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
커피는 참 신기한 존재다.
마음을 편안하게도 하고,
바디감 있는 진한 커피는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기도 한다.
진한 맛 하나에 하루의 기운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처음 만난 커피는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던 밀크커피였다.
달아서 좋았고, 따뜻해서 좋았다.
그때의 커피는 단순히 ‘어른 흉내’를 내보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삶의 무게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는 어느 순간 아메리카노를 찾고 있었다.
쓴맛은 불편함이 아니라
내 마음을 부드럽게 다독여주는 여운이 되었고,
진한 맛은 나를 조용히 붙잡아주는 힘이 되었다.
커피의 길고 긴 역사도
내가 이 음료를 더 특별하게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9세기 에티오피아에서 한 목동이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모습을 보고
처음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 작은 열매는 아라비아로 건너가
수도사들의 졸음을 깨우는 음료가 되었고,
유럽에 전해져 사람들의 대화를 잇는 ‘커피하우스’를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카페인 한 잔일지 몰라도,
나에게 커피는 오랜 시간
사람을 깨우고 위로하던 이야기를 품은 음료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면
늘 마음이 조용해진다.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치고,
따뜻한 잔을 손으로 감싸 쥐는 순간
마음속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쓴맛 뒤에 남는 부드러운 여운이 좋다.
삶도 가끔 그렇게 쓴맛 끝에
따뜻함을 남겨놓을 때가 있으니까.
새벽과 가장 잘 어울린다.
고요한 시간에 마시는 아메리카노는
생각의 방향을 조용히 정리해준다.
커피 맛집을 찾아다니며
내 취향을 알아가는 시간이 좋다.
진한 커피 한 잔을 내 손에 딱 맞게 내려주는 곳을 찾으면
그날 하루는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 같아진다.
연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괜히 기운이 빠지고,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금세 중심이 잡히는 게 좋다.
커피의 농도는 늘 솔직해서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앉아본다.
커피는 말이 없지만,
그 진한 한 모금이
내 마음의 온도를 바꾸어 놓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이렇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힘을 가진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오늘의 나를 다시 살며시 일으켜 세우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좋아하는 것 하나가
진짜로 하루를 바꾸기도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