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서로 다른 얼굴
“귀하의 비자 연장 절차를 위해 지문 채취(biometrics)가 필요합니다.
아래 명시된 일정에 따라 앵커리지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러운 통보였다.
우리는 알래스카로 오기 위해 비자를 신청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비자 진행이 멈춰 한국에 1년 반 머물러야 했다. 이후 어렵게 알래스카에 입국했을 때 받은 채류 기간은 고작 1년. 그 시간이 벌써 지나갔다는 뜻이었다. 변호사를 통해 연장 서류는 제출했지만 '지문을 찍어야 한다'는 요구는 처음 듣는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사는 섬에서 앵커리지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이다. 그런데 통보는 겨우 일주일을 남기고 도착했고, 항공료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우여곡절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앵커리지로 향했다.
알래스카 에어라인은 알래스카 내 독점 항공사다. 직항은 없고 여러 섬을 거쳐가는 '완행열차'같은 비행기였다. 기내식은 제공되지 않기에 김밥과 과자를 넉넉히 준비했다.
아이들은 앵커리지에 있는 한인 마트에서 한국 과자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캐치캔에서 시트카(Sitka)에 착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을 머문 후 또다시 이륙해서 그다음 섬인 피더드버그(Petersburg)로 갔다.
마지막 섬에 착륙했을 때, 사람들이 대부분 다 내리고 별로 없었다. 갑자기 파란 모자를 쓴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청소기를 밀며 청소를 시작했다. 승객들이 비행기 안에 앉아있었음에도 청소하는 그 광경이 너무 낯설었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났다.
그렇게 완행 비행기의 독특한 경험을 하며 밤 10시 30분,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다. 앵커리지는 알래스카에서 제일 큰 도시이고 한인인구가 가장 많다.
공항 로비에 커다란 무스 조형물이 우리를 반겼다. 그 앞에서 신나게 인증숏을 찍었다. 밖으로 나오자 밤 10시 30분인데도 대낮처럼 환했다. 바로 알래스카의 백야였다.
다음날 앵커리지 야생 동물 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우리가 머문 곳에서 꽤 먼 거리였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고 우리를 맞아주셨던 분이 데리고 가 주었다. 야생동물 보호 센터로 가는 길에 보는 풍경은 캐치캔과는 또 다른, 그야말로 새로운 맛이었다.
알래스카 야생동물 보호센터(Alaska Wildlife Conservation Center)는 다치거나 야생에서 생존이 어려운 동물들을 보호하는 공간이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다. 바람은 다소 거셌지만,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동물들을 관찰했다.
그다음 날, 드디어 비자 연장을 위한 지문 찍는 미션을 완료하고 알래스카 최대 박물관인 앵커리지 박물관(Anchorage Museum)으로 향했다.
1968년 알래스카 미국 편입 100주년을 기념해 설립된 이 박물관은 35만여 점의 사진 자료와 수많은 유물, 회화, 과학 전시물로 알래스카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2층 전시실에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생활사부터 러시아 이주민의 흔적, 제2차 세계대전, 미국 편입 이후의 발전상까지 1만 년 역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과학 전시관에는 오로라, 화산, 해양생물 등이 소개되었고,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특별 영상관에서는 알래스카의 자연을 담은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시원하고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본 영상은 그야말로 경이로웠다.
알래스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새삼 느꼈다.
지금까지 알래스카 최 남단에 있는 섬에 산다고 이렇게 큰 알래스카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하나님의 작품인 이 알래스카 땅이 너무나 아름답고 놀라웠다.
그렇게 조금씩 더 알래스카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현지인이 추천한 맛집 Moose’s Tooth에서 피자를 먹고, 마지막 미션인 한인 마트 방문! 한국 과자와 식재료를 카트에 가득 담으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트는 작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친숙한 음식들이 주는 위안은 컸다.
이렇게 앵커리지 여행은 의무감으로 떠났지만 만남과 감동이 있었고, 무엇보다 섬에서 살아가던 우리에게 환기가 되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시야가 넓어지는 귀한 여정이었다.
돌아오는 길, 다시 무스 앞에서 인증숏!
이렇게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이 마무리된다.
앵커리지는 알래스카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진짜 행정수도는 우리가 비행을 마치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주한 도시, 주노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조용한 도시가 수도일까?" 싶었지만, 주노는 마치 단정한 정장을 입은 도시 같았다. 크진 않지만 단단하고, 군더더기 없이 조용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그런 느낌.
행정 수도인 만큼 우리가 주민 번호(SSN)를 받기 위해서는 주노로 가야 했다.
이 도시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퍼지는 빙하의 찬 기운이 인상적이었다.
도시의 크기나 인구는 앵커리지에 비할 수 없지만, 뭔가 짜임새 있는 이 도시의 분위기엔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앵커리지와 주노 사이에는 연결된 육로가 없다. 워낙 산세가 험하고, 인도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로로는 닿을 수 없는 도시이기에 산과 바다, 빙하가 막아선 이 고요한 수도는 알래스카 특유의 고립감 속에서 오히려 정세성을 더 또렷이 드러내는 것 같았다.
"주노는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길 만큼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도시"라고 누군가는 말하기도 했다. 주노 인근에는 38개의 빙하가 펼쳐져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멘델홀 빙하를 보러 갔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점점 더 차분해졌고, 어느새 마음도 그 풍경을 따라 조용해졌다. 비수기라 관광객도 드물어, 마치 빙하가 우리 가족만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푸른빛의 얼음 덩어리는 말없이 그 자리에 웅크려 있었고,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빙하수 폭포는 마치 알래스카가 들려주는 자연의 심장소리 같았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비로소 "아, 내가 지금 알래스카에 있구나" 실감이 났다. 이 빙하를 보기 위해 1년에 사십만 명의 관광객이 주노를 찾는다고 한다.
이 거대한 빙하의 조각은, 수천 년 전 북쪽 산맥에서 천천히 밀려 내려왔다. 그러나 그 무게로 천천히 흘러내리는 속도보다, 지금은 녹아내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호수 끝에 드러난 빙하의 속살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현실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다.
주노 다운타운은 마치 오래된 동화책을 천천히 넘기는 기분이었다. 골목 사이로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있었고 상징적인 돌고래 조형물도 멋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노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코스트코도 있다. (참고로, 우리 섬에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월마트가 있다!) 도시는 작고 조용했지만, 어디 하나 허술한 데가 없었다. 관광객보다 주민들이 더 익숙한 길을 걷고 있었고, 그 풍경 속에 슬며시 섞이니 나도 이 도시의 일부가 되는 듯했다.
주노 알래스카 주립 박물관은 겉보기보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11% 넘는 원주민 인구가 이 도시를 지탱하고 있지만, 오히려 전통 음식점은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그러면서도 복잡하지 않은 도시.
그게 바로 주노였다.
알래스카는 도시마다 섬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래스카가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진 땅인지 새삼 느꼈다. 언젠가는 이곳의 도시와 섬들을 하나씩 모두 만나보고 싶다.
-이 글이 당신의 알래스카 여행에 초대장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