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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lbi Dec 18. 2024

05. 상큼한 오이소박이로 노선 변경하기


“토요일인데 다녀올까?”

이런 이런 버릇을 잘못 들였다.

결혼하고 백화점과 친해졌어야 하는데 집 앞 농산물 시장과 너무 친해졌나보다. 토요일이라고 자연스레 농산물 시장을 가겠냐고 물어보다니……. 나도 백화점 갈 줄 아는데 어찌 백화점 가자고 한 번을 안하는지.

자주는 아니지만 결혼 전에는 가끔 한 번씩 갔던 백화점이 요즘은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까운 마트와 쇼핑몰 위주로만 다니다보니 큰아이 어릴 때 백화점은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까지 받았다. 얼마나 집주변 동네에서만 빙글빙글 돌듯 생활했는지 알 수 있는 질문이다. 백화점이 없는 시골 깡촌에 사는 것도 아니고 20~30분 거리에 백화점을 두고도 이렇게 살다니…….


개인적으로 살림을 하며 가장 애정하는 곳은 백화점 보다 쿠*과 농산물 시장이다. 늦은 밤에 주문을 해도 이른 새벽 로켓배송을 해주고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싼값에 구매 할 수 있는 두 곳을 애정 할 수 밖에…….백화점 반찬코너가 맛있다고 종종 이용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반찬을 1년에 한두 번 사먹는 입장에서 그걸 사러 굳이 가게 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장을 보다 보면 버릇처럼 사오는 품목이 있기 마련인데 나에겐 오이와 부추가 그렇다. 농산물 시장에 가서 오이와 부추가 보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꼭 사온다. 물론 가격이 저렴할 때 만이다. 요즘은 가격이 너무 비싸 오이를 쓱 구경만 하고 온다.


3월. 봄이다.

날씨는 아직도 영하의 기온에 칼바람이 불지만 3월이 되면 그냥, 무조건 봄이라는 기분이 든다. 내 몸뚱이는 조금의 추위와 바람에 노출되는 것이 싫어 롱패딩을 못 벗어나고 있지만 마음과 입맛은 봄이다. 겨우내 먹던 젓갈이 듬뿍 들어간 김장김치보다 상큼하고 아삭아삭한 오이소박이가 생각난다. 


지난여름엔 아삭한 식감이 예술인, 유튜브에서 알려준 새로운 레시피로 오이소박이를 만들었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오이를 절이는 것이 아니고 천일염과 사카린으로 오이를 절이는 방법이었는데 아삭한 식감이 기존 방법보다 더 좋았다.


오이를 깨끗이 씻어 3~4등분으로 잘라 칼집을 낸 사이에 천일염을 넣고 그 위에 사카린 녹인 물을 부어 30분 정도 두니 절여졌다. 절여진 오이를 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먹어보니 아삭아삭 식감이 살아있다. 간편한 방법이다.


오이가 절여질 동안 부추, 양파, 당근을 채 썰고 양념을 만들어 속 재료를 준비했다. 모든 김치의 양념은 동일하다. 다진 마늘, 멸치액젓, 소금, 설탕, 고춧가루로 준비된 재료를 버무리니 둘째도 해보고 싶다고 해서 둘이 사부작사부작 오이소박이를 완성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신기한 레시피 덕에 간편한 방법들을 하나씩 배워간다. 끝이 없는 배움의 세계다.

그리고 참 신기한 게 오이를 칼집을 내는 게 아니고 다 잘라서 똑같은 재료와 양념으로 버무리면 맛이 다르다. 오이에 칼집을 내고 속을 넣어 만든 오이소박이와 오이를 다 썰어 버무린 오이 무침은 맛에서 차이가 있다. 맛의 깊이 차이랄까? 그리고 그릇에 담아낼 때 오이소박이가 좀 더 고급음식 같은 느낌이 들어서 꼭 오이소박이를 하게 된다. 사소한 차이지만 결과물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몸과 입이 계절의 변화와 날씨에 민감해 날이 아무리 추워도 입춘이 지났다고 상큼한 맛이 땡긴다. 꽃샘추위로 오이의 가격이 아직은 비쌀 테지? 오이 가격이 떨어지면 입맛이 도는 상큼한 오이소박이를 준비해 봐야겠다. 맛있는 오이소박이를 만들어주고 슬쩍 노선 변경을 시도해 봐야겠다. 


토요일 오전은 농산물 시장으로 쇼핑가는거 아니고 백화점으로 쇼핑가는 거야!

어떠한 곳이 좋다고 하면 그곳만 주구장창 가려고 하는데, 세상엔 예쁘고 좋은 곳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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