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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인J Mar 31. 2024

죽은 구름

먹구름이 몰려오던 새벽이었다 점멸하는 형광등 불빛이 비친 안방 얼굴까지 이불을 덮어쓴 할아버지의 발목을 들여다봤다 죽은 피가 쏠려 새까매진 발목이 뻗고 있는 벽 쪽으로 그림자가 보였다 그 속에 서 검은 개 한 마리가 앉은 채 똑바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온몸이 멍든 나를 무릎에 앉히고 할아버지는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곤 했다 어둠을 길들여낼 줄도 알아야 해 울음 같은 천둥 소리가 들렸다 회초리를 든 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물고 있는 검은 개 한 마리를 그날 처음으로 목격했다 


 그때부터였다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가 날짜를 못 읽는 날이 많아졌다 6일과 8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와 아빠를 구분하지 못했다 검은 개는 점점 더 몸집을 부풀려갔다 

    

 저녁만 되면 십자가 목걸이를 쥔 채 중얼중얼 말뿐인 기도는 늘어만 갔다 매일 같이 경마에 돈을 다 날 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빠는 그런 할아버지의 기도를 무시한 채 소고기를 끓여댔다     

 검은 피가 완전히 빠질 때까지 익혀야만 돼   

  

 식사로 희여멀건한 빛깔의 소고기가 나왔다 씹을수록 질겨서 억지로 삼켜낼 수밖에 없던 그 밤 오직 할아버지만이 급체를 했다 아빠는 쉽게 바늘로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땄다 닦아낸 휴지 조각에는 붉은 핏물만이 번지는데     


 차마 죽은 피를 뽑아낼 수 없어서 할아버지는 검은 개를 키웠나     


 상복을 입은 행렬들 사이

 검은 개는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문 채 여전히 놓을 줄도 모르고

     

 문득 올려다본 창문 속에는 먹구름이 갠 하늘 위

 흩어져 터져버린 검은 실핏줄만이 내 눈에 선명했다




*죽은구름: 기형도 시인의 「죽은 구름」에서 모티브를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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