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집에서 5분 거리에 농산물시장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이곳에 가면 과소비를 하고 온다. 과소비라고 했지만 총 장바구니 비용으로 10만원을 넘기기 어렵다.
주로 토요일 오후를 이용해 남편과 함께 장보기를 한다.
몇 주 전 시장에서 알타리를 보더니
“우리 알타리 사다가 알타리 김치 해먹자.”
“하면 뭐해? 처음에만 좀 먹고 잘 안 먹어서 시어서 버리게 만들면서!”
“버리긴, 들기름 넣고 푹 지져 먹음 되잖아.”
“아우, 귀찮아. 담에…….”
하고 알타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왔다.
몇 주 지나고 냉장고 파먹을 것도 없고, 집에 먹을 것이 똑 떨어져 월요일 혼자 장을 보러 갔다. 필요한 채소 이것저것 사고, 무만 하나 사서 무생채를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무를 사려간 곳에 너무나 싸고 싱싱한 알타리가 보였다. 다섯 단에 1만원! 너무나 저렴한 가격과 몇 주 전에 알타리 김치가 먹고 싶다는 남편의 말에 사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추석 연휴에 혼자 묵묵히 집안에 묵혀두었던 지저분한 짐들을 다 정리해준 것이 고마워 먹고 싶다는 김치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배란다 두 곳, 뒷배란다 한곳에 언젠가는 사용하겠지 하고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짐들이다. 이사와 10년간 모아둔 창고의 짐을 정리하니 50리터 비닐봉지로 7~8개가 나오는 엄청난 양이었다. 가끔 한두 마디 정도의 잔소리로 완벽하게 정리정돈을 끝내주었다. 쓰레기의 양과 정리된 창고의 상태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대단히 어려운 요리도 아니고 먹고싶다는 알타리 김치를 하는 수고정도는 감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알타리를 비롯해 기본 채소, 과일을 카트로 3번을 이동해가며 욕심 부려 차에 싣고 왔다.
모든 김치가 그렇지만 특히나 알타리 김치는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다.
알타리 김치가 비싼 이유가 다 있다. 알타리는 하나하나 세심하게 손실을 해야 한다.
무와 무청 연결 부분의 흙을 털어낸 후 칼로 깔끔하게 손질하고, 억센 무청을 다 뜯어내야 한다. 작은 과도를 쥐고 다섯 단의 알타리를 손질하고 나니 오른 손이 쥐가 나는 것 같은 느낌에 손가락 마디가 다 아프고 잘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 쭈그려 앉아서 한 작업이라 허리도 무릎도 아프다. ‘아……. 그냥 사다 먹을 걸 괜히 욕심 부리고 사왔다?’ 후회가 밀려왔다.
30분 정도 쉬고 알타리를 물에 헹궈 흙과 먼지를 털어내고 굵은 소금을 뿌려 절였다. 맛있게 절여질 동안 나는 휴식이다. 휴식을 취하며 절여짐의 상태를 확인하며 중간 중간 뒤집어 주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알타리의 상태가 낼 오전까지 두어야 할 것 같았다.
“낼 저녁에 나 퇴근하고 와서 알타리 버무리면 안 되나?”
“힘쓰는 거 도와주려고?”
“응, 그때 해도 되면 해줄게.”
“근데 알타리 절여지는 걸 봐야 할 거 같아. 너무 오래 두면 안 되니까.”
다음 날 오전, 알타리의 절여짐을 확인하니 딱 좋다!
세 번에 걸쳐 절여진 알타리를 깨끗이 세척하고 채반에 잘 정리해 두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물기가 쫙 빠질 것 같다.
다진 마늘, 고춧가루, 설탕, 멸치액젓 기본양념에 아로니아청과 잔치국수 육수로 만들어 두었던 멸치육수도 추가하고, 새우젓도 추가해 김치 양념을 준비했다. 오래전 만들어 두었던 아로니아청을 처음 사용해 봤다. 매실청처럼 시큼한 맛이 없어 김치에 사용하기에는 더 나은 듯 했다.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양념은 다 비슷비슷하다. 한번 만들어 두면 다른 김치나 요리를 할때 아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도 여유 있게 준비해서 조금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은 옷을 갈아입고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알타리를 버무렸다.
물기도 쫙 빠지고 적당히 절여진 알타리는 양념이 들어가자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변해갔다. 김치의 색을 봐가며 양념을 조금씩 추가했다. 역시 김치는 허여멀건 것 보다 빨간게 맛있어 보인다. 하나씩 맛을 봤다.
“오, 맛있다! 알타리 무가 안 맵고 맛있다.”
“다듬고 손질 할 땐 힘들어서 괜한 짓 했나 했는데, 맛있으니까 좋네. 힘쓰는 거 도와줘 고마워.”
잘 버무려진 알타리 김치를 김치 통에 담았다. 5단이라 두통이 나올 줄 알았더니 겨우 한통이 채워졌다. 좀 허무한 마음이 들었지만 맛있으니까 되었다.
우린 갓 담근 알타리 김치에 밥 한 공기를 뚝딱했지만, 아이들은 관심 밖이다.
아이들의 입맛에만 맞추면 반찬에 제한이 많아진다. 이젠 좀 컸으니 우리 입에 맞추련다.
오랜만에 만든 알타리 김치를 3명의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었다.
맛있다며 좋아하니 음식을 나누어 먹는 즐거움이 커진다.
작년에는 귀찮다고 넘긴 김장을 올해는 아주 조금만 도전해 봐야겠다.
절임배추도 있으니까! 쉽게, 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