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사필귀정은 오래 걸린다.
회사를 나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첫 번째가 전 직장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것이다. 이유를 들어보면 맞는 말이다. 한두 번이야 만나주겠지만 현직이 아니니 대화의 주제는 과거에 머물거나 겉돌게 된다. 그래서 지속적인 소통은 어렵다. 나만 해도 현직에 있을 때 퇴사자를 꾸준히 만난 적은 극히 드물었다. 퇴사 후 한동안은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왔다. 다른 일을 시작하며 만남이 뜸해졌고, 어느덧 4년이 흘렀다.
최근에 전 직장 소식이 들려왔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중소, 중견 교육업체였다. 현장 조직이 있고, 본사가 있고, 교재를 연구하는 부서가 있는 형태로 교육영업이 주된 수익이었다. 나는 그 회사에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본사의 교육팀장, 기획팀장까지 하고서 퇴사를 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다. 전 직장이 딱 그랬다. 영업조직에서 일할 때는 희망을 품었고, 본사에 와서는 절망을 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소기업의 모든 악조건을 안고 있는 회사였다.
현장 영업조직에서 일을 할 때, 애사심이 넘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내가 이 회사를 대기업처럼 키우리라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했던 탓에 적도 친구도 많았고, 승진도 빨랐다. 승진을 하니 책임이 따랐고,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인정을 받았다? 고 생각했으나 이제와 돌이켜보니 나는 회사 입맛에 맞는 직원이었고, 더 이상 회사가 나를 맛있어하지 않을 즈음에, 내 입맛에도 회사가 맞지 않아 퇴사를 했다.
밑바닥 영업부터 시작한 나는, 내가 속한 조직을 최상의 조직으로 키우고 싶었다. 시간과 몸과 자원을 갈아 넣어서라도 다른 조직에 지고 싶지 않았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사에 발령받아 일을 해보니 현장에서 내 조직만 바라보며 일을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다. 본사는 작은 업무 협조요청에도 각 부서의 님비를 조율해야 했고, 그 조율에는 정치가 개입되고, 연줄이 개입되었다. 열심히만 해서는 될 일이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신입직원을 입사시켜 적응하게 하고 1인분의 역할을 할 때까지 아낌없이 지원하여 중견직원으로 커나가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 과정 속에 실적은 저절로 따라왔다.
그러나 온갖 눈치로 일을 하는 본사는 그런 달달한 보람 따윈 없다. 정상적인 회의 결과에 의한 업무 집행보다 몇몇 실권자의 독선이 횡행하고, 작은 권한이라도 주어지면 큰 권력이라도 쥔양 거들먹거리는 빌런들이 고인 물로 자리를 잡고,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업무는 하겠지만, 더 이상의 업무협조는 사절한다"는 결연한 결심을 한 듯한 부서장들의 집합. 그런 게 본사였다.
물론 그런 게 본사라면, 그리고 그렇게 일하는 것이 정도라면, 까짓 거 나도 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장 출신의 순진했던 나는, 자괴감이 들어 할 수가 없었다. 뻣뻣하게 굴던 나는, 어느새 작은 권력을 가지고 회사놀이를 하고 있던 고인 물 빌런들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직장을 다룬 드라마에서는 갑질, 사이코패스, 빌런역의 동료나 상사, 부하는 종국에 대가를 치른다. 주인공은 온갖 핍박, 이간, 협잡, 모함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선한 동료들과 함께 승리를 쟁취한다. 바로 사필귀정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다닌 회사에서는 그런 결말은 결코 일어난 적이 없다. 현실에서는 주인공이 조용히 사라(퇴사) 진다. 그리고 주인공 주변의 선한 사람들도 무대에서 떠난다. 그리고 현실의 빌런은 주변의 피를 빨아먹으며 "아주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해피의 네버엔딩이 이어진다.
그런데 최근에 들려온 전 직장 소식은 위와 같은 결정론적 결말에 반하는 것이었다. 20년이 넘도록 '공인 빌런'역을 수행했던 부장이 탄핵을 당하여 좌천한다는 것이다. 그 '공인 빌런'으로 인하여 수많은 직원이 애를 먹었고, 퇴사를 했고, 손해를 감수하고 대화를 사절했었다. 정말 매우 늦었지만 회사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에서의 사필귀정은 매우 늦게 찾아온다.
지금 나는 혼자 일한다. 1인 자영업자다. 그러니 나는 내가 바로 빌런이고, 주인공이자 자기 고용주다. 내가 사리에 어긋난 판단을 하여 고집을 피우면 빌런이 된다. 합리적 판단으로 고객과 소통하면 주인공이 된다. 결국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로 귀속된다.
돌이켜 보면 전 직장의 내 고용주가 그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가 간다. 물론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건 그분의 몫일뿐인 것이다. 그리고 혼자 일하다 보면 '빌런'이라도 말동무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사람에 지쳐 혼자 하는 일을 찾았는데 사람이 그립다. 그냥 그리울 뿐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