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나 클릭한번의 배송으로 쉽게 받아 볼 수 있는 냉동식품이 많아 뭐든 쉽게 해먹을 수 있지만 확실히 맛은 직접 해먹는 거 만 못하다.
돈가스도 냉동식품을 애용하다 집에서 만들어 먹고 그 맛을 안 이후부터는 냉동식품을 먹지 못하고 있다. 요령이 없던 때엔 돈가스를 하려면 꼭 고기용 방망이로 두들겨 펴는 과정을 거쳐야만 돈가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과정이 번거롭다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고기를 살 때 한번 누름기계로 눌러주는데 두 번 해달라고 하면 집에서 고기를 두들기는 과정을 생략해도 되겠네!’ 그 이후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누름의 과정을 두 번 해온다. 그럼 집에서 시끄럽게 고기를 두들겨 펴는 작업을 생략해도 된다. 살림도 그렇고 뭐든 요령이 중요하다.
돈가스를 만들기 위한 재료는 간단하다. 돼지고기 등심이나 안심, 밀가루나 부침가루, 계란, 빵가루, 소금, 후추.
1cm정도의 두께로 썰어 기계로 눌러온 돈가스용 고기를 한 장씩 펼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밑간을 해둔다.
밀가루(부침가루), 계란, 빵가루는 큰 볼에 적당량 덜어 준비한다. 돼지고기 등심 1.2kg로 돈가스용 16장 기준으로 계란은 6개가 사용되었다.
밑간을 해준 고기 앞뒷면에 밀가루를 골고루 묻힌 후 노른자와 흰자를 고르게 잘 섞어준 계란 물에 퐁당 담가 계란 물을 묻히고 빵가루를 고르게 잘 입혀준다. 이렇게 만들어 한 끼 먹을 분량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보관해서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먹으면 시판 냉동 돈가스와는 차원이 다른 맛이다. 특별히 어떤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고 기본적인 재료들로만 했는데도 맛의 차이는 크다. 그 맛의 차이는 뭘까? 분명 시판 제품에 이런저런 재료들이 더 들어갔을 텐데…….
집에서 만든 돈가스를 먹은 후 아이들은 냉동 돈가스를 잘 먹지 않는다. 아이들 입은 참 예민하다. 한번 좋은 것, 맛있는 것을 먹은 이후엔 그 차이를 크게 느껴 그 맛을 몰랐을 때는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음식을 먹지 않는다.
지금도 물론 좋아하지만 한때 아이들이 마카롱에 푹 빠졌던 적이 있다. 그래서 마카롱이 맛있다는 집이 있으면 일부러 찾아가 먹어보곤 했는데 아이들이 맛을 보고 인정한 곳은 동네 카페에서 만들어 판매하는 마카롱이 유일하다. 서울 인사동에 놀러가서도 카페를 가자니 동네 카페의 마카롱을 먹겠다고 인사동 카페를 포기하고 왔을 정도니…….미식가라고 해야 하나?
맛에 진심인 아이들이다.
남자는 제육, 돈가스, 국밥 이라는 말에 아침부터 돈가스를 튀겨주었다.
“아들 빨리 씻고 돈가스 먹어.”
“어 나 오늘은 별론데…….”
“웬일로, 왜 별로야? 튀겼으니 좀만 먹고 가.”
별로라고 싫다던 돈가스를 몇 개 집어 먹더니 맛있다고 꽤 여러 개 집어 먹고 등교를 했다.
둘째도 밥은 싫고 돈가스만 먹는 단다.
“어때? 맛있어? 질기지 않아?”
“어, 어제 만든 거야? 맛있어.”
아이들이 맛있다고 하면 맛있는 거다. 맛의 평가에 냉정하니까.
돈가스는 아이들이 외식 메뉴로도 많이 선택하는 메뉴지만 먹으며 정말 맛있다고 하는 곳은 거의 없다. 다 거기서 거기다. 그나마 전반적으로 괜찮았다고 느꼈던 곳은 일본식 돈가스를 하는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궁금했다. 일반 돈가스와 일본식 돈가스의 차이점이 무엇이고 원래 서양음식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돈가스의 기원에 대해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내용을 쭉 읽어보니 일본에 가서 직접 일본식 돈가스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먹거리가 풍부한 미식가의 나라에서 기껏 먹어보고 싶은 게 돈가스라니…….
돈가스의 어원 : 커틀릿→카츠레츠→카츠→가스
커틀릿(cutlet)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가스가 된 것일까? 가스는 일본식 발음이다. 커틀릿이 일본에서는 카츠레츠로 발음된다. 줄여서 카츠(カツ)로 부르고 그게 우리나라에 건너오면서 가스가 된 것이다.
돈가스의 어원 : 커틀릿→카츠레츠→카츠→가스
그리고 카츠는 ‘이기다’라는 뜻의 동사 카츠(かつ)와 발음이 같아서 일본에서 수험생들은 시험 전날에 돈가스를 먹는다. 즉, 시험에 이기고 좋은 성적을 거두자는 뜻이다.
돈가스의 유래 : 오스트리아의 슈니첼에서 시작된 고기요리
다시 말하지만 돈가스는 서양 음식이다.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오스트리아의 슈니첼(schnitzel)에서 시작된 나름 역사 깊은 고기요리이다. 모차르트와 고향이 같은(혹은 모차르트도 먹었을) 족보 있는 요리가 바로 돈가스이다. 이 돈가스가 유럽의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영미권에서는 슈니첼을 포크커틀릿이라 불렀다.
1872년 일본에 처음으로 커틀릿 요리법 소개
이런 요리가 어째서 우리나라에 넘어와 그 족보를 의심받게 된 것일까?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돈가스는 서양에서 직수입된 포크커틀릿이 아니라 일본 땅에서 넘어온 돈카츠(豚カツ)이기 때문이다.
1872년 커틀릿 만드는 법이 일본에 소개된다. 이때 전해진 것은 기본에 충실한 커틀릿이었다. 송아지나 양고기의 뼈에 붙은 고기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밀가루, 계란 노른자, 빵가루를 입혀 프라이팬에서 버터로 양면을 갈색이 되게 구워 먹는 방식이었다.
돈가스 하면 의례 떠올리는 두터운 고기와 기름통에 넣어 튀겨내는 방식이 아니라 뼈에 붙은 고기를 프라이팬에 살짝 지져내는 것이었다. 당연히 고기도 얇고 기름기도 덜했다. 같이 곁들여지는 채소도 달랐다. 커틀릿의 채소는 익혀져 나오지만 돈가스는 생야채를 내놨다. 나이프와 포크를 쓰는 커틀릿과 달리 돈가스는 잘려 나와 젓가락으로 먹었다.
일본이 돈가스를 먹게 된 배경 시작 : 일본 덴무 천황, 육식 금지령을 내리다(675년)
어쩌다 이런 커틀릿이 돈가스로 변한 것일까? 이야기는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75년, 일본은 불교를 받아들인 덴무(天武) 천황이 육식 금지령을 내린다. 동북아 삼국(한, 중, 일)이 모두 불교를 받아들였고 이를 국교로 삼았지만, 이 정도로 육식을 제한한 경우는 일본밖에 없었다(이는 덴무 천황의 정치적 필요에 의한 행위였다). 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원칙상 육식을 금지당했다.
고기를 못 먹게 되자 생선으로 단백질을 공급하다
대신 생존에 필수적인 단백질은 생선을 통해 공급했다. 이웃인 우리나라가 농우(農牛)를 보호하기 위해 소를 죽이지 못하게 했던 것과 달리 일본은 고기를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이때부터 일본인들은 채식주의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종교를 정말 사랑한 지도자에 의한 ‘의도된 채식주의’로 좋게 포장할 수 있는 ‘꺼리’가 있었지만, 덴무 천황 이후 1천 년이 지난 후에 등장한 또 다른 지도자에 의해 일본의 고기 거부는 하나의 코미디가 돼버린다.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두 가지 이야기
일본 문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에도막부1603~1867의 5대 쇼군(將軍, 장군)인 도쿠가와 츠나요시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미쓰의 4남으로도 유명한 그는 수백 년이 흐른 뒤에도 일본인들이 두고두고 회자할 두 가지 이야기를 남겼다. 하나는 비극이고 또 하나는 희극이다.
첫 번째, 일본의 <춘향전>이라 불리는 <추신구라> 이야기
비극을 먼저 설명하자면(이걸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들은 정작 행복하게 죽었다) 바로 일본의 <춘향전>이라 불리는 <추신구라(忠臣藏, 충신장)>이다. 추신구라의 배경이 된 시기가 도쿠가와 츠나요시 시절이었다.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연극, 가부키 등 온갖 매체에서 소개한 이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시대극 <추신구라 1/47> 버전과 <기묘한 이야기 극장판>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무사도에 목말라했던 대중들, <추신구라>에 빠지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3년 간 은둔 생활을 하던 47명의 무사들이 드디어 기회를 노려 원수를 죽인 뒤에 일제히 할복을 하는 무사도에 관한 이야기이다(당시 47명의 사무라이들이 할복하는 방법을 모르자 막부에서 사람을 파견해 할복 방법을 가르쳐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당시에는 할복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때 <추신구라>가 인기를 얻었던 배경은 긴 평화 기간 동안 무사도에 관한 갈증에 목말라했던 대중들이 무사의 표본을 눈앞에서 목도했다는 것과 대중화된 가부키를 통한 이야기의 확대ㆍ재생산 덕분이었다).
두 번째, 1687년 ‘동물보호법령’으로 동물 살생을 법으로 제한하다
도쿠가와 츠나요시 통치 기간 중 희극은 1687년 선포한 ‘동물보호법령’이다. 동물의 살생을 법으로 제한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한 승정을 만나 불법에 감화되어 살생을 금지했다고 한다. 특히 츠나요시의 간지(띠)였던 개의 경우는 살생을 엄격히 제한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어쨌든 아무리 멍청한 법이라도 쇼군이 내뱉은 말 아닌가? 결국 동물을 죽이는 것이 힘들어졌기에 자연스럽게 고기를 얻는 것도 어려워졌고, 이는 결과적으로 일본인들의 육식을 제한하게 됐다. 오늘날의 환경보호론자, 동물애호가, 채식주의자들에게는 초대 영웅일 것이다(물론 당대에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지만 말이다).
1868년의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고기를 먹게 되다
1,200년간 고기를 금지했던 일본. 그러나 1868년의 메이지유신(막번 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통일 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이 단행되었고, 이에 신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개화파들은 신지성인의 척도로 고기를 선택했다.
“서양인들은 고기를 먹음으로써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힌 신체를 만든다. 우리도 고기를 먹으면 서양인과 근접한 체격을 만들 수 있다.”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육식에 대한 불편한 시각
그러나 여전히 보수주의자들은 육식을 불경함과 신성모독 행위로 보았다. 고기 논쟁은 꽤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천황의 거처에 10명의 자객이 난입한 적이 있다. 이들이 체포된 이후의 진술서를 보면 당시 육식에 관한 일본인들의 시각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육식은 불경함과 신성모독이다. 단호히 척결해야 한다!”
돈가스의 탄생 배경 : 빵가루로 기름에 튀겨 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정부와 유신지사들은 일반인들에게 고기를 먹게 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된다. 그렇게 나온 것 중 하나가 돈가스였다. 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두꺼운 빵가루에 튀겨 두툼하게 만들었고(색다른 식감을 줘서 고기에 대한 거부감을 줄였다), 기름에 튀겨낸 음식이었기에 이후 입안에 남는 텁텁함을 지워내기 위해 생야채를 곁들이게 된다.
그리고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해 포크와 나이프 대신 젓가락을 쓰도록 했다(실제로 돈가스가 소개된 초창기에는 나이프로 고기를 찍어 입에 넣다 입이 다치는 사건도 종종 발생했다).
1929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돈가스
이렇게 완성된 돈카츠가 쇼와 4년(1929년)에 등장한다(그 이전인 1895년에 긴자 거리에 돈카츠의 원형인 포크 가쓰레스가 나오긴 했으나 고기가 잘려 있지 않고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먹어야 했다. 또한 얇은 고기를 지진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돈카츠가 우리나라로 건너와 돈가스가 된 것이다. 물론 이것도 일본의 돈카츠와는 다른 형태다. 일단 우리의 돈가스는 잘려져 있지 않고(일본식 돈카츠를 파는 곳은 잘려져 나오지만 한국에서는 분식집에서도 포크와 나이프가 나올 정도다) 소스도 고기 위에 뿌려져 나온다(나름 양식임을 강조하기 위해 수프가 나오는 곳도 많다!). 굳이 연원을 찾자면 일본식 포크 가쓰레스라고 해야 할까?
서양 음식 커틀릿→일본 음식 돈카츠→한국 돈가스
일본인들에게 고기를 먹게 하기 위해 서양의 음식 커틀릿을 가져와 돈카츠로 만든 일본인. 그리고 그 일본인이 만든 돈카츠를 한국적 형태의 돈가스로 만든 우리나라. 각자 환경과 사정에 따라 같은 음식도 이렇게 변하는 것이다. 강남에 심은 귤을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네이버 지식백과] 돈가스 - 고기를 고기처럼 보이지 않게 하라 (사물의 민낯, 2012. 4. 16., 김지룡, 갈릴레오 S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