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를 품은 섬마을 아이들의 특별한 하루
첫째 아이가 이곳 알래스카 시골섬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어느새 6학년이 되어 학교 생활에 여유가 생긴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처음에는 말도 잘 통하지 않아 눈물을 흘리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등굣길을 함께 하는 모습이 낯설 정도다.
아이에게 특별한 친구들이 생긴 것도 큰 변화였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홀리,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케일리와 단짝이 되어 늘 셋이 어울린다. 특히 홀리는 나에게 다가와 혼자 연습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거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매운 떡볶이에 도전하고, 라면과 김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어느 날, 첫째가 말했다.
"6학년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어요."
그 말에 홀리와 케일리도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셋은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에 가장 오래 살았고 문화를 잘 아는 나도 엄마로서 조언을 보탰다. 어떤 주제가 좋을지, 어떤 음식을 소개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했다. 아이들이 한국 음식도 좋아한다고 했다. 여기는 의외로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이 많다. 게다가 이미 첫째가 들고 간 도시락을 통해 한국 음식을 많이 맛본지라 새로운 메뉴가 필요했다. 고민 끝에 잡채를 만들기로 했다.
드디어 문화 체험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잡채를 만들었다. 내가 한글로 이름 쓰기 코너를 맡았기에 한복과 학습자료, 코너별 소품까지 바리바리 챙겨 학교로 향했다.
이곳의 6학년은 두 반으로 나뉘어 오전과 오후에 각각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라 한 교실에 모두다 모였다.
8시 45분, 아이들이 교실로 하나둘 들어오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사과를 먹는 아이, 껌을 씹는 아이, 사탕을 나누는 아이들... 한국의 교실과는 다른 풍경이 아직도 낯설다.
9시 정각, 체험이 시작되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파워포인트로 한국에 대해 배우기
2. 한국 관련 퀴즈 (상품 : 한국에서 온 꿈틀이 잴리)
3. 네 개의 체험 세션
한복 입어보기
케이팝 체험
한글로 이름 써 보기
전통놀이 (제기차기, 화살 던지기)
4. 전통 놀이 시합, 가장 많이 넣은 사람에게 선물 주기
5. 마지막으로 한국 음식 체험(잡채 시식)
첫째가 전날 밤 급히 만든 파워포인트였지만, 설명도 또박또박 잘했고 아이들도 놀랍도록 집중해서 들었다. 퀴즈 시간이 되자 각자 태블릿으로 동시 접속해서 참여했다. 세상 좋다^^ 가장 많이 맞춘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고 하니,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 생각에 ' 저 질문은 너무 어려운데...'라는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각자 답을 찍었다. 한 문제, 한 문제 정답이 발표될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예상보다 큰 호응이었다.
이후 네 개의 세션으로 나누어서 한국 문화 체험이 시작되었다.
내가 맡은 코너는 '한글로 이름 써 보기'였다.
아이들이 자신의 영어 이름을 말하면 내가 한글로 써 주고, 그걸 따라 종이에 적어보는 활동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한글을 잘 따라 써서 깜짝 놀랐다. 글자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신기해하는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전통 놀이 코너에서는 제기차기와 화살 던지기를 했다. 먼저 고등학교 트랙 코치인 6학년 선생님이 제기차기에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제기차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함께 뛰며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잡채는 대성공이었다. 아이들이 한 입 먹고 "맛있다!"며 더 달라고 손을 들었지만, 다음 순서를 위해 한번만 먹는 것으로 했다. 아쉬운 건 내가 한글 이름 코너를 담당하느라 케이팝을 가르치는 홀리와 한복을 소개하는 케일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한 점이다.
1시간 30분간 진행된 모든 프로그램은 알차게 마무리되었다. 졸업을 앞둔 6학년 아이들에게 낯설지만 흥미로운 한국 문화를 소개할 수 있어 의미 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진행한 첫째와 친구들이 참 대견했다.
서로의 다름을 알아가고 직접 경험해 보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 이해와 존중에서부터 진짜 연결이 시작된다.
알래스카의 작은 시골섬에서 한국 문화를 나누며, 아이들과 나는 서로의 세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멀고 낯선 땅에서도 문화는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오늘의 짧지만 따뜻했던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반짝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