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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우정 Sep 16. 2024

아빠가 가기 전에 꽁초 좀...

아! 웬 감동?

지금은 산전수전을 겪어서 그런 일은 잘 없지만, 세차 창업 초창기에 즉, 어리바리할 때 겪은 일이다.

송파구 마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세차주문이 들어왔다. 지하 주차장이 없는 연식이 좀 된 아파트였다. 도착해서 보니 차키는 차 안에 있었는데 차량이 아파트 벽 쪽으로 바짝 붙어 있어 조수석 쪽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고객에게 전화를 해서 차량 이동을 부탁드렸다. 고객은 지금 내려갈 수가 없어 직접 이동해 달라고 하신다. 차량 이동은 고객이 직접 해주는 게 원칙이다. 만에 하나라도 있을지 모를 불의의 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렇게 직접 이동시켜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차량은 스*크였다. 차량을 이동하기 위해 문을 열고 차량에 타려고 하는데... 맙소사!


운전석 바닥에 빈 담뱃갑이 족히 20개는 뒹굴고 있었다. 컵홀더를 보니 1.5리터짜리 콜라 페트병에 담배꽁초가 꽉 들어차 있다. 페트병 입구에는 누가 누가 잘 꽂나 내기를 한 듯이 담배꽁초가 분수처럼 흘러 넘 칠 듯이 꽂혀있다. 뒷좌석에는 낱장으로 된 전단과 종이 뭉치들이 뒹굴고, 그 위에는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다. 갑자기 머리가 '멍' 해진다. 일단 세차하기 편한 곳으로 차량을 이동시켰다. 



차량을 이동하고 내부를 찬찬히 살펴봤다. 담배꽁초의 충격 때문에 외부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바닥 매트에는 담뱃재와 흘린 음료들이 눌어붙어 있다. 컵홀더의 콜라 페트병을 들어내니 컵홀더 바닥은 초콜릿이 녹아서 단단히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다. 뒷좌석 바닥에는 우산이 5개가 있었고, 트렁크에는 캠핑용품이 들어차 있다. 도어 포켓에는 빠짐없이 담배꽁초가 들어차 있고, 안쪽 창문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니코틴 때문인지 노란게 묻어난다. 고개를 약간 숙여 대시보드를 보니 먼지가 퇴적층을 이루고 나에게 윙크를 한다. 


총체적 난국이다. 그 와중에 정말 특이한 걸 발견했다. 다른 곳은 정말 오염이 심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투명하게 깨끗했다. 반가웠고 기이했다. 그것은 바로 룸미러다. 이 룸미러는 진흙 속의 진주처럼 영롱하게 내 얼굴을 비추고 있다. 운전석에 앉은 내 얼굴을 말이다. 일반적으로 룸미러는 뒤쪽을 비춘다. 뒤쪽 차량을 보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룸미러에 내 얼굴이 보인다. 왜일까?


'룸미러로 뒤를 보는 게 아니라 화장을 고치셨구나!'를 깨달은 순간이다. 




어떡하지? 도망갈까? 전화해서 추가요금을 받을까? 하고 잠깐 고민을 했지만 '어리바리' 했던 나는 벌써 바닥의 빈담뱃갑을 치우고 바닥매트를 빼내고 있었다. 도중에 정신을 차리고 고객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그냥 하는 수밖에...


1시간 정도 지날 무렵 고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재중 번호를 보고 콜백을 하신 거라 생각되어 추가요금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저 부탁이 있는데요. 저희 아빠가 지금 제차를 보시겠다고 내려가고 있거든요. 

제발 부탁인데 담뱃갑 하고 꽁초 먼저 안 보이게 치워 주시면 안 될까요? 

제 아빠가 보시면 저 큰일 나거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네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잠시 뒤 노신사 한분이 차량 주변을 기웃거린다. 스팀 세차를 하다 보면 지나가던 분들이 걸음을 멈추고 스팀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늘 있는 일이라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분이 대뜸 차문을 열더니 내부를 살펴본다. 


'이분이 아버님이시군!' 


모른 척 내가 말했다.

"어르신! 남의 차를 그렇게 막 열어 보시면 어떡합니까?"

"아 그냥 내부 청소가 어떤가 하고..."

쓱 한번 보더니 차주 아버지라고 말은 하지 않고 가던 길을 걸어가신다. 

일단 고객의 부탁은 들어 드렸고, 세차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직 갈길이 멀다. 정리가 안 된다. 소형 차량은 1시간 30분이면 끝내야 하는데, 지금 1시간 30분을 넘어서고 있다.




취소처리도 못하고, 추가 요금 고지도 못한 어리바리한 초짜 세차업자는 그렇게 묵묵히 세차를 하고 있었다. '다음부터는 이런 차는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면서. 


잠시 뒤, 차 옆으로 오토바이 한 대가 급히 멈춰 선다. 

"배달시키셨죠?"

'아. 오늘 무슨 날인가 보다. 일진 사납다. 방치차에, 담배에, 아버지에 급기야 잘못된 배달까지?'


"저는 음식을 시킨 적이 없는데요?" 

"이 아파트 이 동 앞에서 세차하는 분은 아저씨 밖에 없잖아요. 계산은 됐으니 맛있게 드세요"

하더니 쌩 가버린다. 


이게 무슨 일일까? 

봉지를 열어보니 샌드위치, 약과, 과자, 커피가 들어있다. 

그리고 메모 한 장이 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어리바리 세차업자의 뿌옇던 두뇌가 맑아지며 이런 생각이 든다.

'아! 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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