금기다.

처음에는 그런 가벼운 대화들이 낯설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어쩌면 나에게도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알래스카의 날씨는 스몰톡 대화 소재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언어였다.

점점 영어라는 언어의 벽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만나서 스몰톡을 하는 것도 피곤해졌다.

처음에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 웃으며 넘길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 자신에게 기대치가 생겼다. '이제는 영어로 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압박. 영어 실력은 내가 생각한 만큼 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어려웠다. 어느 날은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는데 중압감이 너무 심해 무언가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 친구 엄마와 이야기하고 오면, '내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 문장은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이었어.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라며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속상하고 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아이들 영어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부모인 내가 영어 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오랜 시간 한국에서 한국말만 하고 살다가 영어권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도전이었다.

결혼 전에 여러 나라를 여행했기에 괜찮을 줄 알았지만, 여행과 삶은 정말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살아야 했고, 말을 해야 했다. 언어는 문화를 담고 있었기에 나는 날마다 충돌하고 부딪히며 배우는 중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올리버선생님'의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한국인들이 충격 먹는다는 미국의 인사 문화, 대체 왜 그럴까?> 이 영상에서 나는 '스몰톡'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다문화 국가다. 개척 시대에는 낯선 사람과 마주쳤을 때 먼저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 같은 말을 건네는 것이 "나는 위협적인 사람이 아닙니다'라는 신호였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고, 그 문화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군가와 짧은 대화를 나누면, 다음에는 조금 더 가까워지길 기대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어제 웃으며 인사를 나눈 사람도 오늘은 눈만 마주치고 지나갈 수 있다. 그건 무례함이 아니다. 그냥 스몰톡일 뿐이다.

한 댓글에서 본 문장이 기억난다.


“상대가 open일지 close일지 모르니까, 어제 친하게 대화했더라도 오늘은 눈만 마주치고 가볍게 끄덕이는 게 적당하다.”


처음에는 그 거리감이 낯설고 서운했다. 하지만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식의 거리 두기조차 하나의 문화이자 예의였다.

'전체 안의 나'를 보는 동양의 문화와 '독립된 나'를 중시하는 서양의 문화는, 생각보다 많은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 차이를 부정하거나 바꾸려 하기보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나는 어제 나눈 대화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도 내가 이곳에서 잘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의 성향과는 다르지만,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습이 이곳에서의 삶을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며 배운다는 건, 결국 나를 확장하는 시간이다.

낯설고 어려운 순간들이 쌓여 어느새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 불편함 속에서 진짜 배움이 일어난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훨씬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알래스카 시골섬을 걷는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날씨 이야기를 꺼내고 웃는다. 어쩌면 이 작고 가벼운 말들 안에, 서로를 향한 따뜻한 의도가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낯설고 특별한 시간은, 분명 내게 주어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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