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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을 흉내 내는 가짜 강사들

by 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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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택


그녀가 내 이름을 불러줬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다. 그저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줬을 뿐인데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내 오랜 꿈을 이루는데 '네가 늘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어'라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만한 그녀가 나에게 이런 고백을 하다니, 내가 어찌 그녀를 따르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손가락질한다고 해도 나는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차갑게 대한다. 그날 유독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것이 있나?' 하며 냉담의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가늠조차 안될 만큼 힘들었던 일주일이 지났다. 그 무렵, 그녀는 조용히 자기 방으로 나를 불렀다.


그녀의 미소를 보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여느 때처럼 세상 사랑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선물 상자를 하나 건넨다. '출장 갔다가 현주 네 생각이 나서 사 왔어'. 반짝반짝 빛나는 목걸이였다. 가녀린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것과 똑같은 제품이었다.


일주일 전에 보았던 따뜻함과 상냥함 그대로였다. 끼니도 거르고, 잠도 못 잘만큼 악몽 같았던 일주일이었는데 결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니. 그녀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혼자만의 착각이었나. 어느새 그녀가 나의 모든 감정을 쥐락펴락할 만큼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왜 그런지 그녀의 감정을 더 세심하게 살폈다. 왜 기분이 안 좋은지, 어떤 일을 할 때 기분이 좋은지, 어떤 말들을 싫어하는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나의 모든 말과 행동, 표현 하나하나 그녀에게 점점 맞춰갔다.


그녀도 점점 나를 더욱 가까이 두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딱딱 알아차리고, 문제가 생기거나 생기려는 찰나에 착착 해결해 주니 얼마나 편했을까 싶다. 나라도 좋았을 것 같다. 나를 점점 의지하는 그녀에게 하는 직언도 많아졌다.


처음에는 그녀가 언짢아할 만한 말은 일절 안 했지만, 유일하게 조언을 해 줄 사람은 나밖에 없음을 알고 듣기 싫은 직언도 조금씩 늘려갔다. 언론에서 그녀의 행태를 나쁘게 보도하거나, 대중들로부터 험담이 들리면 나 자신과 동일시하며 온몸으로 막고 대응했다.


그녀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나의 유명세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녀와 내가 막역지간이라는 것을 알고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간 이유였다. 이제는 그녀가 나였고, 내가 그녀였다. 그녀의 소셜 계정을 관리하는 일까지 자처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좋아서 한 일이니 괜찮았다. 그녀가 나를 믿어준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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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


그녀는 예술을 전공한 투자 강사다. 예술 전공자들은 대중의 사랑을 갈구한다. 동종 업계 모두가 경쟁자인 세계에서 생존은 곧 생계와 직결되어 있기에 그렇다. 이들은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기술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투자의 세계에도 그대로 접목시켜 유명세를 치렀다. 이들은 자기감정에 솔직한 편이다.


그들은 보통 불안도가 높고 야망이 크다. 그것을 극복한 리더라면, 자신의 경험담을 근거로 타인의 힘든 상황을 공감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야망을 위해 공감을 흉내 내는 것에 능하다고 할 수 있다. 공감대 형성을 빌미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며 약점을 찾아낸다. 그것을 찾아낸 후에는 오직 자신만이 그것을 해결해 줄 구원자라며 상대를 조종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상대에게 신뢰를 주기 위한 확실한 수단을 알고 있다. 친절과 냉담을 적절히 섞어 쓰며 상대가 선을 넘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본인과 동일시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상냥하고 온화하지만 핵심은 내어주지 않는다.


이들은 밀당의 고수이다. 애정 결핍이 심한 밀당의 고수가 리더가 되는 것이 제일 위험하다. 그들은 사랑을 독차지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내가 아닌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나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질 때 비로소 끊어냈어야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대중의 관심을 즐겼던 게 화근이 되었다. 나는 한순간에 버려졌다. 그녀는 내가 빠진 자리를 금세 다른 사람으로 대체했다. 그녀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세상에 널렸으니까.


여전히 사람들은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녀를 만나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언제나 '여러분도 나처럼 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추종자를 끌어모았다. 다정한 목소리로 상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게 만들었지만, 감히 그녀와 동일시되는 것은 허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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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멸


수년이 지나서 그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내가 내어줬던 자리는 벌써 몇 사람이 거쳐갔다고 한다.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도 온 지 얼마 안 되었단다. 잊고 있다가 오랜만에 그녀의 유튜브 채널에 접속했다. 예전처럼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슬퍼 보였다. 심히 피곤해 보이기도 했다. 공감을 흉내 내듯 웃는 것 또한 흉내만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구독자는 확연히 줄어 있었고, 올라오는 영상의 주기도 길어졌다. 그녀 주변의 모두가 지쳐 보였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서 불러주던 영예로운 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는다. 그녀는 대중의 사랑이 끊기자 깡 마르기 시작했다. 루즈핏 시스루 블라우스 사이로 목걸이는 반짝거렸지만, 더 이상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한창 잘 나가던 때 마련했던 건물을 청산했다. 세금 부담으로 자산을 리밸런싱 하는 차원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다. 그녀가 투자보다는 강의로 자산을 불려 온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때 버림받은 것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나의 깜냥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소소하게 살고 있다.


유명세를 치러서 교주의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들은 외롭다. 그 외로움을 사람들과의 내적 친밀감으로 덮으려 하지만 그들의 공감에는 깊이가 없다. 그러니 오래 지속될 리 만무하다. 자신보다 더 잘 나가거나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내친다. 그것이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자기보다 더 잘 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성공을 빙자한 자신의 유명세가 더 중요하다. 어깨동무는 하되, 약점은 결코 내비치지 않는다. 많은 것을 내어주고,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그것을 깨닫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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