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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남편을 어찌하오리까

by 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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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은 타인의 영향력에 심하게 저항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통제되지 않은 상황을 불안해한다. 나름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왔고 그 정도 머리면 해볼 만한 일도 결코 나서는 법이 없다. 유독 자기 평가가 낮고 타인에 대한 의심이 많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이 강하며, 상대의 호의에는 반드시 다른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나의 모든 제안은 일단 쳐내고 본다. 워낙 험한 세상인지라 남편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다. 투자 제안에 속아 전 재산을 날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PD수첩을 통해 흘러나온다. 남편은 자신의 신념이 맞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시켜줄 요량으로 TV 볼륨을 더욱 높인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들리도록 말이다.


아빠 옆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저거 보라면서 훈계를 한다. 꼬맹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민서야, 준우야, 누가 돈 벌게 해 주겠다면서 너희 돈 투자하라고 주면 돼? 안돼?'라고 눈을 부릅뜨고 묻는다.


아이들은 '절대 안 빌려줘, 내가 내 힘으로 스스로 벌 거야'라고 말한다. 대견하다는 듯 남편은 아이들 궁둥이를 토닥토닥 쳐준다. 둘째 준우는 그런 아빠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되묻는다.


'아빠, 아빠는 빚도 없고 돈도 없지?'


남편은 폭소를 한 후에 답변한다.


'우리 준우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맞아, 아빠는 빚도 없고 돈도 없어. 하하하'


TV 속 사기당한 사람들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뭘까.


남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사람이다. 특히 내가 제안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나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남편의 노력을 잘 안다. 가장으로서 처자식을 부양해야 할 책임도 있다. 회사에서는 이리저리 치이고, 노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을 동시에 해야 하는 소위 이 시대의 마지막 '낀 세대'로서 고군분투하는 남편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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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유독 남편의 기분이 좋아 보인다. 때는 바로 지금이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분이 주관하는 모임에 나가보자고 제안했다. 투자도 투자지만, 삶을 대하는 마인드를 닮고 싶어서 오래도록 지켜보던 분이다.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어쩐 일인지 남편이 한 번 같이 가보자고 한다.


기대를 하지 않았던 답변이라 날아갈 듯 기쁘다. 며칠 후 설레는 마음으로 그분이 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 집의 재정 상황에 대한 고민, 더 정확히 말하면 (남편은 전혀 고민이 아닌) 나만의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자료 정리까지 해 온 나를 보고 남편은 당황한 듯했지만, 그분이 해주시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도 쳤다. 긴장했던 처음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표정도 밝아졌다. 데려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는 남편과 한 배를 타고 힘을 합쳐 순항할 것이라는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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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다시 회사일에 매일 치이고, 늦은 밤 캔맥주를 하나 까서 소파에 앉는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다시 PD 수첩을 본다. 이번에는 영끌 투자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집중 조명하는 내용이다. 어느새 볼륨이 또 높아진다. 듣기 싫다. 일부러 접시들을 더욱 쾅쾅 부딪히고 물도 제일 세게 틀어 재낀다.


PD수첩은 나도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지만, 폐지되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든다. 도대체 저놈의 수첩 속에는 왜 죄다 부정적인 이야기만 가득한지 원망스럽다.


설거지를 마치고 살며시 남편 옆에 앉는다.


'여보, 지난번 모임에 다녀온 거 생각 좀 해봤어? 그때 조언해 준 내용으로 내가 우리 집 플랜을 짜봤거든. 한 번 볼래?'


남편은 TV를 잠시 멈추고, 아내 수첩을 펼쳐본다. 모임에서 조언을 듣던 때의 밝은 표정은 어디 가고 다시 회색빛 남편 표정으로 돌아왔다.


회사에서 재정 회계 일을 담당했던 남편의 매서운 눈알이 요리조리 움직인다. 그리고 나더니 수첩을 탁하고 덮더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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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현실적으로 우리 집 상황하고 맞지가 않는 것 같아'


며칠 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치던 남편은 어디로 갔나. 그분이 해준 조언은 우리 집에는 효과가 없단다. 남편은 또다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십 가지 안 되는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헛똑똑이도 이런 헛똑똑이가 따로 없다.


심지어 그분이 해준 조언에 정반대로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예를 들면 비생산적인 모임은 가급적 줄이고 돈 공부 환경을 만들라는 조언에, 평소라면 잡지 않았을 협력 업체에 먼저 연락하여 회식을 잡는 식이다.


남편은 그분의 조언에 저항하기로 마음먹은듯하다. 자신이 해오던 방식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결국 그것이 생산적인 일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할 것처럼 반항했다. 그럼으로써 아내에게 더욱 능력 있고 떳떳한 남편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이리라.


청개구리 우리 남편 어찌하오리까.




실제 상담 사례를 각색하여 써보았습니다.


비단 남편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내, 예비 신랑, 예비 신부의 이야기도 될 수 있겠지요?


이런 분들을 다루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신이 '다루어진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자존심과 고집이 센 분들에게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강한 감정을 거스르기보다는 그 감정을 인정하면서 생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고집스럽게 반대하는 것은 변화와 그 변화가 불러올 불확실성이 몹시 두렵기 때문입니다.


투자는 결국 행복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나와 다른 모습에 끌려서 결혼을 해놓고, 이제 와서 나와 같은 모습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폭력일지 모릅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가족 공동의 투자 신념을 만들어가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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