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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자 Apr 01. 2024

꼬챙이에 꽂힌 통돼지 구이

폴댄스는 사람을 찢어


이번 글은 폴댄스를 처음 시작하고 느낀 자괴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과 달리 정보전달이나 수업후기보다는 초반에 느낀 개인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이야기 내용이니 원치 않는다면 다음 글 [폴싯도 안 아픈 날이 있을까]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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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댄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단계는 스트레칭이다. 충분한 웜업과 근육을 수축시켜 줘야 폴에 매달려 동작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폴댄스라 하면 팅커벨처럼 살랑살랑 움직이며 여리여리한 몸매로 우아한 자세를 뽐내는 것을 떠올리지만 사실 폴댄스야말로 강한 자 만이 살아남는 것이다. 우아하면 할수록 진정한 코어 강자라 할 수 있다. 나약한 육신의 소유자(나)는 폴에 매달리기도 전에 지칠 수 있다. 코어와 복부의 근육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용을 쓰다 보면 땀으로 등이 축축해지고 얼굴에 열이 올라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돌아온 빨간 마스크

그렇게 힘들다면서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 사람, 바로 나(이마짚). 운동을 하다 보면 숨이 차기도 하고,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머리가 흐트러져 엉망이 되기도 하는데 그런 모습을 견딜 수 없다고 해야 하나.  상대적으로 강도와 난도가 높은 입문3 수업에서는 마스크 때문에 숨 못 쉬어 죽는 거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스크는 벗지 않는다. 마스크는 얼굴의 일부나 마찬가지인걸.


친구에게 폴댄스 연습영상을 보여줬더니 마스크 쓰고 운동하면 힘들 텐데 왜 쓰고 있냐며 물어보길래 한 번 상상해 봤다. 땀에 젖은 얼굴에 사자갈기처럼 이리저리 흐트러진 머리카락. 그 상태로 마스크를 내리며 묻는 거지.


“나 예뻐?”



기억 속 괴담의 내용은 절망적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대답을 하든 죽는다고 하지 않았나?(지역마다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근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빨간 마스크한테 정답 따위 있을 리가 없잖아. 추한 얼굴과 마음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예쁘다하든 아니라고 하든 무슨 말을 하던 모든 답이 오답이다.



나 또한 본인의 생김새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에게 꾸밈이란 절대적으로 단점을 숨기는 것이다. 장점 부각도 단점을 가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런 나름의 철칙은 생각보다 잘 먹혔다고 생각한다. 실제 몸에 비해 후한 평을 받아왔으니까.  그런데 말이지.


폴웨어로는 가릴 수가 없어.

최대한의 살을 들어내야 하는 폴웨어는 신체적 단점을 가릴 수 없다. 날 것 그대로의 몸을 받아들여만 하는 것… 그런데 마스크까지 벗으라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노랑과 파랑

우리 학원은 하루에도 여러 타임의 수업이 있다. 모든 타임의 수업을 다 들을 수 있는 건 아니고, 입문반 수업만 자유롭게 스케줄에 맞춰 예약하고 수강할 수 있다. 그러나 선택이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되겠나. 월 수 금 오후 7시 40분. 직장인들의 정모나 다름없는 수업이다. 익숙한 시간, 익숙한 얼굴, 익숙한 폴웨어?


폴웨어 브랜드가 일상복처럼 많은 브랜드가 있지 않다 보니 회원들끼리 자주 겹치곤 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달까?

결국 그날은 좀처럼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같은 옷인데 어쩜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지?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거울에 비치는 본인을 보며 치명적인 약점을 찾으려 애썼다. 크고 둥근 얼굴, 짧고 굵은 목, 넓은 어깨, 튀어나온 갈비뼈, 좁은 골반, 축 처진 엉덩이, 짧은 다리, 두꺼운 종아리…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의 폴웨어를 입었는데,  그날따라 옷의 색깔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뜩이나 의기소침한데 동작을 잘 못 따라가기라도 하면 수치심은 배가 된다.


“ 저 사람, 나랑 비슷하게 들어왔지 않나? ”

“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들어온 사람이잖아 ”


속에서 무언가가 뒤틀리는 기분. 한번 똬리를 튼 시기와 질투는 독이 쌓일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스스로를 가꾸기 위한 운동이고 취미인데 외면을 넘어 내면까지 추해지는 것을 깨닫고 또 자책하기. 자기(自己), 자신(自身) 비판의 끝은 결국 자아(自我) 비판이다.


매 수업의 마지막은 한 명씩 돌아가며 당일 배운 동작을 촬영한다. 모든 생각은 비우고 동작에 집중하며 손끝 발끝까지 힘을 줘야 한다. 다른 생각에 빠져버리면 원래 되던 동작도 안 되는 법. 이미 다른 생각으로 수업 시간을 버린 사람이 동작을 수행할 수 있을 리가. 집에 와서 찍었던 영상을 확인했다.



꼬챙이에 꽂힌 통돼지구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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