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필사는 엄마로서의 마음을 다지는 시간이다
내 이름과 그의 이름이 다르듯
내 하루와 그의 하루가 다르듯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가족이니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니까,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다를 수밖에 없고,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엄마라는 이름 아래, 같은 사랑도 다르게 전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세 아들을 키우면서,
"대체 누굴 닮은거야?" "왜케 나와 다른거야?"
남자아이들의 세계가 여자인 나와는 참 다르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 많았다.
왜 그렇게 높은곳에서 뛰어내리는 걸 좋아하는지,
왜 밥을 먹으면서도 몸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지,
왜 친구와 주먹다짐을 하고도 "그냥 논 거야"라고 하는지,
왜 감정을 묻는 질문에는 "몰라"라고 하면서,
게임 속 캐릭터에 대한 설명은 쏟아낼 수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싸웠으면 화해해야지!" 했는데 "이미 끝났어"라며 툭 털어버리는 모습이 신기했다.
힘들면 말하라고 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고 혼자 삭이는 모습이 답답했다.
남자아이들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들만의 언어와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으로 부딪히며 우정을 확인하고,
길게 말하지 않아도 눈빛과 짧은 한 마디로 감정을 나누고,
속마음을 쉽게 꺼내지 않지만, 행동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세 아이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첫째에게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들어주려 했다.
입이 무거운 둘째에게는 억지로 말을 시키기보다, 그의 침묵을 하나의 언어로 존중하려 했다.
활동적인 걸 싫어하는 세째가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무언가를 강요하기보다 그 아이만의 쉼을 인정하려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넌 내 아들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
는 생각을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아니,
무진장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엄마로서 더 단단해지는 길이란,
아이들에게 나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속도와 성향을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그렇다고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그 노력 자체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며, 이해하려고,
그리고 사랑을 더 잘 전하려고.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렇게 노력할 것이다.
나는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