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걷는 동안, 오래된 나를 만났다

by 봄날의꽃잎



두멩이골목이 시작되는 곳을 따라 걷다 보면

골목은 한 줄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중간, 숨은 길처럼

작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갈라져 나온다.


특히 골목이 나뉘는 곳에 서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친구들과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하나, 둘, 셋!" 소리에 맞춰

각자 골목길로 냅다 달려 나갔다.


누가 더 빨리 돌아오나 내기를 하던 시간.

급하게 뛰다 넘어지기도 하고,

골목 모퉁이를 돌아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면

서로 깔깔 웃으며 등을 두드렸다.


이 골목은 서로 갈라져도, 달리다 보면 다시 만났다.

꼭 우리들의 우정처럼,

멀어지는 것 같아도 결국 이어지는 길이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담벼락 옆으로 서 있는 전봇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 전봇대, 그대로네."


나는 그 전봇대에서 말타기 놀이를 하곤 했다.

허리를 숙여 '말'이 되고,

다른 아이들이 내 등을 넘어타는 걸 지켜봤다.


작은 친구가 올라타면 괜찮았지만,

몸집 큰 친구 차례가 다가오면

벌써부터 발끝에 힘이 들어갔다.

숨을 꾹 참고,

온몸을 버티며 꿋꿋이 버티던 순간.


넘어지지 않으면 서로 깔깔 웃었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전봇대 주변을 뛰어다니던 우리였다.


그 전봇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묵묵히 서 있었다.




전봇대 바로 옆집 에서는

여름이면 우무를 만들어 팔았다.

엄마는 나를 심부름 보냈고,

나는 손에 동전을 쥐고 골목길을 달렸다.


우무를 받아오면

아빠가 나무 도마 위에 우무를 올리고

"다다다다—" 리듬을 타듯 썰어냈다.

부추와 콩가루를 솔솔 뿌리고,

차가운 얼음을 띄운 우무냉국.


그걸 한입 머금으면,

몸속을 타고 흐르던 여름의 더위가

싹 사라졌다.


심부름길도 더위도

그 우무냉국 한 그릇에 씻기듯 사라지던 여름.


지금 이 골목은 조용하다.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지만

담벼락 위 그림과 전봇대,

그리고 그 시절 뛰던 나의 발자국은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갈라지고 이어지는 골목길을 따라,

오래된 나를 다시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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