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무경 Apr 22. 2024

[필링: 정취]과 이모션: 정동]

의식 체류 단계에 따른 [필링: 정취]과 이모션: 정동]

감각과 단순 감정인 정취(情趣)는 의식과 동시에 작동하며 〘의식 체류처〙에 따라서 의식의 체류 정도가 가장 낮은 생리적 정취인 [정후(情候)]로부터 심리적 정취인 [정서(情緖)], 윤리적 정취인 [정의(情義)], 성리적 정취인 [정외(情畏)] 등으로 발전되어 나아간다. 


정동 역시 의식 체류처의 발전에 따라서 의식 체류가 가장 낮은 생리적 정동인 [정초(情楚)]로부터 심리적 정동인 [정념(情念)], 윤리적 정동인 [정륜(情倫)], 성리적 정동인 [정엄(情嚴)]으로 나아가는데 의식의 비율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감정인 정동(情動)은 의식에 의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                    

생존 활동의 성과를 평가해 주는 감성은 주로 기성적인 활동, 곧 본능의 여러 활동에 관한 자극에 대해서 뚜렷이 반응할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정신의 기능이 그러하듯이 이성적인 활동에 관해서도 활발한 반응의 결과인 다양한 감정을 나타낸다.        

        

정취나 정동은 의식의 발전 단계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므로 각 체류 단계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바뀐다. 이를 단순 감정인 정취(情趣)와 의미 감정인 정동(情動)에 따라 필자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부르며 정취[情緖]와 정동(情動) • 정념(情念) • 정감(情感) • 기분(氣分) 등 모든 감성 활동에서 특별히 의미를 강조하여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통틀어 [감정(感情)]이라는 갈말〘용어〙로 부른다.

       

의식 발전*에 따른 감성의 활동에서 [생리적] • [심리적] 반응은 기령[氣領{기성적 본능적 영역}이며 [윤리적]  • [성리적] 반응은 이령[理領{이성적 활동 영역}의 정신적 의미 평가에 따른 반응으로 도덕적  • 예지적 등에 관한 의지에 따라서 촉발되는 감정인데 이성의 기능인 지적 영역과 함께 이성의 가치와 이상에 딸린 감정인 〘정조(情操)〙에 포함된다.    

   필자의 감정 이름표 ❉물리적 단계는 제외          


*일반적으로 윤리적 정동을 포함하는 감정 ⎯본고에서의 윤리적 및 성리적 정념⎯ 이 더욱 발달되면서 일어나는 고차원적인 복잡한 감정. 곧 지적(知的)·도덕적·미적(美的)·종교적 감정 따위[표준 국어사전의 해석]는 [정조(情操)]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우리 음(音)의 정조에는 “생리적 의미 감정[생리적 정동⎯정조(情調)]”도 가리키기 때문에 이를 구별하려면 일일이 한자를 병기하거나 설명해야 할 문제가 있으므로 필자는 생리적 의미 감정[생리적 정동]을 가리키는 새로운 이름을 쓰기로 하고 이를 [정초(情楚))라고 부르려 한다. 

  

※생리적 • 심리적 • 윤리적: 필자는 이성과 기성의 융합에 따라 이루어진 생명체는 처음부터 [마음]의 역할인 지[知: 의식] • 정[情: 감성] • 의[意: 의지]가 갖추어져 있으며 이 역할들이 천천히 진화하여 가는 길에 처음에는 물리적   • 기계적 형태로, 그 다음에는 저[자기]의 목숨의 삶과 죽음[존망(存亡)]에 관한 생리적 의식 상태로, 이어서 심리적 상태를 거쳐 윤리적 상태로 체류(滯留) 발전해 간다고 생각한다. 


위의 도시는 이 상태의 발전과 의식의 체류에 따르는 감정의 자리 표이며 의식의 체류에 관해서는 이 책의 자매서인 졸저 《마음의 얼개 Ⅱ》 제●부 [의식의 체류]에 좀 더 상세히 적어놓았음.    

       

③감정의 의의      

감정은 감성이 의식의 도움에 따라 이끌려 발현되는 감성 현상인데 견주어 감각은 의식과 감성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직접적 자극으로 느껴지는 기능이다. 이처럼 감정은 의식 없이는 발현되지 않는데 다만 정취는 감성과 의식이 짙게 융합되어 있어 감각처럼 직접적 자극으로 느껴진다.     


인간은 무기물질이 아니고 생생히 살아있는 생명체로 이 사실을 감정처럼 잘 나타내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그의 생존에서의 지향적 목표인 존망이 〘얼{정신}〙안에 들어 있기에 그의 활동이 이 목표 달성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대해 평가하고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과학적 방식}으로 말하면 내적으로 반응하는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을 보아 그의 생존에서의 지향적 목표가 내재되어 있음을 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생화학자인 닉 레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어떤 로봇이 딥 블루의 지능을 가지고 말을 하고 외부 세계를 감지하고 거의 무한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의식은 다르다. 로봇에는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이별의 아픔도, 깨달음의 환희도, 희망이나 믿음이나 박애도, 그윽한 향기와 살이 살짝 닿는 느낌의 짜릿함도, 따뜻한 햇살이 목덜미에 닿는 기분도, 집을 떠나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의 뭉클한 느낌도 없다. 아마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내장된 기계장치를 통해 로봇도 이런 감정을 느낄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감동을 프로그램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닉레인 ❰생명의 도약❱ 글항아리  2014/2/24 간 386p      

    

필자는 로봇에 감동을 프로그램하는 기술이 곧바로 개발되리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진정한 감정이 아닐 것이지만 일정한 상태, 예컨대 기쁨이나 슬픔의 상태를 정의하고 그 정의에 해당하는 일정한 반응을 구현시키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시키면 비록 거짓에 불과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조작하고 사람들을 속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가 물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유물론적 사상가들이라면,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그 로봇과 생명체의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위적인 작위를 설령 생명체의 감정 상태와 비슷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겉보기만 그럴듯할 뿐, 실제로 생명체가 생을 영위하면서 느끼는 목표에 대한 결과적 반응으로서의 감정과는 전혀 다른, 사이비 감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심리계〙에 체류해 있는 인간에게는 〘제시 본성〙에 의해 제시자와 수용자의 교류에 따라서 형성된 상대적인 우열의 결과, 다른 생물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매우 다양하고 미묘한 감정의 발현을 똑똑히 보게 된다. 따라서 감정을 온전히 해명하지 못하고는 인간성, 또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의 온전한 해명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인성(人性)을 연구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실정은 과연 어떠한가?  이 미적 표상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내는 활동이 예술이다.           


감정의 한 가지 특성     

감정은 감정을 자극하는 대상에 대한 평가로 대상을 긍정하거나 부정한다. 그리고 긍정적 대상을 애호하고 부정적 대상을 혐오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대상을 처리하려 한다. 곧 애호하는 대상을 지지하고 부정적 대상, 곧 혐오하는 대상을 배척하여 없애 버리려 한다. 애증과 호혐이 그 반응의 결과로 나타나는 감정이다    

이전 01화 의식 체류처와 감정의 단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